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육이를 품에 안고 돌아오던 날
식물을 키운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된 지 어느덧 3년 차. 매년 가을을 보낼 즈음이면 베란다를 되짚어 보며 한 번씩 고민에 빠진다. '과연 나는 지금... 잘 하고 있는 걸까?'
두 번의 겨울과 세 번의 여름을 보내고 또다시 시작된 겨울나기를 걱정할 때나, 처음과는 많이 달라지고 커져버린 지금의 베란다 생활이 조금 버거워질 때쯤, 나는 옛 사진을 찾는다.
처음 다육식물을 사기 위해 꽃시장에 갔던 날과, 바스락거리는 비닐봉지에 양 손 가득 화분들을 들고 돌아오던 그 시간의 기억은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두려움 반 설렘 반, 알 수 없는 그 기분은 고스란히 비닐 포트에 심긴 채 박스에 줄 맞춰 서 있는 그들의 사진 속에 남아있다.
새 봄이 오고 동네 작은 꽃집에서 이름표 하나 없는 다육이들을 사들고 와서 그 이름을 찾겠다고 책이니 인터넷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던 시간 또한 그렇게 남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울 외곽의 어느 농원을 찾아갔다 돌아오는 먼 길에는, 가는 동안 흙 한톨 쏟지 말라고 돌돌 감아준 배려의 신문지가 화분마다 함께 했다. 품에 꼭 끌어안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품 안의 아이를 보듯 박스 안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돌아오는 길은 그리 멀지 않은 듯 했다.
하나하나 신문지를 풀어가며 조심스레 화분을 꺼내어 놓고 나면, 비로소 안도감이 밀려온다. 행여 다친 곳은 없나 살펴보고, 집에 있던 제일 예쁜 화분을 골라 조심스레 분갈이를 하고, 햇빛이 가장 잘 들어오는 자리에 줄 맞춰 세워놓고 나면 이보다 더 기쁠 수가 없는 일이다.
손목에 달랑이며 들고 왔던 봉투 속, 팔이 아플 정도로 안고 왔던 박스 속 다육이들의 사진 속에 어느 첫사랑의 기억처럼 설레는 마음이 남았다. 그 첫사랑의 기억으로 다시 한번 겨울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