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 안 하면 괜찮은 사람이 되는 걸까

1분짜리 검사

by 헤이씨드

캐나다에서는 아이가 태어날 때 혈액형 검사를 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혈액형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날 병원에 간 건 아이가 아팠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이 채혈을 해야 한다고 해서, 김에 혈액형 검사도 함께 요청했다.


피검사와 소변검사 결과는 한 시간쯤 뒤에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혈액형 검사가 빠졌다는 걸 알게 됐다.

검사실이 점심시간이라 30분 뒤에 가능하다고 했다.

잠깐 친정에 내려온 터라 다시 오기 어렵다고 말했더니 전화로 알려줄 수는 있다고 했다.


며칠 뒤 전화를 했다.

혈액형 결과 한마디를 듣기 위해서 전화 진료비가 있다고 했고,

이어서 들은 혈액형 결과는 도무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다”라고 말하자

상대방(의사)은 웃으면서 말했다.

“아버님 혈액형이 다른 거 아니에요?”


순간 기분이 나빴다.

설명이라기보다는 농담 같았고,

농담으로 넘기기엔 너무 가벼운 말이었다.


내가 어이없어하자 아이가 어려서 항원이 잘 안 보일 수도 있다는 말이 돌아왔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연락이 왔다.

검사가 잘못됐을 수도 있으니 다시 와 달라고 했다.

아까는 그럴 일 없다면서 말이다.


다시 병원에 갔다.

이번엔 검사실 선생님이 내 눈앞에서 직접 검사하는 걸 보여줬다.

아주 작은 핏방울,

1분도 채 걸리지 않는 검사였다.


그걸 보면서 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간단한 걸 처음엔 왜 잘못 봤을까.

그 많은 피를 뽑고서 그 피로 검사할 때는 왜 못 봤을까


우리 집이 괜히 흔들릴 뻔했는데,

모두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말하는 태도도 마음에 남았다.


의사는 말했다.

“그럴 수도 있죠. “


나는 늘 반응이 한 템포 늦는 사람이라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나왔다.


집에 돌아와서야 생각했다.

아무 말 없이 “네, 네” 하고 나오면

그게 어른스러운 건지,

아니면 그냥 괜찮은 사람인 척하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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