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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Oct 11. 2018

나눔 가득했던 상급 마크로비오틱 시작회

 8월의 신주쿠. 이른 아침부터 신주쿠의 조리실에 우엉, 현미 등을 들고 모여드는 사람들. 상급 집중강좌  시작회가 있던날, 조리실에는 아침일찍부터 수강생들이 모여들었다. 

 리마의 집중강좌는 많은 수강생들이 지방에서 동경으로 상경해 호텔에 묵으며 참여할 만큼 인기이다. 이번 상급 집중강좌만 해도 일본의 동북지역 아오모리와 센다이에서 온 수강생이 있는가 하면, 교토, 니이가타, 남쪽 쿠마모토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 여기에 한국에서 온 나와 뉴질랜드에서 참여한 수강생 까지 있으니 도쿄에서 참석한 수강생이 소수일 정도. 호텔에 묵으며 수업을 듣는 만큼 주방을 사용할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리마에서는 이런 수강생들을 위해 시작회(코스 수료후에 갖는 발표회와 같은것)가 있는 날에는 아침일찍부터 조리실을 사용할 수 있게끔 배려해주신다. 


  초급과 중급 시작회 때는 정해진 두가지 메뉴 중, 시작회에 출품할 메뉴를 골랐지만, 상급까지 공부하며 많은 메뉴를 배운 만큼, 상급에서는 출품할수 있는 메뉴의 폭이 넓었다. 차수수 현미밥, 우엉 연근 조림, 현미크림, 시골만쥬. 이렇게 주식부터 디저트까지 장르도 다양했다.

출품해야 했던 차수수 현미밥, 시골만쥬, 현미크림, 우엉 연근조림

 나를 포함해 많은 수강생들은 우엉 연근 조림을 선택했다. 다른 메뉴에 비해 필요한 재료와 도구가 간단하기 때문. 이 밖에도 찰수수 현미밥도 인기였다. 한편 현미크림은 몸이 쇠약해져 밥을 먹을수 없는 환자들을 위한 음식으로 볶은 현미로 죽을 지은뒤 이 죽을 천으로 짜내 껍질은 거르고 크림만을 뽑는 요리. 더할 나위 없이 손이 많이 간다. 하지만 아픈 사람들을 위한 요리를 익히고 싶다며 일부러 이 메뉴를 고른 수강생도 있었다. 마지막 시골만쥬 역시 팥앙금을 만들고, 만쥬 반죽에는 곱게 갠 단호박을 넣는 수고가 필요하지만, 모두가 식사메뉴를 출품하니 디저트를 담당하겠다며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 수강생이 이 메뉴를 담당하셨다. 수강생들의 공부에 대한 열정과 배려심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학생들만 아침일찍 조리실에 나온건 아니었다. 선생님들도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평가를 위해 아침부터 조리실을 찾으셨다. 심지어, 평가 후 함께 나눠 먹을 음식을 같이 준비하기도 하셨다. 모리 선생님은 미소국을 지으시고, 기무라 선생님은 주특기인 빵을 갖고 오셨다. 여기에 곁들일 두부치즈 샐러드도 단숨에 만들어 내셨다. 평소 이케지리 오오하시의 본교에 계신 이사님도 신주쿠로 와 이 시작회에 참석해 주셨다.


 출품한 작품들은 같은 메뉴여도 각양각색이었다. 센다이에서 참석한 다나카상은 평소 센다이에서 이웃들과 요리모임을 즐겨 할 정도로 요리에 자부심이 있지만, 평소 사용하지 않는 도구를 사용하다보니 밥을 태워 울상을 짓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개선방법을 알려주실 뿐만 아니라, 살짝 탄 밥은 물을 붓고 누룽지를 끓이거나 이 기회에 튀겨서 중국식 누룽지탕을 만들면 된다는 팁까지 알려주셨다. 

 뉴질랜드에서 스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하라상 역시 밥을 태웠다. 역시 가장 기본적인 듯 해도 밥이 가장 어렵다. 하라상은 타지않은 윗부분을 모아 출품하고, 살짝 탄 아랫부분은 주먹밥을 만든뒤 간장을 발라 구운주먹밥을 별미로 내어주는 센스도 발휘했다. 

비록 밥을 태웠지만 구운 주먹밥도 함께 출품한 하라상

 한편 내가 출품한 우엉 연근 조림에 선생님들은 다소 놀라신 모습이었다. 평소 나오언니와 함께 저염콤비라고 불릴 정도로 싱겁게 먹는 내가, 다소 짭짤한 요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리마에서 가르치는 식양레시피 다운 맛이라도 놀라워 하시면서도 평소 싱거운 맛을 즐기는 나이기에 의문스러워 하시기도 했다.


