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SUNY] 희망을 탐하다

Vittorio Matteo Corcos(1859-1933,이탈리아)

by 한봉규 PHILIP
Vittorio Matteo Corcos. Sogni(꿈).1896.


시내 방향 버스는 횡단보도를 건너면 있는 정류장에서 탄다. 파란 불을 기다리며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고, 통화를 시작한다. 무슨 얘기 하냐고 글쎄 특별한 일이 있어서라기 보다 그 사람과 통화는 지금이 가장 편안하기 때문이다.


저녁 수업을 하러 나가는 오후 4시. 수화기로 넘어오는 그 사람 혼잣말이 난 좋았다. ‘아, 이걸 빼 먹었네~’ ‘오늘 00이 와야는데, 지난번에도 안 왔는데' 중간에 오늘 수업 내용이 뭐냐 물으면 가끔은 퉁명하게 때로는 살갑게 얘길 한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탓에 도로 사정도 얘기하곤 하는 데 종종 ‘그래 먼저 가라. 저세상도 먼저 가라’하는 짜증을 듣는 것도 마냥 좋았다.


한 번은 ‘심심해서 전화하는 거지. 내가 심심풀이냐!’라고 반문하는 통에 대꾸할 말은 없었지만, 내게 말한 뉘앙스는 분명 애교였다. 통화는 계속되었다. 나는 버스에 있었기에 짤막한 답변 혹은 궁금한 몇 가지를 묻곤 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라디오 DJ 흉내를 냈고, 전화 연결한 애청자 대하듯 나를 추슬렀다. ‘이제 좌회전만 하면 돼’라는 말은 곧 착륙을 알리는 승무원 안내 방송 같았다.


그 말은 참 아쉬웠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목소리를 더 들을 수 없는 일은 슬펐다. ‘이제 됐지’하면 ‘좀만 더’라는 애달픈 내 말에 '40분 내내 통화한 거야. 이렇게 길게 하는 통화 이번이 마지막이야’라고 했다. 하지만 그 뒤로 그 시각에 전화를 걸면 어김없이 ‘심심풀이냐’라고 운을 뗀 후 ‘좌회전 신호 기다리는 중이야'까지를 반복했다.


신호등이 켜졌다. 횡단보도를 건너라는 안내 음성을 멀뚝히 서 끝까지 들었다. 그 사람과 통화하던 40여 분이 떠 올랐기 때문이다. 전화를 걸고 싶은 마음이 요동쳤다. 하지만 내년쯤에는 예전처럼 내 전화를 받아 줄 것 같아 안간 힘을 써 마음을 달랬다. 10분 후에 버스가 도착한다는 문자가 전광판에 떴다. 조금만 기다리면 버스를 탈 수 있듯 조금 더 기다리면 통화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차올랐다. 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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