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

by 혜윰

오늘도 어김없이 이른 아침에 일어나 일터로 향한다. 어느 나라나 현장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업무 시간이 제일 빠른 것 같다. 내가 하는 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침 일찍 준비해 이사할 곳에 도착한 후 짐 정리부터 시작한다. 우리나라처럼 포장이사라기보단 고객이 짐을 어느 정도 정리해 놓으면 커다란 탑차에 테트리스 하듯이 조각조각 빈 곳 없이 채워 목적지에 도착 후 고객이 원하는 위치에 내려놓고 오는 업무였다. 따로 기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롯이 사람의 힘으로만 짐을 날라야 한다. 아파트를 이사할 때에는 우리나라처럼 크레인을 이용하여 창문으로 짐을 옮기는 방식이 아닌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이사를 진행한다. 그렇기에 짐을 최대한 엘리베이터에 많이 넣고 옮겨야 일이 빨리 진행된다. 또한 타운하우스들이 많다 보니 지하에서부터 2층까지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수 없이 반복해야 하루가 마무리된다. 그 영향인지 아니면 술을 안 먹어서 그런지 몰라도 마지막 일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쯤에는 처음 도착했을 때보다 무려 10kg 가까이 빠져 있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한국으로 돌아가 친구들을 봤을 때에는 놀라움 반 안쓰러움 반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개인적으론 생각지도 못한 다이어트를 한 거 같아 기분이 좋았지만, 오래 유지 못 하고 얼마 안 가 떠나기 전의 몸무게로 돌아왔다.


몸으로 하는 일은 경험이 쌓이고, 기술이 늘어남에 따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능력이 십분 발휘된다. 어느덧 나는 피아노를 아무렇지 않게 들어 올리고 있었으며, 짐의 양에 따라 일이 끝나는 시간도 얼추 알 정도로 경험이 쌓여있었다. 밤이 늦은 시간에 이삿짐을 다 내리고 트럭을 정리하는데 현지인이 나에게 다가와 곤니찌와~라는 말로 친근함을 표했다. 나는 그 친구를 보면서 나는 일본사람 아니고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약간 놀라는 눈으로 나에게 또박또박 안녕하세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순간 나도 갸우뚱하고 바라보았는데 본인이 2년 동안 한국 수원에서 원어민 강사로 일했었다며, 잘은 아니지만, 한국말 조금 할 줄 안다며 만나서 너무 반갑다면서 인사를 건넸다. 나도 순간 한국 사람을 만난 느낌으로 괜찮다며 저도 영어 잘 못 하는데요라며 짤막하게 인사 아닌 인사를 하고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나중에 한 번 만나서 밥 한 끼 하자는 말을 뒤로 한 채 헤어졌는데, 그 후로 몇 번의 문자를 주고받기는 했지만 오래 못 가 연락은 뜸해졌으며 그렇게 서로에게 재미났던 기억으로 잊혔다.


여느 때처럼 일을 나갔는데 우리에게 맡겨진 일이 아닌 다른 팀에서 도움 요청이 와서 그쪽으로 일을 하러 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나보다 덩치가 1.5배는 돼 보이는 캐네디언이 있었다. 오늘은 이 친구와 같이 트럭 안에 가득 차 있는 짐을 옮겨 창고에 쌓는 일이었다. 아마 이 친구의 눈엔 한국의 작은 체구를 한 친구가 이 일을 하는 게 아무래도 어설퍼 보였나 보다. 일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무언가 무리하게 일을 하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나보다는 당연히 자기가 힘도 세고 일도 잘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노동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데미지가 몸에 조금씩 쌓인다. 힘은 빠지고 체력도 슬슬 한계에 부딪히는 시점이 온다. 딱 그 언저리 시간쯤이었나보다. 그 친구가 짐차에 짐을 가득 채워 옮기는데 턱에 걸려 힘겨워하고 있기에, 도와줄 요량으로 곁에 가서 살짝 밀어주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며 나에게 눈빛과 표정으로 알려주었다. 나는 멋쩍으며 돌아가던 찰라. 짐이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무리하게 움직이려다가 힘이 빠져 균형을 잃고 넘어진 것이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 몇 명이 와서 짐을 빠르게 정리하고 괜찮냐고 안부를 물었지만, 그 친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그냥 발이 미끄러졌다며, 끝끝내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다. 누가 봐도 힘이 빠져 넘어진 게 분명했는데도 말이다. 아마 작은 체구의 나도 충분히 해내는 일에 본인이 힘과 일에 진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무언가 어린이들의 지기 싫어하는 치기 같이 느껴졌다. 그저 나는 캐나다 친구 한 명 만들고 싶었을 뿐인데 그 사람은 아니었나보다.


이따금 현지인을 상대로 이삿짐을 나르곤 했지만 대부분 친절하고 잘 대해주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이삿짐을 다 나르고 한참 정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호수처럼 맑은 눈을 한 꼬마 여자아이가 쭈뼛쭈뼛 다가와 꼬깃꼬깃 접힌 종이를 조심스럽게 건네주었었다.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아 미소와 함께 고맙다는 말을 건네곤 다시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게 짐 정리를 끝내고 차에 올라 출발하려고 할 때, 주머니속에서 무언가 잡혀 꺼내 보니 아까 받았던 종이였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종이를 펼쳐 보았는데, 분홍색 하트모양의 조그만 메모지였다. 그 안에는 삐뚤빼뚤 쓰인 글씨로 Thank You :) 라고 쓰여있었다. 순간 나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글씨체였으며, 내가 일을 하는 동안 나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정성스레 한자씩 써 내려간 것이 마음에 너무나 와닿았기 때문이다.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나에게 그것이 뭐냐고 물어보았는데 나는 아까 한창 일하는데 아이가 준 것이라고 고맙다고 쓰여있네요? 라면서 멋쩍게 웃었는데 이 말을 듣고 있던 사장님이 이야~ 난 이 일 하면서 그렇게 아이에게 고맙다고 쪽지 받는 사람 처음 본다고, 네가 생글생글 잘 웃고 해서 아이가 좋았나 보다! 라며 한마디 건넸다. 나는 창문을 내려 아이가 보이는 쪽으로 고개를 빼죽 내밀어 보았는데, 집 앞에는 엄마와 아이가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점점 멀어지는 모습에 나도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한창 일이 지쳐 갈 때쯤 이었는데 마치 보약 한 채를 받아 마신 기분이었다. 그저 아이의 눈엔 편견 없이 노동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짤막한 단어 하나에 표현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간 이방인처럼 느꼈던 마음이 따뜻한 봄이 다가와 얼음들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처럼 내 마음도 녹아 촉촉히 젖어 들어갔다. 물질적 보상과 함께 심리적 보상을 함께 받은 것 같다.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했던 시기의 나에게 더없이 큰 선물이었다.


외국에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그저 몇 개월의 짤막한 체험과도 같은 경험 있었지만 수년 수십 년을 평생 살아온 곳이 아닌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간다는 건 어쩜 학창 시절 일 년 동안 열심히 친구를 사귀고 한창 정이 들어 재미있게 생활할 때 뜬금없이 전학 가서 낯설고 어색한 곳에 동떨어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든 과정에서 하루하루 이겨내고 견뎌내면 결국엔 향기로운 꽃처럼 피어나리라 나는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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