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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 같은 회사원을 만났다

by 청설모

조금 이상한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자기 회사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직장인에게 있어 애사심이란 노비가 대감집을 사랑하는 것과 같고, 주인의식이란 '주식'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던가. 물론, 우리 NGO 업계는 사명감으로 직업을 선택한 사람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일에 애착을 드러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사실 영리 기업에서 그러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보면 좀 유니콘 같단 생각을 한다.


N년 전,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정도의 회사에 다니는 사람과 소개팅을 한 적이 있다. 나이도 동갑이고, 종교도 같으니 한 번 가볍게 만나보라는 주선자의 말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OK를 외쳤다. 서로 어색하게 웃으며 첫인사를 마친 뒤에는 자연스럽게 지금 다니는 직장에 대한 주제로 대화가 흘러갔다.

"저희 회사는 건물이 너무 낡아서..."

상대방은 현재 자신의 회사 건물이 오래됐다고 투덜댔다. 쾌적한 공간이 능률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알기 때문에 처음에는 나도 맞장구치고 공감하며 들었다. 그런데 건물에서 시작한 불평은 회사의 사업 방향에 대한 불만과 임원진과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그 회사에 꽤 오래 다닌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가 뭐지? 회사 욕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없어'보이는지 본인은 알고 있는 건가. 혹시 지금 이직 상담을 하는 건가...?

1시간 가량 이어진 불만 접수(?)에 나는 점점 리액션이 성의 없어졌지만, 상대방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도중에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입꼬리를 억지로 당겨 올리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틈만 나면 "퇴사하고 싶다"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선 '그렇게 싫으면 그만두면 되잖아!!' 크게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을 매번 꾹꾹 눌러 담는다. 심지어 그들과 같은 프로젝트에 투입된다고 상상해 보라. 의욕 없는 사람을 매번 구슬려서 일을 하게 만들어야 하는 내 피로감은 누가 보상할 거냐고 드러눕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최근에 정반대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며칠 전, 파트너 제의를 했던 한 영리 기업에 미팅을 다녀왔다. 우리 같은 NGO에서 영리 기업에 파트너십을 제안할 때 우리는 항상 '을'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더 싸게, 최소한의 비용으로 제공해 달라는 요구를 뻔뻔하게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왠지 그들의 눈치를 자꾸 살피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회사는 우리를 환대하며 말했다. '평소에 좋은 일을 너무 하고 싶었는데, 마침 제안해 주셔서 저희가 꼭 참여해야겠다 생각했다'라고.

담당자분은 이어서 본인 회사의 역사와 가치가 우리 단체와 얼마나 닮아있는지를 설명했고, 이번 콜라보를 잘 만들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최근에 해외 포럼에 성공적으로 다녀온 이야기,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해외 수출 건들을 이야기하는 담당자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혹시 사장 아들 아냐?'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끼리 했던 말이다. 그만큼 회사에 애정을 갖고 일하는 사람을 오랜만에 만났단 이야기다. 여러 회사들과 다양한 협업을 하고 있는 우리 팀은, 파트너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는지에 따라 결과물의 퀄리티가 달라지는 것을 매번 경험한다.

반짝이는 에너지는 전염되는 법이다. 누군가 '잘 해내야지'라고 마음먹는 순간, 그 주변에서도 '나도 잘해야지'라는 파도가 이어지게 된다.


우리 직원들 말고 자기 회사 사랑하는 사람 오랜만에 만났다고 자랑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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