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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봉규 PHILIP Mar 11. 2020

[삼삼한] 말을 추락시킨 죄

Jonathan Wills.Sharkies.

Jonathan Wills.Sharkies.willscanvas.com


"반드시 해야 됩니다."라는 말로 강의를 마친 적이 있다. 단호한 어조가 '좋았다'는 말을 듣고 우쭐했다. 이 기세가 좋다 싶었다. 하지만 말미가 너무 단호해서 '거부감'이 든다고 해 '반드시'는 뺐다. 그 뒤로 이 말에 대한 호불호는 없었다. 듣는 이들이 권력자처럼 느꼈는지 자연스레 '해야 됩니다'라는 말만 살아 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내 기분은 허전했다. '반드시'라는 말을 뺀 다음부터 인 듯싶다. 다시 쓸까도 고려했지만, "말투가 좀 부드럽고 안정적이세요!"라는 말을 듣고서야 잘 참았다. 안 쓰길 잘했다고 안도를 했다. 말로 먹고사는 이들이 겪는 직업적 애환 같았다.


'반드시'라는 말을 썼을 때 듣지 못한 '부드럽다'라는 말을 들으니 그간 얼마나 자주 이 말을 썼길래 말투 칭찬까지 받은 것일까. 하면서도 '반드시'라는 말을 들으면 돋는 거부감이란 것이 있는 것일까.


실은 '해야 됩니다'라는 말에 문제가 있었다. 김소연 시인은 "'해야 돼'라는 말은 옳고 좋은 것을 강압적으로 추락시켜 버린 나쁜 말이 되어버렸다'라고 했다. 거기에 내가 '반드시'를 붙여 썼으니, 나를 '라떼는 말이야~'를 애정 하는 '산업 시대 향수자'로 느꼈을 것만 같았다.


'하면  되는 ' 많았던 유년시절, 타인이 만든 '해야 ' 것을 의심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성실하다는 말을 들어야 안심을 했다. 건성건성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부끄럽고 창피했다.


 뒤로 마음을  잡는 '성실' 놓치지 않으려고 '반드시' 묶어 쓰기까지 했으니,  말이 '강압'  이제야 깨달았다. 게다가 듣는 이들을 권력자로 둔갑시키기 까지. 선한 마음을 나쁜 말로 추락시킨  죄가 무겁다. 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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