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제껏 얘기했죠. 어린 왕자는 B216행성에서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 운명이기에 그 사이 잠시 지구에 여행을 했습니다. 우주 질서로 그랬어야만 했을까요? 그 찰나의 시간에 어린 왕자는 프랑스 비행사를 만납니다. 다짜고짜 어린 왕자는 그 아저씨에게 양을 달라고 떼를 씁니다. 어쩜 그 프랑스인은 과연 토속 지구인이었을까요? 아니면 우주에서 파견한 일원 중 하나였던 걸까요? 순식간에 우주의 원리로 어린 왕자에게 양을 선물합니다. 어쩌면 어린 왕자에게 양은 중요한 게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이 프랑스인이 궁금해서 그런 방식으로 물어봤을지도 몰라요. 그에 대해 아마 왕자는 더 이야기를 지속해도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당신은 지구 생활이 행복한가요?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는 세상이 신기하고 재밌습니다. 매일 재미난 일들이 끊이지 않죠. 보고 씹고 느끼고 흥분할 것들이 넘쳐납니다. 거기에서 끝나면 안 된다는 인식을 주기 위해 다른 우주 존재가 파견되어 끊임없이 이 세상 육체 안에서 순환하고 있어요. 어떤 영혼은 빛이라고 떠들지만 빛이 아닌 어둠을 담당하기로 한 존재들도 있죠. 이들은 육적 세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해서 자신의 행성에서조차 육체적 삶을 도입하려고 아주 열심히 노력하고 있네요. 어차피 우리는 우주의 질서 안에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주는 자유롭습니다. 지구랑 달라요. 지구 안에서 불행한 이유는(그리고 잘못된 방법으로 행복하다고 착각하는 이유는) 바로 지구가 세상 전부이고 이 안에 있는 자원을 모두라고 생각하는 착각에서 시작됩니다. 플라톤이 그러죠. 이데아의 세계. 그게 바로 우주의 무한함입니다. 지구는 동굴이에요. 그 안에서 우린 제대로 착각 속에 꼴랑 100년도 안 되는 세월을 허비하고 있어요. 그 짧은 시간에 참지 못하고 기권을 하는 맥 빠지는 선택을 하는 존재도 있어요. 그러지 마세요. 게임은 금방 끝난답니다.
요즘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이 아주 세계적 인기예요. 친정엄마가 그러더라고요. “오징어 게임 모르면 간첩이야.” 이미 넷플릭스 서비스가 되는 지구 83개국 중에 80개국에 1위 링크가 됐었다고 하던데요. 아마도 오징어 게임을 모르면 외계인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징어 게임이 아닌 그 원조인 공룡과 외계인 오징어가 나오는 초능력 둘리 만화를 가져왔어요. 그때도 오징어가 외계인인 게 어이없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나온 영화 <컨텍트>에서도 외계인이 오징어더라고요. 그러면 아예 오징어 게임은 외계인이 만든 영화가 아닐까요? 아, 이렇게 이상한 부분으로 글이 흘러 가버리고 있어요.
우주는 시간의 제한도 없어요. 막힌 공간이라는 게 존재하지도 않아요. 내 이익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거나 없애야 할 필요도 없답니다. 근데 치명적 단점은 재미가 없어요. 지구에 재미를 위해 우주인들은 지구에 놀러 와요. 근데 의외로 이들은 겁쟁이였나 봐요. 바이킹이 재밌다는 소문을 듣고 정작 놀이동산에 놀러 왔더니 보니까 소리 지르고 울고 난리 치는 사람들을 보고 괜히 왔다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들을 위해서 우주를 떠올리며 위로해 주고 다시 재밌게 놀아보라고 격려할 수 있지요.
그게 어린 왕자에게는 양이었나 봐요. 그 상자 안에 있는 양으로 왕자는 조금 무서운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을 겁니다. 저에게는 그게 책이지 않을까요? 책을 펴면 죽은 사람도 살아오고 머나먼 칠레나 아프리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가짜라지만 진짜 같고 진짜이지만 내 머릿속에서 만들기 때문에 지구 게임처럼 깜짝 놀랄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나는 상자 안에 다시 책을 집어넣을 거예요. 그러면 왕자의 폭파된 행성 B216도 다시 살아나요. 머리 아팠던 바오바브 나무뿐 아니라 예쁘지만 까칠한 장미 또한 다시 살아나지요. 우주에서는 죽음은 그 한 과정일 뿐이에요. 지구처럼 시간이 가면 돌아갈 수 없는 게 아니고 공간이 한정되어 있어 무언가가 없어져야 생기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 곳이 바로 우주이니 까요. 책을 펼쳐 그 세계로 들어가는 건 마치 우주 안을 유영하는 것과 똑같아요. 도서관은 우주 정거장이라고 할 수 있지요.
상자 안에 나는 도서관을 집어넣을래요.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나는 재미도 포기할 수 없거든요. 생각 없이 책장 사이를 걸어가다가 ‘나 좀 봐주면 안 될까?’라며 떨어지는 책 있지 않았나요?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의 어렸을 적 한순간처럼 말이에요. 그런 재미난 만남을 상자 안에 집어넣고 다니면 어떨까요? 도서관을 상자에 집어넣는다는 건 우주를, 아니 사방팔방 우주 어딘가를 효율적으로 갈 수 있는 우주 정거장을 상자 안에 가지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생각만 해도 행복하네요. 빨리 도서관이 들어갈 수 있는 상자를 만들어야겠어요.
오직 내가 갖고 싶은 물건, 그것 하나만을 생각합니다. 어딜 가든 그 상자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면 제일 좋겠지요. 이왕이면 어른들은 보지 못하는 세계, 상자 안의 어떤 간절한 세계를 표현해 보면 좋겠네요.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는 경험을 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평상시 내가 보지 못하거나 외면한 세계와 만나는 것도 좋겠습니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자 안의 세계를 묘사했다면 그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해 주면 좋겠습니다. 그저 상자 하나를 그려놓고 그 세계를 묘사하는 것도 좋습니다. 보아 뱀처럼 윤곽선 하나를 그려놓고 이 안의 물건이 안 보여?라고 질문을 던지는 방식도 좋습니다. 그렇다고 그 상자를 그리스 신화의 판도라 상자로 만드는 건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