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SUNY] 답장을 탐하다

Sir Lawrence Alma-Tadema(1836 - 1912)

by 한봉규 PHILIP
Ask me no more. 1906. <wikiart>


내가 좀처럼 잠을 들지 못할 때는 두 가지 일 중 한 가지 일이 기습한 날이다. 하나는 그 사람이 너무 보고 싶어 얼굴을 베개에 처박고 몸부림치는 날이고, 다른 하나는 점 하나라도 찍힌 답장을 받은 날이다. 오늘 얘기는 그중 후자다.


짧은 안부와 출간 축하까지 받았다. 심멎 하기 전 호흡을 크게 세 번 했다. 촐싹거리다 전화번호를 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신기한 일도 있었다. 수면 마취로 검진을 받고 깨어난 몽롱한 상태에서 제일 먼저 떠 오른 건 그 사람 전화번호였다. 너무 또렷했다. 내게 전화번호를 알려준 그날 단번에 외운 효과인가도 싶었다. 엉겁결에 외운 건 아니다. 심장 박동 한 번에 숫자 하나씩 여덟 번을 올라타더니 맥박이 됐고, 내 숨이 각인한 것이다.


그러니 전화를 하고 싶을 때 하지 못하면 호흡이 거칠어진다. 당연히 심장이 아파 그날 밤 잠들지 못한다. 어쩌다 운이 좋아 그 사람 기운이 공기에서 느껴질 때, 이번처럼 글자 인심이 후할 때에는 산소 호흡기 떼고도 에베레스트산 두어 번 왕복도 할 것 같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 세상살이가 힘든 일만 있는 것은 아니구나 한다.


하지만 서둘러 답변은 또 하지 않는다. 내가 쓸 수 있는 한 번 답장 기회를 요긴하게 써야 하기 때문이다. 긴 글 쓴다고 그 사람 마음이 또 답장해 줄리 없으니 말이다. 두 커피 잔을 나란히 두고 사진 찍었던 그 테라스 카페를 기억하겠지. 볕이 고운 날 그곳에서 만날 약속을 받고 싶은 내 마음을, 보고 싶은 내 마음을 단 한 번 답장 기회로 얻으려면 밤새워 글을 찾고 문장을 탐해야 하기에 잠자는 것을 잊는 것이다. 성공한 적은 없다.


하지만 어느 날 나는 기습 당할 것이다. 약속을 덜컹 받아내는 뭐 그런 일 말이다. 이 상상을 하니 심장이 쿵쿵 쾅쾅 요동을 친다. 이런 날은 밤이 깊어질수록 그 사람 온 모습이 떠올라 새벽 동이 터와도 나는 모른다. 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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