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SUNY] 네스프레소를 탐하다

Creative by Richard Burlet(1957 ~ )

by 한봉규 PHIL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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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고 망설인 일이 있다. 눈을 감으면 삼삼하니 떠올라 그 주변을 맴맴 돌며 먼 발치에서 바라도 봤다. 가까이 가면 덥석 손에 들고 올까 싶어 이럴 바에야 안 보는 편이 낫겠다 싶어 더는 그곳으로 발길을 놓지 않았다. 그리 마음먹고 나니 못할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잊을 수 있었다. 적어도 그 사람이 “그 돈 벌어 뭐 했어~ 이런 거 하나 장만 안 하고~”라는 말을 듣기 전까진 말이다.


그 사람이 한 말을 옮기는 내 말투가 언짢거나 표정이 일그러져 있으면, 그 사람을 안하무인처럼 느낄 수 있다. 실은 말이다. 그게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한 이에게 보여주는 그런 표정,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내가 마음의 문을 열고 있는 데 이쯤이면 알아채야지 하는 새침한 표정, 그 사람 눈빛이 그랬다.


커피 캡슐(포티시오 롱고) 하나를 머신에 넣었다. 이이잉 하는 기계 소리가 눈바람을 일으켰는지 2월 눈이 내린다. 커피잔 안에서 올라오는 향이 입술에 보슬보슬한 질감으로 쌓인다. 그 사람 사는 곳으로 입김을 불면 이 커피향이 하얀 눈 날개를 달고 잘 도착할 수 있을까. 지금이 그때였다면, 색색별 커피 맛과 풍미에 대한 제법 세련된 얘기를 들었을 텐데, 뒤늦게 집안에 들인 탓에 혼잣말만 무성하다.


어느 날 아침, 영상통화를 받은 그 사람이 커피 내리는 그 머신 소리를 내게 보냈고, 커피 잔을 들어 싱긋한 인사도 보냈다. 잠자리를 막 털고 일어난 부스스한 모습이었지만, 에스프레소 향이 났다. 그 향을 낸 커피 캡슐이 무엇인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눈썰미 있게 봐 뒀어야 했는데, 눈치 빠르게 물어보고 메모했어야 했는데.


스물다섯 종류 캡슐을 몽땅 사 들고 와, 하나하나 탐미를 해도 그 아침 그 사람 커피 향을 찾을 수 없다. 누군가 2월은 '홀로 걷는 달'이라고 부르는 말을 실감한다. 그래도 여전히 나, 그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 거겠지. 내 커피 맛은 내게 그리 속삭인다. 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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