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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Feb 08. 2019

명절을 지혜롭게

2월 첫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밥상과 베이킹

 마크로비오틱 수업을 들으러 도쿄에 다녀오니 어느덧 설이 눈앞이었다.

 설답게 떡국을 먹을 법도 하지만, 도쿄에서 식사약속도 잦고, 내 몸에 맞는 선택을 하기가 쉽지 않았던 터라, 현미밥과 간소한 채소반찬이 그리웠다.

 그렇게 해서 맞이한 설 당일 아침밥. 크리스마스, 1월1일에도 그랬듯 세상이 비일상을 맞이하는 날에도 나의 밥상은 평소와 다를바 없다. 오히려 더 소박하다. 시금치와 무생채로 가볍게 시작하는 설 아침. 유명연예인이 방송에서 공개한 레시피라며 무와 고구마를 넣은 생채나물을 엄마가 만들어 뒀다. 이 계절에 고구마를 껍질을 까서 익히지도 않고 고춧가루, 식초와 함께 버무리다니. 무가 없으면 몸 속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날지 무섭다...무만 골라 먹었다. 국물에 뿌옇게 올라온 전분기를 보고 엄마도 다시는 안만든단다.

 점심에는 오랜만에 친척들이 모였다. 고기를 먹지 않는 나는 고기 없이 우엉잡채를 먹는다. 나를 위해 고기없는 우엉잡채를 만들어 덜어두고, 모처럼 모인 가족을 위해 이 잡채에 고기를 추가해 만드는 우리가족의 잡채. 달라진 나의 식생활에 친척들도 제법 익숙해졌다. 오히려 집안에 들어오자 마자 혜연이가 실력발휘 좀 했냐며 기대하시기까지. 도쿄에 다녀와 여독이 쌓이지만 않았으면 우리집 명절식탁을 풀빛으로 물들이는 것도 좋았을 것 같다.

 차례를 지내고 싶지 않다는 할머니 말씀에, 우리 가족의 명절은 간소해진지 오래되었다. 각자 담당한 음식을 사오거나 만들어 와, 간단하게 식사를 하는 정도. 아들 셋을 키워낸 할머니는 워낙에 손이 크시기에, 엄마는 늘 ‘어머님이 생각하시던 양의 1/3만 사오셔야 한다’고 몇번이고 약속을 하곤 한다. 그래도 남은 음식은, 혼자가 되고 난 후 좀처럼 스스로를 위한 음식을 하시지 않는 할머니를 위해 챙겨드리고 헤어진다. 낭비 없는 우리집의 설풍경. 훈훈하다.

 평소 소식을 하는 나이지만, 명절인 만큼 이것저것 많이 먹었으니, 그 다음날 아침은 간소하게. 그리고 소화가 잘되는 것들로 차려본다. 우메보시를 올린 현미죽과 깨소금. 1년에 한두번 정도인 가족과의 시간은 즐겁게 보내고, 몸도 위장도 그 담에 알아서 잘 쉬게해주는 타입. 어차피 쉬라고 주어진 연휴. 즐기며 지혜롭게 잘 써보려는 편이다.

 설 당일이 지나고 나니 연휴가 하루밖에 남지 않아서인지, SNS에 볼멘소리가 한두마디씩 보인다. 명절은 자원도 감정도 낭비다. 너무 많이 먹었다. 심지어 명절을 없앴으면 좋겠다는 의견까지.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명절은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는 날’이라 생각해서 인지 이러한 말들이 안타까운 것도 사실. 현대에 맞지 않는 것은 줄이고, 좋은 것을 남기면 조금 더 지혜롭게 명절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먹을 만큼만 만들고, 그래도 많이 먹거든 알아서 쉬는 것 처럼. 나이 앞자리에 3을 달았는데도 결혼잔소리를 쏟아내는 가족이 없어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역광이 열일했다.

 일주일만에 요가 수련을 했다. 도쿄에 다녀오고, 돌아와보니 설이었다. 비일상의 연속이었다. 오랜만에 요가를 하니 비로소 일상에 돌아온 실감이 난다. 요가를 하고 요리를 하고 때로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이렇다 할 자극 없는 나의 생활. 회사를 다니지 않을 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출근을 하고 점심 때 뭐 먹을지 고민하다가 지난주와 비슷한 곳에 가고, 퇴근을 하고, 주말에는 맛집을 찾아가고...이런 일상의 되풀이에 지겨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일상을 지켜주는 것들이 있으니 비일상이 즐겁다. 그리고 잠깐의 일탈을 즐겨도 나의 일상을 지켜주던 것들을 만나면, 흥분되었던 마음도 가라앉고 금방 다시 내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일상을 지켜주는 것들이 있어 나는 조금 더 단단해 지는 것 같다.

 입춘 하면 떠오르는 재료는 단연 냉이. 나에게는 봄을 알리는 재료이기도 하다. 도시에 살면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 어렵다. 추운 겨울날에도 히터와 보일러를 틀고 집안에서는 맨발로 돌아다니고, 반대로 여름철에는 긴팔 가디건을 입고 에어컨을 틀어놓고 살다보니 계절과는 무관해 진다. 서양식 달력에 익숙해져 있어도 그러하다. 하지만 24절기를 기준으로 살면 계절의 흐름, 자연의 변화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입춘부터 단단한 겨울땅을 뚫고 냉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음의 계절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양의 겨울 재료들을 사용해 양의 조리를 하는 것이 마크로비오틱다운 겨우나기. 하지만 뜨끈뜨끈한 도시의 겨울을 음의 계절이라 보아도 좋을까. 이렇게 현대의 겨울은 과하게 양으로 치우치기 쉽다. 심지어, 신체 활동이 적은 겨울철. 몸에는 노폐물마저 쌓인다.

 봄을 준비하며 자연은 감사하게도 이런 치우친 몸을 되돌릴 것들을 가져다 준다. 봄향을 가득지닌 봄나물, 봄채소들. 알싸한 음의 향을 가진 것들에 양의 조리를 더해가며 몸을 중용으로 되돌릴 준비를 해본다.

 그렇게 냉이를 다듬으며 오늘도 즐거운 놀이를 해보았다. 이 아이를 튀겨먹을까, 된장국에 넣어먹을까, 가볍게 무쳐먹을까. 어떻게 먹는것이 오늘 나에게 가장 잘 맞을까.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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