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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Oct 14. 2018

도쿄에서 한국식 마크로비오틱을 가르치다 4화

프로직장인들과 건강에 대해 대화하다

 지금은 퇴사를 했으니 딱히 건강검진을 받을 일이 없지만, 직장인 시절에는 매년 건강검진을 받아 왔다. 직장생활을 한지 4년째가 되던 때, 극단적인 생활로 건강을 해치고 휴직을 한 경험이 있는 나 이지만, 그 전에는 건강검진을 해보면 몸에 큰 문제는 없는 듯 했다. 거의 모든 항목에서 A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감기에 자주 걸리고, 쉽게 피곤해지곤 했다. 환절기에는 꼭 감기를 앓아 미리 잡아둔 약속을 직전에 취소하는 민폐꾼이 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닐 것. 특히 하루 두끼 이상을 외식으로 해결하는 직장인들은 흔히들 경험한 일일듯도 싶다.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특히 독신의 직장인들은 일도 바쁜데다가 식사약속도 잦다. 게다가 독립해 혼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더더욱 집에서 밥을 먹을 시간과 기회가 부족하다. 집에서 요리를 하기는 커녕 점심식사는 패스트푸드나 편의점음식으로 때우는 일도 잦고, 저녁에는 술자리가 생기기도 한다.이런 식생활은 마크로비오틱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극 음성과 극 양성의 음식을 오가는 생활이다. 이런 생활을 하다보면 환경의 영향이나 스트레스로 몸에 변화가 올때, 극단적인 음식에 의존해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려고 하기 때문에, 원래의 몸이 갖고 있던 자연치유력, 면역력을 잃게된다.


 나의 세번째 마크로비오틱 수업에 참여한 수강생들이 이런 케이스였다. 3회차 수업에는 일본인들이 아니라 한국인들이 참여해주었다. 최근까지 일하던 회사의 일본 오피스에서 근무하는 지인들과 그 친구들이 참여해준 것. 모두 나의 또래이며 한국과 일본을 주름잡는 프로 직장인들이다. 2회차 수업까지는 수강생이 모두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비빔밥이나 부침개 처럼 외국인들이 즐겁게 체험할 수 있는 메뉴를 마크로비오틱을 응용해 가르쳤다. 하지만 3회차 수업의 수강생은 전원 한국인. 한국인에게 나물과 비빔밥, 부침개를 가르쳐도 새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도쿄에서의 클래스 기획과정은 이곳에)

 한편, 이 수업이 있던 시기는 8월 말. 일본에서는 슬슬 기온이 바뀌고, 태풍도 오는 환절기가 시작되는 시기이다. 면역력과 자연치유력이 떨어진 사람들이 컨디션 난조로 고생하기 쉬운 시기이기도 하다. 이런 계절성과 수강생들의 평소 생활습관을 생각해, ‘환절기를 이겨낼 마크로비오틱 요리’를 이번 수업의 컨셉으로 정했다.

 메뉴는 현미주먹밥, 제철채소 된장국, 두부조림, 노슈가달콤잡채, 캐럿라페. 

 제철 채소 된장국은 음의 성질을 가진 제철 가지와 애호박을 사용하면서도 양성의 재료인 된장을 넣고 은근하게 끓여내는 양의 조리를 더해 균형을 잡은 메뉴. 두부조림 역시 음의 재료인 두부에 양의 조리를 가해 균형을 잡은 메뉴이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환절기에는 음의 성질을 가진 여름채소들이 재배된다. 하지만 추워지는 아침과 밤, 또는 태풍이나 비로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이러한 음의 성질을 중화시켜주는 것이 좋다. 여기에 평소 간식으로 초콜릿, 과자 등을 즐겨 먹고 설탕에 중독이 되어있을 수도 있기에, 설탕 없이도 채소 본연의 단맛을 이끌어낼수 있는 요리인 노슈가달콤잡채와 캐럿라페를 곁들였다. 특히 당근, 소금, 물만으로 조리했지만 당근이 가진 달콤함을 이끌어낸 캐럿라페는 평소 채소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정말 맛있었다는 수강생의 호평을 얻었다.

마크로비오틱 캐럿 라페는 소금과 당근, 그리고 아주 약간의 물만으로 당근의 달콤한 맛을 끌어내는 마법같은 요리

 일본에서는 특히 여자들 사이에서는 마크로비오틱의 인지도가 비교적 높지만, 한국의 경우는 역시 마크로비오틱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아직 소수이다. 이번 수업에 참여한 수강생들도 일본에 살면서 마크로비오틱이라는 단어는 들어봤지만 어떤 것인지는 모르는 분들이었다. 때문에 이번 수업에서는 마크로비오틱을 함께 요리하되, 마크로비오틱 자체에 대해 많은 대화를 하기보다는 ‘건강’이라는 넓은 주제를 갖고 대화했다. 이번 수업의 수강생들은 그야말로 ‘프로직장인’ 들로, 무척 바쁘게 지내는 분들. 하지만 이 분들의 공통점은, 다들 바쁜 일상 속에서도 건강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는 점이었다. 다만 어디에서 부터 손을 대면 좋을지 몰라서도 지금의 식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의견이었다.


