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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워서갈비 Jul 19. 2021

내 아이가 입원했다

육아 근육이 단단해지는 시간


폐렴이네요. 입원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소아과 의사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우리의 입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내 아이의 첫 입원이자, 엄마로서 나의 첫 입원. 그저 기침 조금 하는 줄 알았는데, 폐렴이라니. 5살 때 앓았던 폐렴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는 나에게 폐렴이란 두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폐렴, 입원' 이 두 단어를 듣자마자 비판적인 사고를 할 겨를도 의지도 없이 입원하기로 결정했다. 마음의 준비는 물론 물리적인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아 두어 시간치의 여유와 기저귀 한 장으로 하루를 버텨야 하는 줄도 모르고.


입원 수속을 마치고 아이의 손등에 링거줄을 연결하러 갔다. 괴상한 투명 줄을 주렁주렁 매단 다른 형들을 본 아이는 주사 바늘을 찌르기도 전에 자지러지게 울었다. 오동통한 손등에 바늘이 입실했고 내 마음도 찌릿했다. 자, 인사해. 일주일 동안 너와 함께할 링거 친구야. 검사를 위해 피를 세 통이나 뽑은 아이는 여전히 자지러졌다. 알사탕 몇 개로 겨우 달래 안내받은 입원실로 향했다. 두 평 남짓한 공간과 수납장, 벽에 매달린 작은 벽걸이 티비, 냉장고. 이것들로 일주일을 버텨야 한다는 거지, 하고 생각하니 아득했다. 빅매치를 예감하며 짐이랄 것도 없는 가방을 풀었다. 아직 해가 중천에 닿지도 않은 오전의 시각. 분주히 방을 들락거리는 간호사들의 안내를 받는 내내 아이는 티비를 봤다. 다행히 티비에서 24시간 뽀로로가 나왔다.


"쿨럭, 쿨럭." 아이는 계속 가쁜 숨을 쉬면서 기침을 했다. 이마를 짚어보니 여전히 불덩이였다. 많이 힘들겠다,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이 옆에 몸을 뉘었다. 우리는 좁은 병원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아이가 갑자기 까르르, 웃으며 장난을 친다. 나는 또 왜엥? 하며 간지럽히기. 달리 할 것도 없고 해서 우리는 그렇게 계속 같이 누워 있었다. 링거줄이 매달려 있지 않은 아이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링거 바늘이 꽂힌 쪽의 손을 바라보았다. 붕대를 칭칭 감은 탓에 통통한 손은 보이지 않았고, 누가 보면 아주 아주 많이 아픈 아이처럼 보이는 비주얼이었다. 문득 아이로부터 열기가 전해졌다. 나는 마치 함께 앓고 있는 것처럼 나른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뽀로로 삼매경이던 아이는 갑자기 몸을 틀어 내 배를 베고 푸지게 누워버렸다. 그리고 감탄사를 날렸다. "히야, 엄마 배는 아주 푹신하네-에!" 초밀착의 시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날 내내, 아니 입원 기간 내내 아이는 나와 초밀착하려 애썼다. 나와 조금이라도 더 많이 닿겠다는 듯이 몸을 내게 자꾸 기대었다. 그러게, 단유한 이후로 너와 이렇게 붙어있었던 적이 있었나. 허리디스크가 터져 버려 심지어 돌 이후부터는 널 안아준 적도 많지 않으니. 오죽 엄마가 고팠겠다. 입원실의 내 아이는 그동안 못 안은 것 다 안아보고, 아파서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김에 어리광도 잔뜩 부렸다. 고열에 정신 못 차리면서도, 쓴 약에 얼굴 찌푸리면서도, 호흡기 치료에 질색하면서도 순간순간 아이에게서는 깊은 충만감이 실실 배어 나왔다. 그건 엄마와 온종일 초밀착해 있다는 기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진짜 정-말 힘들어 죽겠는데, 이상하게 조금 기뻤다. 아이가 내뿜는 사랑스러움을 진하게 흡수했기 때문이었을까. 아이의 사랑스러움은 넓은 공간으로 퍼져나가지도, 누군가와 나누어지지도 않은 채 좁은 방 안에서 오롯이 나에게로만 흘러왔다.


