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연 Feb 18. 2019

마크로비오틱은 판단력의 공부

2월 셋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과 베이킹

 발렌타인데이가 있던 주. 평소 주말에만 팝업식당과 클래스를 운영하지만, 베이킹클래스를 위해 평일에도 프로젝트 하다를 빌리기로 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주말이 아닌, 평일출퇴근 시간대에 전철을 타고 나도 출근을 했다. 많은 직장인의 출퇴근시간에 전철을 타는 일은 정말 오랜만. 그동안 놀며 살아온 것도 아닌데, 다른 직장인들과 출퇴근길을 함께하니 비로소 일을 하고 있다는 실감이 나는 것을 보니, 아직 직장인 티를 못벗은 듯하다. 

 새로운 일을 하며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실감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모여있는 카톡방에서 뒤늦게 취직을 한 친구가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하고 싶은 일과는 다르다’ 며 불평섞인 고백을 털어놓았을 때. 고된 공부 끝에 변호사가 된 친구가 말했다.

 ‘하고 싶은 일이라는 건 없어.’

  공감했다. 일하지 않고 놀고 살아도 굶어죽지 않는다면 굳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일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하지만, 일하지 않고 그저 놀고 살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 그러기에 우리는 일을 해야하고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내가 납득할 수 있고 의미를 느끼는 일을 하고 싶다. 지금 나는 스스로 납득하고 의미를 느끼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 20대 중반. 내 속을 끓이던 고민을 더이상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평일 오전 지하철 역에서 실감했다.

 수업을 마치고 혼자 먹는 스탭밀. 영업후 남은 미나리를 탈탈털어 메밀전을 부쳐먹는다. 알배추가 자리하던 나의 메밀전에 이제 미나리가 나간다. 조금 있으면 미나리가 더 맛있어 질것. 겨우내 식탁을 지켜주던 배추를 넣은 된장국과 이제 곧 잔뜩 장에 나올 미나리를 동시에 올려놓고 계절의 변화를 눈으로 입으로 즐겨본다.

 한동안 나의 레시피를 만들고 내가 수업을 진행하다가 오랜만에 오카다 선생님의 수업자료를 펼쳤다. 마크로비오틱 중화요리도 기대된다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수업을 들어보고 싶다는 한 수강생이 있었다. 도쿄에서 오카다 선생님께 배웠던 레시피에는 한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재료도 많기에 그대로 수업에 응용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한국에서 사용하는 재료와 한국인의 식습관에 맞춰 응용해본다. 그렇게 해서 만든 메뉴. 중화풍 청경채와 만가닥버섯 볶음. 찬 성질의 고구마, 감자, 옥수수 전분이 아닌 칡전분을 사용해 농도를 맞추고 우리나라에서도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중국음식의 느낌을 살린 요리. 기름의 양을 줄이고 웍없이도 중국식 볶음요리를 만드는 팁은 오카다선생님께 배운대로 활용했다. 청경채가 더 맛있어지거든 수업에서든 식당에서든 내어봐야지 생각하며. 

 평일에도 클래스를 위해 출근을 했더니 눈깜짝할 사이에 주말이 돌아온다. 지난 주말 팝업식당 오늘의 메뉴.

- 현미밥

- 냉이와 밤콩미네스트로네

- 미나리향 깍두기

- 생강향 고구마 고로케

- 연근 톳 세발나물 무침

- 양배추와 사과 샐러드

 아직 봄이라 부르기에는 이르지만 확연히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는 2월.  팝업식당에도 2월의 색깔을 입히고 싶었다. 단 진부하지 않게.


 2월을 알리는 채소 냉이는 미네스트로네에 등장. 겨울철 미네스트로네를 만들었을 적에는 뿌리채소를 듬뿍 넣었다. 새 계절을 맞이할 지금 계절에는 냉이로 향을 내고 아직 완두를 먹기에는 많이 이르다는 점을 아쉬워하며 밤콩을 넣어본다. 미네스트로네는 이탈리아식 스프이지만 계절을 담아내며 매번 다르게 만들 수 있어 한국의 채소들로 나의 마크로비오틱 미네스트로네를 만드는 것이 계절을 맞이하는 나의 행사가 된듯도 하다.


