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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봉규 PHILIP Jun 07. 2020

[삼삼한] 답변

Creative by Chon Byung-Hyun,ssakgong

전병현 작가. Blossom oil on canvas


"어떻게 깎을까요?"라는 물음에 "여름 맞이해주세요!"라는 답을 내고 나는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거울 속 내 모습은 의기양양한 여름 볕이 쏟아지는 모양새다. 이쯤이면 어느 여름 녁에 둬도 꿀릴 일 없다. 자아도취 중인 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야겠다 싶으니 라이프 지 사진작가가 따로 없다. 해맑은 내가 거울 속에서 나를 맞이한다. 내 모습여서 가 아니라 웃는 얼굴 마다할 이 없다는 말, 진리가 맞다.


"어차피 대표님 마음대로 하실 거면서 왜 물어보시는 거야!" 잔손질을 하던 중 00부원장이 한 말이었다. '5번 칼라' '9번 칼라' '반반' 이란 말이 들렸다. 사정은 이랬다. 한 아이돌 콘셉트가 '보라색'인듯했다. 대표는 그 일을 맡았고 숍 내에서 까다로운 염색을 수월하게 해내는 00부원장에게 자문을 구한 것이었다. 하지만 00부원장의 첫마디는 심드렁하다. 자기 생각이 확고한 대표가 자신에게 묻는 것이 마뜩지 않은 모양이다.


헤어스프레이로 마무리를 지은 00부원장은 스탭인 A 씨에게 "미용 티슈 땡땡으로 사는 게 낫겠지?"라고 물었다. 이어 "리무버는 아무래도 땡땡땡이 낫지 않니!"라고도 했다. 내가 나설 일은 아니지만 '00부원장과 A스탭' 간 대화가 좀 전 ‘대표와 00부원장 간' 클리셰 같길래, A 씨에게 "부원장 님은 A 씨에게 왜 물어봐요. 어차피 부원장 님 마음대로 하잖아요”라고 운을 뗐다. A 씨는 그제야 피곤한 눈가를 활짝 피고 웃는다.


"저는 잘 모르겠지만, 대표 님이 부원장 님께 묻는 것은 확신을 얻고 싶은 거 같고요. 스태프들에게도 종종 묻곤 하시는 데 그건 이 일을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를 파악하시는 거 같아요. 부원장 님이 제게 묻는 것은 소모품은 주로 제가 많이 쓰니까 제 의견을 반영하시려는 것 같아요!" A 씨의 답은 명쾌했다. 반문할 여지없다. 눈치가 쌓이면 과학이라는 말을 나는 실감했다.


대표가 부원장에게, 부원장은 A 씨에게 질문한 까닭을 두 당사자에게 따로 묻지 않아도 A 씨의 답변은 탐나는 재능이다. ‘어차피 자신이 결정할 거면서'라는 말이 이제 더는 심란하지 않는 매끈한 정리다. 척하면 착하고 알아듣는 A 씨와 일하고 싶은 까닭도 알았다. 말에서 꽃이 필 때 봄은 제대로다.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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