이렇게 계속 꼭 붙어 있었다


물론 힘듦도 나에게로만 흘러왔다. 입원 생활은 쉽지 않았다. 바로 조금 전에 아이의 사랑스러움... 어쩌고 했지만, 나는 틈만 나면 아이에게 버럭 거리기도 했다. 역시 모순 덩어리! 하지만 밥과 약 거부가 심한 아이에게 하루 세 번 그것들을 먹인다는 것은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었다. 감언이설로 꼬시는 것도 한두 번 이어야지. 더 이상 써먹을 말도 남아있지 않아 포기한 패잔병처럼 주저앉아 있기도 했다. 그러면 아이가 이번 한 번만 봐준다는 듯 슬그머니 와서 밥이나 약을 먹여달라고 했다. 아아, 가시덤불 같은 육아여. 그래도 초밀착 케어가 통한 것인지 아이의 증상은 빠르게 호전되었다. 열도 내리고 기침도 잦아들었다. 비교적 약한 바이러스성 폐렴이고 상태가 심각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퇴원 시점도 빨라져서 닷새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병원을 나서며, 이 거대하고 낯선 공간에서 아이와 내가 '메이트'였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일방적으로 내가 아이를 돌본 것이 아니었다. 나 역시 아이 덕분에 외롭지 않았다. 병원 안에서 우리의 입원실은 일종의 섬 같은 것이었다. 둘이서 밥을 먹고, 둘이서 잠을 자고, 둘이서 놀이를 하는 섬. 다른 섬에서 잠시 건너올 수는 있지만 이 섬에서 내내 사는 것은 우리 둘 뿐인 것이다. 이 섬에서 일어난 일은 우리 둘이 해결해야 한다. 그런 심정으로, 평소보다는 조금 더 아이의 의견을 이끌어내려고 애썼다. 눈이 퀭해지도록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결국 아이가 내 설득에 동의하는 경우 대부분 미션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아이와 내가 동등한 선상에 있다는 감각. 서로의 오픈 마인드. 그리고 아이가 내 설득에 동의했을 때의 쾌감. 그런 것들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며칠 동안 인내의 시간을 보내자 새로운 감각을 경험할 수 있었다. 요가할 때 안 쓰던 근육을 쓴 후 시원함을 느껴본 경험이 있는가? 아니면 아령의 키로수를 높였더니 안 쓰던 근육이 자극되는 느낌을 느껴본 적은? 어쩐지 그것과 비슷한 기분이었다. 육아하며 잘 안 쓰던 근육을 제대로 한번 쓴 듯한 개운한 느낌. 통증을 견디면서 조금 더 뻗었더니 보이지 않는 어떤 근육이 조금은 단단해지게 되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엄마인 내 생각이다. 아이는 나와 포개져 있던 시간에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물어봐도 영 딴짓만 하니, 모를 일이다. (혹시 탈출, 자유를 꿈꾼 건 아니겠지...) 그래도 링거 바늘이 빠져서 피가 줄줄 흐를 때 허리디스크고 뭐고 자길 들쳐 메고 내달리던 엄마, 약을 먹어야 하는 이유를 매일 20분 넘게 설명하고 약을 먹으면 늘 꼬옥 안아주던 엄마, 밥 한 숟갈 먹을 때마다 물개 박수 치던 엄마, 뭐 이런 몇몇 장면들은 어릴 적 사랑받던 기억으로 박제되지 않을까, 하고 그저 기대해볼 뿐이다. (물론 티비를 재미나게 실컷 본 기억이 박제될 가능성이 더 높음을 인정한다.)


닷새 입원하면서 링거 바늘이 6번이나 빠지는 전력을 가지게 된 장난꾸러기를 온화하게 육아하는 법이 있을까. 아직까지 나는 그 방법을 찾지 못했다. 다만 이번에 입원이라는 고밀도 육아 훈련을 거치면서 조금은 성장했다. 남편 말을 빌리자면 '육아에 인이 좀 더 박인' 것이다. 막상 링 위에서는 회귀할지라도 다음 단계로 한번 나아가 본 육아 경험은 몸에 배어 있다고 믿는다. 저 앞에, 링거줄을 빼고 신나서 달랑달랑 걸어가는 아이의 등이 보인다. 육아 근육이 조금 단단해진 나처럼, 아이도 어쩐지 더 자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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