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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봉규 PHILIP Jun 13. 2020

[삼삼한] 냉면

Creative by André Derain(1880 - 1954)

Andre Derain. Figures from a Carnival.





영업시간은 저녁 8시까지라는 것이다. 돌아선 등 뒤로 “뭘 드시려고요?"라고 묻는다. 고개만 주인장에게 돌린 채로 “제일 빨리 되는 건 뭐예요!” 그렇게 비빔냉면 한 그릇을 받았다. 반질반질한 면 중앙에 올려진 양념장이 시선을 끈다. 갓 잡은 태양초를 방금 빻아 장을 만든 것일까. 허기가 헛것을 보게 한 것인가. 여하튼 신선한 고추 향이 입맛을 달군다.


토마토 고명을 얹어 한 입, 겉절이를 얹어 한 입, 살얼음 육수 한 숟가락 떠 한 입으로 배를 채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양념장 맛이 굉장히 독특하네요~!”라고 말했다. 이럴 때는 보통 사장님이 말을 받아 주는 데, 주방장이 음식을 내놓는 입구에서 얼굴을 내게 보였고, 눈이 마주쳤다. “제가 사는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특별한 맛이에요!"라고 말했다. 이제 두 분에게서 답변을 들을 차례다.


주방장은 미소도 썩소도 없이 사라졌고, 업장 정리를 하던 사장님은 “우리 집 냉면 유명해요.”라고 짧은 답을 내놨다. “아~ 네~” 냉면 값을 치르는 데, 주방장이 다시 모습을 보였다. “배가 불러서 다 못 먹었어요.”


아이스크림으로 입가심을 하면서 주방장 행동이 떠올랐다. 기분 나쁘다거나 섬찟했다거나 그런 느낌은 없다. 면 소재지인 이곳에 오는 사람이라고 해 봐야 뻔하고 다들 동네 사람 일 텐데, 문 닫을 즈음 쳐들어와서는 양념장이 어쩌고 하니 어떤 놈인가 싶었는가 싶다.


배고픈 나그네 그냥 보내기 안타까워 냉면 한 그릇 내준 마음에 답례랍시고 한 말이 '맛 평가'를 한 모양이다.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 이 양념장 정말 맛있어요. 굉장히 신선한 맛이에요. 문 닫을 시간 양보까지 해 주시고, 주방장 님~ 잘 먹었습니다."라고 말이다.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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