 마크로비오틱 우엉 연근 조림에는 환자들을 위한 식양 레시피와 일반적으로 반찬으로 만드는 레시피 두가지가 있고, 환자들을 위한 식양 레시피는 조금 더 짭짤하게 만든다. 해독 작용과 장 기능을 활성시키는 기능이 있는 우엉을 주 재료로 만든 이 요리는 양성의 재료인 간장을 넣고 약불에 오래 졸인 양성의 음식. 장의 면역력이 약해지고 노폐물이 쌓여 간과 장이 약해진 사람은 이른바 보양식을 배불리 먹기보다는, 노폐물 처리에 쉴새 없이 움직여온 장기를 쉬게 해주기 위해 소식을 하는 것이 좋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식양 우엉 연근 조림은 한끼에 한 두 젓가락씩만 곁들여도 해독과 장 기능 활성화를 돕는 귀한 반찬. 이러한 배경지식도 있어, 평소 싱겁게 먹는 나도 우엉 연근 조림을 짭짤하게 만들었지만 선생님들은 다시금 마크로비오틱에는 꼭 따라야 할 레시피는 없다고 강조하시며, 앞으로는 나의 평소 체질에 맞게 만들것을 강조하셨다.

이 날 이후, 내 입맛에 맞게 적당하게 간을 하곤 한다. 우엉 연근 조림은 평소에도 즐겨먹는 반찬.

 흰머리가 지긋하신 최연장자 수강생, 사지상의 시골만쥬는 맛을 보기도 전부터 셔터세례를 받았다. 마크로비오틱의 ‘일물전체’의 개념도 잊지 않고, 단호박 껍질과 씨도 함께 출품하셨다. 팥앙금도 직접 만드셨을 뿐 아니라, 달걀물 없이도 겉 표면에 광택을 내기 위해, 갓 찐 만쥬에 열심히 부채질을 하셨다는 정성가득한 만쥬였다. 심지어 팥앙금은 설탕한톨 없이 대추야자로 단 맛을 내셨다고 한다.

계란물 한 방울 없이 반짝반짝 윤기는 시골 마쥬
단호박 껍질과 씨도 버리지 않고 함께 출품 하셨다.

 이렇게 평가가 모두 끝나고 해산 하는 것이 아니다. 출품을 위해 만든 음식은 선생님, 동기들과 함께 나눠먹는다. 선생님들이 만들어 주신 음식도 더해져, 우리의 식탁은 더욱 풍성해졌다. 사진에는 없지만 모리선생님이 만드신 미소국은 물기를 제거한 얼린 두부의 식감이 일품이었다. 기무라 선생님은 추특기인 천연효모 빵, 그것도 통밀 캄파뉴를 만들어 오셨다. 누룩소금에 절여 마치 치즈같은 맛과 식감의 두부 치즈도 인기였다.

누룩소금에 절여 마치 치즈와도 같은 두부치즈. 여기에 곁들인 파프리카 마리네이드와 샐러드.
기무라 선생님의 주특기인 빵. 통밀 함유량을 높인 캄파뉴를 만들어 오셨다.
올리브 오일과 무설탕 마멀레이드를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이 맛있다.

 이렇게 나의 상급 코스도 끝났다. 집중강좌. 말그대로 단 기간에 수업을 들어야하는, 체력도 집중력도 필요한 수업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서 요리를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복습을 하다가 잠이 드는 날들이었다. 이 집중강좌에서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걱정도 됐다. 하지만 수강생들이 짧은 기간안에 최대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도록, 선생님들과 스탭분들은 에너지를 쏟으며 매일의 수업을 준비해주셨다. 수업을 듣는 나보다도, 몇달 전부터 준비하고 휴일도 없이 강좌를 진행해주신 선생님들은 더 힘드셨을 것. 또, 짧은 시간이었지만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고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소중한 동기들을 얻었다.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도 여전히 동기들과는 배운것을 복습하고, 만든 요리의 사진을 공유할 만큼 친해졌다. 


 건강을 해쳐 휴직을 하고 만난 마크로비오틱. 그 동안 책을 보며 공부해 왔지만, 요리에 대해서도, 이론에 대해서도 궁금점을 지울 수 없었다. 8월에 도쿄의 쿠킹스쿨 리마에서 보낸 시간은 쌓아뒀던 궁금점과 해소되지 않던 갈증을 풀어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내가 사랑하던 마크로비오틱을 더 사랑하게 됐다. 그리고는 결심했다. 집중강좌에서 배운내용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프로로서 마크로비오틱을 배우기 위해, 마크로비오틱 사범을 목표로 공부하기로 했다. 집중강좌가 없기에 한달에 한번씩 도쿄를 오가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나는 취미로 마크로비오틱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마크로비오틱의 프로를 목표로 하는 만큼, 사범 수업은 내게 꼭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10년을 살다가 떠나온 도쿄에 연의 끈을 놓지 못하고, 한달에 한번씩 도쿄를 오가는 선택을 하기로 했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마크로비오틱 푸드 레시피와 조각글은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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