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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봉규 PHILIP Jan 05. 2022

[삼삼한] 목표 세우기

#한봉규

PHOTO BY chomijin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한 분이 손을 좌우로 흔들며 영어로 인사말을 한다. 내 뒤편에 서 있는 외국인이 하이~라고 반갑게 대꾸한다. 두 사람 얼굴은 명랑했다. 그 모습은 참 보기 좋았다. 저 외국인과 나도 인사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영어가 잼뱅이인 점을 알기에 곧바로 포기했다.


그 순간 말을 하지 않아도 인사는 나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릴 층에 도착했을 때 그 외국인과 비스듬히 선 채로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분이 답례 했다. 이렇게 만날 때마다 목례로 안면을 트다 보면 머지않아 좀 전 그분처럼 '하이~'하는 인사말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소한 목표가 생겼다.


오테몬가쿠인 대학 객원교수인 고다마 미쓰오는 그의 저서 '아주 작은 목표의 힘'에서 목표는 속도가 아니고 꾸준함이라고 말했다. 요컨대 외국인과 대화하기라는 목표를 세웠을 때, 영어 회화 앱을 깔고 또는 전화 영어에 가입하거나 학원을 등록하는 일 보다 충분히 해 낼 수 있는 가벼운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목표 달성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다. 그 가벼운 일을 방금 나는 시작한 셈이다.


하지만 이 목표가 있기 직전 나는 영어 잼뱅이인 점을 들어 빛의 속도로 포기했었다. 의지는 분명한데도 말이다. 고다마 미쓰오는 이런 말을 한다. 목표 크기가 크면 클수록 뇌는 격렬한 저항을 한다고 말이다. 수백만 년 동안 우리 뇌는 '생존'과 '현상 유지'를 그 어느 것보다 우선순위로 삼았고, 정밀하게 갖추는 데 온 에너지를 다 썼다고 한다. 해서 새 목표를 정하거나 꿈을 꾸거나 하는 일은 뇌 입장에서는 현상 유지에 어긋나는 모험이고 불확실한 일인 탓에 반항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목표 클수록 강도가 셀 수록 강렬하다고 한다. 앞서 외국인과 나도 대화하고 싶다는 목표를 빛의 속도로 포기한 것은 현재 내 능력을 넘는 큰 목표이기에 뇌가 극렬하게 반대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래서 목표를 세울 때는 자기 능력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말은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고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으로 목표를 아주 잘게 나누고 쪼갠 다음 사소하고 가볍게 할 수 있는 것부터 실행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뇌는 그것을 목표 · 변화로 인식하지 못하고 하루 일과 중 의례 있을법한 일로 여기고 반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국인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경우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만날 때마다 목례와 답례를 주거니 받거니 계속 하다 보면 조만간 가벼운 인사말 정도는 나누는 이웃이 될 것 같다.


이 일은 실패가 불가능한 일이기에 뇌는 저항할 명분이 잃고 마침내 내 목표를 되레 응원할 것이다. 그런 어느 날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동안 몇 마디 대화와 맞장구 정도가 가능해지고, 실행 수준을 조금씩 높이다 보면 스타벅스에서 그 외국인과 커피를 마시며 1시간가량 담소를 나누는 일도 가능하다.


목표를 속도로 여기면 작심삼일이 되고, 가볍고 사소한 일을 꾸준히 실천하면 낙숫물로 바위를 뚫을 수 있다는 말은 이러한 경우를 두고 쓰는 말 같다. 2022년 12월 5일, 이 날은 낙숫물이 바위를 뚫은 날이 될 것이다.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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