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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까지 하세요?

누가 본다고 이렇게 열심이세요

by 청설모

입사하고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후원자들을 모시고 필리핀 현지를 보러 출장을 떠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우리가 후원하는 어린이들과 졸업생들을 만나는 것도 물론 큰 감동이었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오래 남았던 것은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모습이었다.


어린이들과 똑같은 빈민가에서 생활하고 있는 선생님들은 자기 자식을 케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찬 상황에서 다른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었다. 남의 아이들을 챙기느라 정작 본인의 아이를 잘 돌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그녀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나와 동행했던 후원자들은 선생님들이 왜 이렇게까지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며 아이들을 돕는지, 본인이라면 과연 그렇게 살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들을 볼 때도 생겨난다. 큰 행사를 할 때, 우리는 아르바이트를 쓰지 않고 최대한 내부 인력을 활용한다. 비용을 절약하는 목적도 있지만, 내부자들만큼 잘 알고, 잘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열심'의 강도가 참 다르다.


나는 이전 직장에서도 여러 행사의 스텝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도 물론 친절하게,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만약 주말 수당/야근비를 받지 않았다면? 그 일이 업무 성과에 반영되지 않았다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라면? 내가 그래도 열심히 했을까? '대가 없는 열심'이라는 게 회사 안에서 존재할 수 있는 건가?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한다. 우리 팀의 일이 아니어도, 주말 수당이 없어도, 힘들고 배고프고 덥고 더러워지는 일이어도 기꺼이 한다. 지어 열심히 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분류하고, 하루에 3만 보를 걸었어도 계속 뛰어다닌다. 나야 우리 팀의 일이니까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

이번에는 밤새 비가와서 생긴 물 웅덩이를 치우느라 고생을 했다

이런 동료들의 모습을 10년째 보고 있자니, 이들을 이렇게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원을 찾아보게 된다. 현장에서 맞닿게 되는 후원자들의 행복한 표정, 그들이 후원을 시작한 덕분에 새로운 삶을 얻게 되는 가난 속 어린이들도 큰 보람으로 작용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대가 없는 열심은, 대가 없는 사랑에서 나온다. 우리는 모두 그 사랑을 경험한 자들이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따금 내 마음속에 그런 사랑이 고갈될 때, 옆자리 동료의 모습으로 인해 다시 채워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사랑과 열심의 선순환(?)

회사에서 큰 행사를 할 때마다, 동료들이 몸을 갈아가며 뛰어드는 모습을 보며 부족한 인류애를 채운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하는 이유는 우리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마음은 전염성이 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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