깍두기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직 맛있는 겨울무에 미나리로 봄색을 입혀본다. 겨울철 식탁을 지켜온 연근톳조림은 세발나물과 무쳐 무겁지 않게 풀어보고 양배추와 사과는 소금에 절이고 충분히 눌러주어 양의 성질을 더해 만들어 본다. 계절이 변하며 몸도 갈피를 못잡기 쉬운 시기. 그렇지 않아도 따뜻하나 싶더니 눈이 펑펑 내리기도 했다. 나의 식당에서 조금이나마 밸런스를 잡아보기를 기대하며 밥상을 차려본다.

 디저트메뉴에도 새 바람을 불어보았다. 매주 다른 맛을 선보이던 머핀과 달리 통밀스콘, 메밀 스콘 이외에는 다른 라인업이 없던 스콘. 차이티 스파이스를 갈아넣고 통밀차이스콘을 만들어보았다. 한때 다양한 잎을 사용한 베이킹에 빠져있던 터라, 스콘도 찻잎을 사용해 만들어보고 싶었다. 오랜만의 스콘 신제품 등장에 손님들도 좋아해주신 듯 했다.


 일주일에 이틀을 빌리는 공간, 프로젝트 하다. 이 짧을 이틀을 쪼개서 토요일은 식당영업을 하고 일요일에는 쿠킹클래스를 한다. 2월의 마크로비오틱 첫걸음 클래스도 2회차를 맞았다. 2회차의 주제는 음양이론. 다양한 조리를 더하거나 생 채소를 재료로 사용하며 재료의 성질을 이해하고, 조리를 하며 변해가는 재료를 오감으로 함께 느끼며 조리한다. 넓지 않은 공간이기에, 함께 향을 맡기가 어려워 몇번씩 냄비를 불에서 들어내 향을 맡게끔 해드린다. 균일하게 가열되지 않기에 피하고 싶은 방법이기도 하지만, 오감으로 요리하실 수 있게끔 내린 결정. 하지만 레시피는 어디까지나 도울 뿐. 요리는 오감으로 해야한다. 그래야 본인의 몸의 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고, 본인의 마크로비오틱을 만들 수 있다.

2회차 수업에서는 다양한 조리법과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음과 양에 대해 알아보았다.

쿠킹클래스 2회차의 내용은 이곳에

수업중 한 수강생분이, 배웠는데도 퇴근하고 오니 시간이 나지 않아 요리를 포기한 스스로에게 아쉬웠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의 대답은 명쾌했다.


 ‘저는 퇴근하고 난 뒤에는 요리하지 않았어요.’ 


 힘들고 배고픈 퇴근후의 저녁시간. 요리를 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무리였다. 주말에 미리 반찬을 만들어두거나 요리할 준비를 미리 마쳐두고, 평일에는 주말에 만들어 둔 것들을 먹었다. 다 먹으면 그때는 간단한 음식을 해먹거나 사먹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일과 마크로비오틱을 양립하기 위해 노력한 편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처음부터 삼시세끼를 마크로비오틱을 의식하는 것은 쉽지 않다. 행복하기 위해 마크로비오틱을 실천하는 것이지, 원칙을 만들고 스스로를 힘들게 하다면 그것은 마크로비오틱한 라이프스타일이라 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원칙을 만들고 그것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판단하는 연습을 거듭해 나가는 것. 나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생각하며,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그때 가능한 선택을 하면 된다.


 최근 많은 분들과 마크로비오틱을 함께 나누며, 자주 드는 생각. 마크로비오틱은 판단력의 공부라는 점. 몇살을 먹어도 판단력을 가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크로비오틱을 많은 분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있지만 나에게도 아직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즐겁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그리고 그 과정을 돕는 지금의 일이.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조각글과 팝업식당운영 관련 공지는 블로그에


매거진의 이전글 2월의 냉이. 넘치는 생명력을 감사히 받으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