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위에 쓰인 글자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내 미래의 모습을 적어보라는 주문을 듣자마자 머릿속 공장이 빠르게 돌면서 어떤 이미지 하나를 찍어내 툭 던졌다. 나는 그걸 충실히 반영하여 거침없이 썼다. "고양이가 있는 서점 차리기." 그런데… 좀 낯설었다. 모름지기 장래희망이란 치열한 고민과 늠름한 패기의 집약체여야 하거늘, 내 것은 초면인 것처럼 낯설었다. 문득 웹툰 <유미의 세포들>이 떠올랐다. 유미의 머릿속 맷돌을 차지한 세포가 그녀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설정. 내 머릿속 조종석에도 미지의 세포가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아빠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읽다 만 책을 뒤집어서 갈매기 모양으로 두면, 이러면 책이 다 상한다며 펼쳐둔 책을 오므렸다. 그럼 나는 매번 어디까지 읽었는지 몰라 성질이 났다. 그토록 책을 사랑하는 아빠. 그 마음이 넘쳐흘러 결국 어느 날 중고 책방까지 열기에 이르렀다. 책방은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근처에 자리 잡았다. 앞에서 보면 한눈에 들어오는 아담한 책방이었다. 책방은 비좁고 책은 넘쳐나서 천장까지 책장을 붙여 책을 빽빽하게 꽂았다. 그래도 책은 여기저기 기둥처럼 쌓여 있고 어딜 가나 우거져 있었다.
책방이 비좁든 말든, 나는 학교가 끝나면 책방으로 가서 밤이 될 때까지 책을 읽었다. 만화책, 소설, 어린이 잡지, 역사서 등 온갖 책을 탐독했다. 때로는 가만히 앉아 책을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우두커니 책방 밖의 소리를 듣기도 했다. 아빠도 인기척이 없는 시간이 되면 낡은 가죽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고양이가 냉큼 아빠의 무릎 위로 올라갔다. 그 풍경을 보며 나는 웃었다. 그 시절의 나는 아빠의 책방이라는 커다랗고 유익한 어항 속에서 헤엄을 마음껏 즐기는 물고기였다.
오늘의 나 역시 책을 읽는 것과 책방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래도 무엇인가를 오래 접하면 그것이 그의 삶을 구성하게 되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책과 책방에 대한 취향과 그것을 업으로 삼는 것 사이에는 어마한 간극이 있지 않나. 갑자기 책방지기가 되겠다고 선언한 이유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문화적 향유나 생계유지가 이유일 것 같지는 않았다. 문득, 책방을 차린다고 내게 알릴 때 상기되었던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거였구나. 아빠의 책방을 똑같이 재현하려는 ‘책방지기 DNA'가 내 안에 있었던 것이다. 아빠로부터 나에게 면면히 흘러온 그것.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생체에 아로새겨진 것이니 빨리 알아차리지 못할 수밖에.
인생 한 어귀에서 맞닥뜨리게 된 이 '책방지기 DNA'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일종의 숙명처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해 오던 대로 책방지기와는 별 상관없는 삶을 살면 되는 것인가? 하지만… 몰랐으면 몰랐지 알게 되었는데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상관없는 삶을 살기에는 책을 좋아하는 내게 책방이라는 테마가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아아, 나만의 여유롭고도 활기찬, 트렌디하면서도 건강하고 지적인 문화 공간이 있다면 그것대로 좋을 거야…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몸이 달아 들썩거렸다.
나는 연구원이라는 직업병을 승화시켜 맹렬히 책방지기의 삶을 염탐하기 시작했다. 책과 SNS 등을 총동원해서. 그러나 당장이라도 책방을 열 것처럼 몇 달간 이글대던 두 눈이 한순간 빛을 잃었다. 도무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책방 오픈 과정의 어려움들을 견딘 사연, 호기롭게 책방을 열었다 망한 사연, ‘셀럽'들의 흥한 책방 사연 등이 눈에 들어왔다. 저 정도 열정은 있어야, 저 정도 인지도는 되어야, 저 정도 자본은 있어야 된다고 지레짐작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아빠를 떠올리고 말았다.
아빠의 책방은 외환위기 이후 완전히 타격을 받았다. 당대의 서사들이 그렇듯, 책방을 7년 동안 지켜낸 아빠의 충정에도 불구하고 책방은 폐업 수순을 밟았다. 마지막 날, 피난이라도 가듯 꾸역꾸역 터질듯한 차에 책을 밀어 넣던 아빠. 아빠는 일의 터전을, 나는 어항을 잃었다. 그 후로 몇 달간 마음이 쓰였던 것 같다. 책방이 계속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기에. 그리고 책방의 주인이 책을 그토록 사랑하는 이였기에. 아빠는 책방지기 DNA를 나에게 주는 동시에, 사랑한다는 것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세계에 대해 알려준 사람이 되었다.
한 김 식은 열정은 동력을 잃고 사장되었다. 나는 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기보다는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찾는 유의 사람에 가까웠다. 돌이켜보면 이런 패턴의 연속이었다. 새로움과 변화에 철저하게 저항했고, 그러다 어쩐지 내가 안정-지향적 인간이라고 믿게 되었다. ‘하던 일을 계속 하는 것도 용기'라고 세상에 외쳐대면서. 결국은 익숙한 일을 벗어나는 것이 가장 두려운 일이 되었다. 제 아무리 책방지기 DNA라도 끼어들 틈새 없는 견고한 두려움이었다. 그 두려움은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만을 하려는 지독한 완벽주의와 잘 버무려져 하나의 무기가 되었다. 나의 ‘시작'을 파괴하는 강력한 무기.
요즘 책방지기 DNA의 근황이 어떠냐고? 여전히 잘 살아남아, 하는 일이 부진할 때에 주로 소환된다. ‘나 이거 할 거야…' 하는 마지막 보루나 ‘안 되면 이거 하면 되지…' 하는 영혼의 안식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조금 달라진 점이라면, 이제는 ‘책방'을 ‘일'과 연결시키지는 않는다는 것. 책방이 일이 되는 순간, 어떻게 오픈해서 운영해야 할지, 적자가 나지 않는지 따위의 질문에 다시 완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책방과 ‘나'를 연결시킴으로써 역전승(!)을 노린다. 나는 어떤 것을 할 때 가장 즐거워하는지, 내가 책방과 왜 어울리는지, 책방지기가 된 내 모습은 어떨지, 책방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이 질문에, 그리고 내게 느리지만 진심으로 답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