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보다 더
삶은 때로, 소설보다 더 정교하게 짜 맞춰진 것같이 느껴진다.
- 문학하는 마음 중
내 짧은 인생만 돌아봐도 그렇다. 하필, 우연히, 어쩌다.. 이런 단어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것들 투성이다. 또 이러한 마음, 저러한 마음, 또 그 마음을 표현하는 수많은 방법이 얽히고설켜 오해가 오해를 낳기도 하고, 가슴 뛰는 사랑을 하기도 한다. 실수가 기회를 가져오기도 하고, 기회가 독이 되기도 한다. 또 나의 독이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중학생 때, 한창 인터넷 소설이 유행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개 고등학생으로, 아직 미지의 세계인 고등학교에는 인터넷 소설 주인공들이 그득할 것만 같았다. 그 당시 내가 봤던 소설들은 보통 여주인공 1인칭 시점으로 쓰여 있었다. 여주인공의 마음은 너무나 잘 알겠는데, 남자 주인공의 마음, 특히 서브 남자 주인공의 마음은 어떤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이따금씩 챕터가 끝날 때마다, 혹은 소설이 끝날 때 남주, 혹은 서브 남주 시점으로 쓰인 번외 편이 그렇게 좋았다. 여주와 함께 독자인 나도 아리송했도, 때론 답답하기만 하던 그 남자의 행동이 사실은 이런 마음, 이런 상처, 이런 상황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알게 되는 게 참 재미있고, 좋았고, 슬펐다. 만약 그냥 그 마음 그대로, 여주인공에게 고백했다면, 이기적으로 보여도 마음 가는 대로 했다면 어땠을까 싶을 때도 있다. 안타까운 건 소설 속 여주는 그 번외 편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
우리 인생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긴 장편소설이고, 이 소설 속 등장인물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행인 1, 행인 2 등 아주 잠깐 등장하는 인물들을 제외하더라도 말이다. 번외 편이 무수히 많은 소설인 셈이다. 전체적인 번외 편은 읽지 못하더라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를 알아가면서 느끼는 기쁨과 행복은 아마도 그 번외 편의 일부를 들을 수 있어서가 아닐까.
정교한 소설의 주인공! 우리, 오늘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면, 1인친 주인공 시점에서 벗어나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보려고 노력해보자. 이 일은 다음 일을 위해 꼭 필요하고 중요한 장면이진 않을까. 예술적 장치가 들어있는 장면은 아닐까. 아니면 한 발짝 떨어져 독자의 마음으로 인생을 바라보자. 시야를 넓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