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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Jul 11. 2018

할머니가 쪄준 감자를 먹던 계절

흙장난하다 들어와 먹던 여름철 오후의 맛

 날이 더워지니 얼마전까지 그렇게 비싸던 감자가 다시 싸졌다. 포슬포슬하게 쪄서 소금에만 찍어먹어도 감자가 맛난 계절. 여름.


 다들 감자를 받아 먹을 수있는 밭이라도 알고 지내시는지, 감자철이 오니 집집마다 감자를 나눠 주신다. 이곳저곳에서 받다보니 우리 집에도 감자가 쌓였다. 오래가는 채소라 다행이지 시금치나 오이였으면 큰일날 뻔했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살아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같은 건물안, 위 아래층을 나눠써, 적당히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며 적당히 연결고리를 가지며 살아왔다. 이렇게 할머니와 가까이 살다보니, 저녁전까지 일 때문에 엄마가 집을 비우는 날이면 할머니가 우리 자매의 간식을 챙겨주시곤 했다.


 여름철, 동네 아파트 놀이터에서 흙장난을 하고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오면, 아직 채 식지 않은 할머니표 찐 감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풍기 앞에 앉아, 시원한 보리차와 함께 먹는 찐 감자는 소금만 찍어먹어도 맛있었다. 엄마가 집에 돌아와 낮에 먹은 감자 자랑을 하면, 엄마 어릴적에는 할머니가 감자칩도 해주셨다며 엄마도 추억여행에 빠졌다. 가장 맛있는 감자칩을 만들기 위해, 한장한장 슬라이스해 끓는 물에 데친 감자를 햇살에 보송보송하게 말린 뒤에야 튀겨냈다는 할머니. 오랫동안 할머니와 감자는 우리집 여름철 간식을 책임져 왔다.

 버터, 크림을 넣은 매쉬포테이토나 마요네즈를 찍은 감자는, 채식을 채식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도 멀리하고 있지만, 할매 입맛인 나에게 감자는 소금만 찍어먹는게 가장 맛있다. 말하지 않아도 할머니가 간식을 챙겨주시다보니 우리집에는 간식으로 먹을만한 과자나 빵이 없었다. 할머니가 지어주신 슴슴한 맛의 간식에 익숙해서인지, 구멍가게표 과자, 음료수에 대한 집착도 딱히 없었다. 이렇게 우리 자매는 서울 한복판에 살면서도 할매입맛으로 자랐다. 가끔 ‘속세의 맛’에 이끌려 음료수를 사먹어봐도, 우리 자매에게는 너무 달아, 한캔을 둘이 나눠 마실 정도였다. 그 때문인지 나와 언니는 운동을 즐기지 않는 집순이 자매였지만, 늘 다이어트가 필요없는 몸이었다. 


 지금은 ‘속세의 맛’에 예전보다는 길들여지고, 나름 몸매 신경을 쓰는 나이가 되다 보니, 탄수화물이 주된 영양소인 감자를 간식으로 먹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이 계절이 돌아오면, 아무리 더워도 입천장이 까질까 호호 불며 먹는 찐감자가 먹고 싶어진다. 간식으로 먹기에는 무겁기도 하고, 영양걱정이 되어, 이제는 밥 대신 먹는다. 할머니가 쪄주시지도 않고 소금이 아니라, 집에 남아돌던 파슬리로 만든 드레싱을 올려서. 금방 배가 꺼질까 싶어 만든 렌틸콩 샐러드와 함께.  

흙장난 하다 집에들어와 먹는 할머니표 감자 만큼은 아니지만, 내가 만든것도 나름 맛있다.


아무리 더워도 선풍기 바람쐬며 호호 불며 감자를 먹는 계절이 돌아왔다.

여름이다.


편한 일상사진은 인스타그램에

비건,마크로비오틱 푸드 레시피와 조각글은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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