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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워서갈비 Feb 22. 2022

세련되지 못한 질투의 역사

내가 질투하는 곳에 내 욕망이 있다






질투(嫉妬, jealousy)에는 두 가지의 조금 결이 다른 뜻이 있다. 하나는, 남을 부러워하는 감정.

그리고 그 감정에서 비롯된,

사랑하고 있는 상대가 자기 이외의 인물을 사랑하고 있을 때 일어나는 대인 감정.


이건 한 상대에게 그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꼈던 나의 질투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야야야! 저기 좀 봐!


책상에 엎드려 있다 수군대는 아이들의 소리에 몸을 일으켜 창 밖을 내다보았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운동장에는 긴 생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여자아이가 걸어가고 있었다. 치마 길이를 반이나 줄인 낯선 교복을 입었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녀가 나의 첫 질투의 대상이자 동시에 내가 미친 듯이 사랑하게 될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중성적이면서도 아름답고, 퇴폐적이면서도 똑똑한 중학생 여자아이. 나는 그녀에게 강한 호기심을 가졌다. 말을 걸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어느 날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고 있는데 그녀가 옆으로 다가왔다. 포장지에 둘둘 만 빼빼로를 하나 건네더니 먹으라고 하곤 부끄러워하며 가버렸다.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그녀와 '아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작문 수업 시간이었다. 몇몇이 일어나 자신이 쓴 글을 읽어 내려갔는데, 그녀의 글은 멋모르는 내가 듣기에도 아름다웠다.


순간적으로 강렬한 질투가 밀려왔다.

질투는 욕망을 정확하게 투영해낸다. 그러니 질투하는 대상을 가만히 바라보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나는 그녀처럼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질투와 동시에 깊은 절망감 역시 느꼈다. 글쓰기로 그녀를 이기기란 어려울 것을 직감했기에. 앞으로 오랜 시간 질투라는 감정 속에 갇혀 있어야 할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 절망은 나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했다. 그녀를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대결 구도를 해체하는 쪽을 택했다.

그녀와 대결하지 않기 위해 나는 그녀를 더욱 사랑하려 노력했다. '아는 사이'에서 '친구'가 되려 했다. 그리고 실제로 점점 더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와 베스트 프렌드가 된 나는 그녀의 재능을 더 이상 질투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그녀의 재능이 자랑스러웠다.

우리는 늘 모든 것을 함께 하면서 서로의 일부가 되어 갔다.






어느 순간 그녀에게 내가 모르는 세계가 열렸다. 새로운 친구들이 있는 미지의 세계. 나만 아는 그녀가 점점 희석되어 가는 것이 싫었다.

다른 친구들과의 약속 때문에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나는 운동화 앞코로 땅을 팍팍 치면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녀에게 물었다.


ㅡ 우리 떡볶이 먹으러 안 가?
ㅡ 아, 미안. 오늘은 안씨랑 어디 좀 가기로 했어.



그녀에게 느끼는 또 다른 형태의 질투.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녀가 온전히 내 것이었으면 했다.


다른 친구를 만나고 돌아온 그녀에게 심하게 화를 낸 적도 있었다. 그녀는 그냥 허허, 웃었다. 무해한 웃음에 또 미치게 화가 났다.

몇 번이나 그녀에게 일방적인 절교를 선언했다가 아무렇지 않게 다시 찾아가 말을 걸기도 했다. 화장실마저 함께 가던 학창 시절 단짝에 대한 소유욕과 질투가 내게 지독한 신열을 앓게 했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재능을 질투하고, 또 사랑을 질투하면서 질투라는 감정으로 범벅된 시절을 보냈다.







지금은 누군가의 재능에 가슴이 쿵 내려앉지는 않고, 질투하는 대상을 사랑하려는 노력도 물론 하지 않으며,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집착하지도 않는다.

질투라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속수무책이던 그 시절은 흘러갔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질투를 느낀다.

특히  쓰인 글을 보았을 , 묘한 생기를 느낀다.


옷을 잘 입는 사람을 질투해 본 적이 없는 나는 일등 패션 주자가 되려는 마음이 없는 게 분명하고,

축구를 잘하는 사람 역시 내 질투 대상 리스트에 올라오지 않는다.

하지만 글에 있어서는 조금 다르다. 순간적으로 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른다.


질투를 드러내는 것은 세련되지 않다고 믿으며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 내 욕망이 정확히 놓여 있다는 것을 안다.


세련되지 못한 질투의 역사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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