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우린 친구잖아

아빠랑 맞먹는 콩콩이

by 한별

분주한 아침. 콩콩이는 아침도 잘 먹고 잘 씻었다. 그런데 꼭 한 번은 찡얼거린다. 몇 번 받아주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나는 한마디 한다.


“콩콩이, 아빠한테 혼난다.”


오늘은 특별하게 콩콩이가 한 마디한다.


“아빠, 우리 친구잖아.”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예전에 콩콩이와 장난칠 때, ‘우리 그냥 친구 하자.’라는 말을 한 적이 있던 것 같다. 콩콩이는 그 말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혼날 거 같은 타이밍에 그 말을 꺼냈다. ‘친구’라는 단어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화내지 못하게 만드는 콩콩이의 한마디. 오늘도 진 느낌이지만, 왠지 친구라는 말에 기분은 좋다. 콩콩이와 더 가까워진 느낌이랄까? 콩콩이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맞아, 우린 친구지.”


사실 부모와 자식 간에 친구로 지내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 아이 교육상 맞는지는 모르겠다. 나와 내 부모님 사이는 어떤가? 내 부모님은 그렇게 엄하시진 않았지만, 부모를 친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던 것 같다. 부모님과 정말 힘들고 어려운 부분은 조언을 구하기는 하지만, 사소한 고민이나 걱정을 나누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같이 여행 가거나 같이 밥 먹는 것은 연례행사와 같이 드물지만, 나에겐 행복한 순간이다.


29cm 카피라이터인 오하림 작가님의 <나를 움직인 문장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 가족은 모두 타고난 예민한 기질이 있어서 다른 화목한 가정과는 달리 함께일 때 날카로운 분위기가 종종 만들어지곤 했다. 그런데 나와 동생이 서울로 취직을 하고 각자의 위치가 멀어지면서 지금은 네 식구가 뿔뿔이 흩어져 산다. 1년에 두세 번 정도 만나는데 예전보다 오히려 사이가 좋아진 느낌이다. 자주 볼 수 없으니 서로 좋은 말만 해주며 다음을 기약한다. 신선한 바람이 지나갈 정도의 거리가 생기니 감정의 곰팡이가 필 틈이 없다.


‘신선한 바람이 지나갈 정도의 거리’라는 것이 나와 내 부모님 사이에 있어서, 같이 하는 순간이 더 행복한 걸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나와 콩콩이도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맞는 걸까? 우린 친구가 될 수 없는 건가?

아직 콩콩이는 5살이라 아빠와 친구가 더 좋은 것 같다. 나중에 콩콩이가 커가면서 아빠랑 친구가 부담스러울 때, 그때는 가까운 친구 말고 조금 먼 곳에 사는 친구가 되어줘야지. 친구도 정말 가깝게 모든 것을 다 공유하는 친구가 있고, 그리 친하지 않아서 또는 멀리 살아서 자주 연락하지는 않지만 만나면 반가운 그런 친구가 있다. 그때는 욕심부리지 않고 ‘신선한 바람이 지나갈 정도의 거리’를 두는 친구가 되어야지.

콩콩이가 커가면서, 콩콩이가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콩콩이의 갓난아기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는 참 힘들었는데 콩콩이가 밉기도 했는데, 행복한 순간도 많았지만 괴롭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때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괜히 미안하다. 콩콩이에게 좋은 감정을 많이 전달해 주는 아빠가 되었으면 한다.

“콩콩아, 우리 오래오래 친구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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