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규
진시황제 영정·嬴政 이 장당을 연나라 재상으로 삼고 조나라를 치기 위해 여불위에게 이 일을 맡긴 것이다. 한데 장당이 이 여불위의 부탁을 거절했다. 그 까닭은 이랬다. 연나라로 가려면 조나라를 거쳐야 하는데, 진소양왕 시절 조나라 정벌에 앞장선 장당을 조나라가 얌전히 통과하도록 두지 않을 것이란 것이다. 그래서 여불위는 고심이 깊었던 차 감라가 나선 것이었다.
사마천 사기 저리자 감무 열전에 나오는 감라 얘기다. 한국사마천학회 김영수 교수께서는 이 얘기를 감라자천·甘羅自薦 즉, 감라가 자신을 추천하다는 뜻이라고 일러 주셨다. 평원군 우경 열전에 등장한 모수자천·毛遂自薦과 같은 의미다. 한데 두 열전 속 여불위와 평원군의 반응은 흥미옵다. 첫 마디가 똑같이 '물러나라!'였기 때문이다. 2천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이 어린 젊은이가 나서는 꼴을 보기가 그렇게 싫은가 보다. '네가 뭘 안다고 나서는 것이냐!'하는 반응 말이다. 마치 감라·모수 두 사람이 당시의 MZ세대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 상황이 현재 어느 회사 사무실 한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과연 현재의 MZ 세대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냥 물러났을까? 아니면 감라처럼 '어찌 신을 시험해 보지도 않고 급하게 야단만 치십니까?'라며 되물었을까. 이 물음에 사마천은 여불위 답변은 생략하고 감라가 장당을 만났다고 기록했다. 감라와 여불위의 문답 보다 감라가 장당을 만나 설득한 일이 더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한데 이 시각을 현재 MZ 세대와 그 위 세대 간 사정으로 볼 때, MZ 세대가 감라처럼 되물었다면 선배 혹은 팀장 반응은 또 어땠을까? 묘한 신경전으로 이어졌을까 아니면 사마천 기록처럼 감라가 기회를 얻었을까. 한두 마디 더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경으로 감라에게 기회를 줬을 것이다. 그 결과 감라는 장당을 설득했고, 연나라 재상이 되었다. 하지만 감라는 이 일을 조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도록 하는 계책으로 발전시켰고 성공했다.
딱히 묘책이 없었던 여불위에게 감라는 굴러온 복덩이가 된 것이다. 하지만 여불위가 감라를 꾸짖고 물리쳤다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진시황이 과연 전국 통일을 했을까? 모를 일이다. 이 대목에서 여불위의 안목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여불위는 누구인가? 어린 시절의 진시황을 십여년 간 돌본 공적으로 문신후가 된 인물이다. 그런 여불위가 감라의 되받아치는 말솜씨는 당돌하지만 어떤 촉을 느낀 것이다. 게다가 상인 출신답게 감라에게 큰 배팅을 했고, 결과적으로 대박을 쳤다.
어느 날, 진시황이 황제 수렵림·狩獵林을 동서로 넓히고자 했다. 그때 우전이 나섰다. "좋은 일입니다. 그곳에 여러 짐승들을 길러서 동쪽에서 적군이 쳐들어오면 사슴들은 그 뿔로 적을 막아내기에 충분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진시황은 껄껄 웃었고, 수렵림을 넓히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님을 깨닫고는 그 일을 중단했다. 사리를 따져 간언·諫言 했다면 진시황은 분기탱천했겠지만, 익살스러운 비유로 쓸데없는 일을 막은 우전의 골계미가 드러난 일화이다.
'어찌 신을 시험해 보지도 않고 급하게 야단만 치십니까?'라고 저돌적으로 되묻는 감라의 말에 여불위는 사실 약간의 불쾌감과 또 약간의 부끄럼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불위는 감라의 반격이 꽤 적절했다고 판단했는 가 싶다. 진시황이 낸 문제를 잘 풀었기 때문이다. 이런 여불위의 태도 역시 '담언미중역가이해분', 이 때는 '말이 적절하면 다툼조차 해결할 수 있다'(경향신문. 언격(言格)이 인격(人格) 칼럼. 2012.)로 뜻 풀이 하는 것이 더 빛난다. MZ 세대와 소통이 절실한 리더라면 이 고사성어는 칠흑 같은 밤 길을 터주는 달빛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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