 이런 분들과 건강을 주제로 수업을 하며 한가지 크게 느낀 점은 우리 나라의 20대 후반, 30대 초반이 생각하는 ‘건강’한 식사란, ‘살이 찌지 않는 식사’에 가깝다는 점이었다. 밥을 현미밥으로 바꾸라는 나의 조언에, 탄수화물은 살이 찌기 때문에 밥을 잘 짓지 않는다고 대답한 한 수강생이 있었다. 이처럼 탄수화물 제한 다이어트가 인기를 끌며, 살 찌는 것이 두려워 저녁식사는 밥 없이 샐러드만 먹는다거나, 밥 대신 닭가슴살을 먹는다는 이야기도 이제 흔히 듣는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다이어트가 필요없는 몸’ 이라는 생각과 연예인같은 몸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먹는 즐거움과 몸이 원하는 음식을 포기한 식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건강=다이어트가 필요없는 몸’ 이라는 생각은 다소 좁은 생각이다. 다이어트가 필요없이 날씬한 몸이어도 늘 수족냉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생리불순, 생리전후 증후군으로 고생하는 여자분들도 적지 않다. 무거운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불임을 해결하기 위해 내가 공부하고 있는 쿠킹스쿨 리마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 한편 알레르기로 고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 당장 살을 빼기 위해서는 닭가슴살과 생채소를 먹는 것이 좋을 수도 있지만, 목적이 다이어트가 아니라, 심신이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면, 몸이 원하는 음식은 따로 있다. 고생하며 다이어트를 해 날씬한 몸을 얻었지만, 이상하게 몸이 예전같지 않다는 분이 있다면, 부디 이제 다이어트, 유지어트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스스로의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권하고 싶다.

애써 단백질을 챙겨먹고 고구마로 연명하던 시절보다, 마크로비오틱 식생활을 하는지금의 나는 하루 6시간의 요리 수업을 거뜬히 해낼 정도로 강철 체력이 되었다. 

 이렇게 프로 직장인들과의 수업도 끝났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거들떠보지 않고 일만 하며 살다가 건강을 해쳤던 경험이 있는 나이기에, 사실 이번 수업에서는 해주고 싶은 말이 무척 많았다. 하지만 이번 수업의 목표는 수강생들이 마크로비오틱에 흥미를 갖는 것. 가득이나 시간이 없는 직장인들이 설교를 듣고 마크로비오틱을 어렵게 생각하기보다는 이 기회에 흥미를 갖고 작은 것부터 실천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었다.

 

 주변 친구들이나 또래를 만나면, 다들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보니 이번 수업의 수강생들과 비슷한 고민을 듣는 일이 잦다. 나의 구독자분들중에도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도 건강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직장인들의 고민에 대해 드리고 싶은 조언과 비교적 손쉬운 실천방법은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실 듯 하다. 이번 기회에 이 내용에 대해 조금 더 체계적이고 현실성 있게 정리해보게 되었다. 정리하고 있는 내용은 조만간 ‘마크로비오틱 알아가기’ 매거진에서도 공개할 예정이다


 ※지나가는 이야기

지난번 수업과 다른 컨셉, 다른 메뉴였지만, 미리 철저히 준비해두니 수업이 시작되고 모든것이 순조로웠다. 다만 예상외의 난관은 나의 한국어 였다. 마크로비오틱을 공부하기 위해 도쿄에 오고 나서, 일상적으로 한국어를 읽고 쓰고 있었지만, 한국어로 말을 할 기회는 거의 없었던 것. 심지어 요리를 배울 때 일본에서는 의성어, 의태어를 무척 많이 사용한다. ‘당근을 냄비에 넣었을때 쥬왓하는 소리가 날정도로 냄비를 달군다’ 라던가, ‘채소에 물을 참밤참방 할정도로 넣는다’ 등, 번역하기도 어렵고 애매한 의성어와 의태어가 난무한다. 요리를 한국어로, 그것도 말로 전달하는 것은 살면서 거의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기에, 이 점이 예상외의 복병이었다. 다행히 요즘에는 한국어로도 요리수업을 무난하게 잘 해내고 있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마크로비오틱 푸드 레시피와 조각글은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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