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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봉규 PHILIP Dec 01. 2020

[삼삼한] December · 12월

Photo by 조미진 작가



[H 갤러리]라는 타이틀로 11월 내내 브런치에 글을 써 올렸다. 마음에 드는 그림을 함께 실었다. 어떤 날은 그림을 보고 얻은 상상으로, 다른 날은 기억하고 싶은 날 특징을 글감 삼은 후 알맞은 그림을 택했다.


딱히 계획 한 일은 아니었다. 두 번째 책 원고 마감일이 임박해 열일 제쳐두고 써야 했다. 마침 공저자인 이병훈 소장이 집에서 함께 쓰자며 왔다. 그 첫날 비가 내렸다. 빗방울이 창에 수두룩 달라붙어 서로 엉켜 쓸리는 모습 중간중간 흐물흐물한 하늘이 보였다. 박혜라 작가 그림이 떠올랐고, 원고는 제쳐뒀다. 글을 쓴 다음에는 팔굽혀 펴기를 했다. 이 역시 계획한 일은 아니다. 본래 계획은 열흘 안에 계약한 원고를 끝내는 일이었다.


팔굽혀 펴기는 열서너개에서 그쳤다. 스무 개는 너끈하려니 했는데 말이다. 이날부터 첫 글을 썼던 오후 4시쯤에는 [H 갤러리] 제목을 달고는 카페라테는 행복이 지라는 한 마디에 감동한 글을 썼고, 불현듯 그 사람이 생각난 글을 쓰기도 했다. 그때마다 팔굽혀 펴기 개수는 하나씩 늘었다. 지금은 마흔 개도 거뜬하다.




원고를 마무리 짓고 며칠은 무중력 공간에 있는 양했다. 그림을 봐도 어떤 추억도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을 억지로 끄집어내면 금속 소리가 났고, 귀에 거슬렸다. 이 일이 뭐라고 마음이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애독자와 한 약속은 지켜야 도리를 다한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한데 이 감이 되레 기뻤다. 그 까닭은 아직 잘 모른다. 여하튼 간에 내가 중요한 일 하나를 하고 있어 보였다.


꼬박꼬박 쓴 글과 그림을 일자별로 정리했다. 그림 에세이 한 권을 완성한 듯 뿌듯했다. 표지 제목을 [H 갤러리] REMEMBER, NOVEMBER라고 썼다. 온라인 갤러리 전시회를 열어 볼까도 생각 중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갤러리 관장이라도 된 듯 묘한 느낌이 들었고, 그동안 몰랐던 내 재능을 발견한 것도 같아 의기양양도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상상하려고 한다. 내친김에 도전해보라고 부추기는 이도 있겠지만 적절한 선에서 멈추는 일 또한 좋은 능력이라는 것이 내 지론이다. PDF 파일로 묶은 이 한 권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쓸려고 한다. 몇몇 분이 바로 떠올랐다.




여기까지 온 내 기운이 좋았던지 12월 [H 갤러리] 주제는 뭘로 할까라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국내 작가 작품 중심으로 펼쳐볼까 싶다. 글감은 ‘출근 그리고 옷’으로 정했다. 매일 출근하는 일을 십몇 년 전에 그만둔 이후 출근이라는 말을 처음 입에 올렸다. 짐작건대 지난달 매일 한 편씩 글 쓴 경험을 출근이라는 말에 감정이입한 결과 같다. 옷이 출근이라는 말에 따라붙은 까닭은 지난달 글 쓰면서 들인 습관이다. 말하자면 잠자리를 털고 일어난 후 세안하고 새 옷을 꺼내 입고 책상에 앉는 일을 일과 시작이라고 여긴 탓이다.


지난달은 이 일을 의식하지 않았다. 출간 일정이 빠듯도 했고, 매일 새로운 글을 쓰는 일도 처음이고 하니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제 사정이 달라졌고, 꾸준히 글을 쓰고 그림을 보고 팔굽혀 펴기를 하는 이 삼박자 리듬이 경쾌하고 평화롭다. 무엇보다 사념이 없어 좋고, 불안감보다 희망을 품고 있는 듯 몸과 마음이 따듯하다. 게다가 옹색하고 쩨쩨한 마음도 바라는 만큼 걷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이 일이 12월 내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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