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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한엄마 Oct 15. 2021

막 쓴 글(아무도 안 읽었으면)

7기 신나는 글쓰기 (7)

 내 비밀을 알려줄게. 나는 매우 많은 착오를 경험했다. <미스터 노바디>라는 영화를 아는가? 그는 여러 가지 경험의 수를 알고 있다. 어떤 것이 그에게 가장 좋은 결과를 내놓을지 알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유명한 영화로는 <나비효과>. 즉, 계속 자신이 다시 삶을 선택하는 것. 결론은 가장 좋은 결말을 선택한다는 내용이다. 선택을 하면 할수록 인생이 꼬여가는데 마지막 선택은 모든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결말을 준다는 내용이다. 근데 감독판이 더 충격이었다. 진짜 행복은 주인공이 아예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 그는 뱃속에 있을 태아 때 스스로 탯줄을 목에 감아 죽음을 선택한다.

 지긋이 내가 무의식에서 원하는 하나는 바로 ‘자유로운 삶’이다. 무언가에 얽히지 않는 삶. 그래서 이 시대의 최고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나름 최선이다. 되돌린다고 해도 내가 이 삶을 살 수 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나 또한 어릴 때 기억이 <나비효과>의 주인공처럼 아주 단편적으로 기억한다. 근데 정말 이어지지 않는 기억이 딱 하나 있다. 나는 아기인 듯 싶고 누워있는데 어떤 귀여운 남자 아이가 하나 더 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아기 그림이 그려진 사과 맛의 이유식을 처음 먹었다. 뒤늦게 찾아보니 이는 거버사의 유리통에 든 사과맛 이유식이었다. 이때 모르는 존재가 이야기 했다.

 “너 여기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어.”

 “응?”

 “여기에서 이렇게 살다가 결국 일찍 죽을 거야.”

 “지금 네가 다른 선택을 하면 좀 더 많이 살 수 있어. 처음엔 좀 힘들텐데 살다 보면 익숙해질거야.”

 “나는 그냥 지금처럼 숨만 쉬고 살고 싶은데?”

 “넌 이미 지구에 온 이상 고통을 선택했어.”

 “그래. 그러면 결국 선택은 없다는 거 같은데?”

 “걱정 하지마. 다시 돌아올거야.”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그 다음의 배경은 곰팡이 핀 벽지가 보였다. 그리고 내 생일인가 보다. 내 생일 케이크와 모자가 있었다. 엄마는 갓 태어난 아이가 있었던가. 지금 생각해 보면 살아서 돌아온 두 번째 생일인 것 같았다. 예전 집에 비하면 너무 상황이 안 좋았다. 케이크를 놓고 골똘히 생각해 봤다. 내 아기 때 이야기가 떠올랐다. 모피어스를 닮았으나 걸음이 온전치 않은 내 친할아버지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잘못 집어 중심을 못 잡았을 때 내가 아장아장 걸어가 허리를 잡았던 기억이 있다. 엄마의 빨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이제는 소리를 내어 말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던 그 시간도 언 듯 기억이 난다. 가끔 할머니 집에 돌아가 언덕 위에서 버스와 헬멧을 쓰고 방패를 가진 무서운 아저씨가 교회 앞 계단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본다. 교회 뒤는 무슨 보호막이 있는지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저기 보이는 대학은 여자만 들어가는 대학이라고 한다. 할머니 집에 살았던 여학생은 여성가족부 산하 고위 공무원이 되어 가끔 뉴스에서 보면 할머니는 “얘가 이렇게 됐네.”라며 자주 말씀하셨다.

 그 대학을 내가 들어갔다. 그 사이 일들은 그냥 생략한다. 별로 생각하기 싫었지만 이상하게도 우리집은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자빠졌던 1998년에 우리에게 아무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사업한다고 목에 힘을 줬던 사람들은 술에 빠지거나 아빠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말 끝마다 ‘돈 못 버는’,‘가난한’ 공무원이라고 했었다. 이제보니 그 때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공무원은 철밥통이라고.

 나 또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선택했다. 왜 그랬을까? 엄마는 나를 너무 잘 안다. 내 생각에 욕망이 넘치는 내 젊음 안에서 사회에서 움직였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지금 애가 자꾸 자자고 난리를 쳐서 글을 더 못 쓰겠다.

 결국 나는 애 셋 엄마가 됐다. 이게 최선이라고? 나에겐 최선이다. 최선이 아니라면 다른 잘못된 선택은 나를 어떤 파국으로 인도했을까? 그건 뒤늦게 천천히 이야기하겠다. 앞뒤 없는 그 처음 기억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건 내가 안다. 근데 난 얘기 안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며 돈을 번다. 그런 돈을 버는 사람들이 10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바로 무당이라는 사람이다. 그 사람 뿐 아니라 전생을 얘기한다는 사람을 비롯해 유사 영적 느낌이나 생년월일로 별자리나 명리학, 주역, 타로 다른 사람의 점을 쳐서 돈을 버는 영리행위를 하는 사람까지 합치면 족히 300만 명은 될 것 같다. 용기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뭘 기준으로 자신의 돈 버는 행위가 당당한가? 돈을 내고 얘기를 한 경우 나는 한 번도 만족한 적이 없다. 돈을 내고 갑질을 당한 기분만 더러운 느낌이 들었다. 무얼 기준으로 그 사람들은 나에게 겁을 주지? 주식에 대해 아직도 욕을 하는 그분은 나에게 다짜고짜 돈을 잃었다고 했다. 그렇다. 그녀에게 돈을 줌으로써 돈을 잃었다. 주식으로는 돈을 얻었고. 타인에게 기분 나쁨을 선물하고 돈을 받는 그들은 도대체.

 그렇지만 나 또한 보이지 않지만 나는 알고 있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 그렇지만 저들처럼 뻔뻔하지 못하다. 그래서 나는 어기까지 밖에 얘기 못하네. 애가 엄청 운다. 자야겠다. 끝.


그런데 어린 왕자도 장미꽃도 너무 어렸어요. 사랑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하지만 사랑의 본질적인 의미를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 이해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소한 이유 때문에 사랑을 저버린 기억이 있나요? 외면한 적이 혹시 있나요?

B612 행성에 사는 장미꽃처럼 마음과 다르게 행동한 적은 없나요? 그렇게 서로를 오해한 나머지 누군가와 어린 왕자와 장미꽃처럼 틀어진 적이 있나요? 회복하고 싶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왕자의 B612와 같은 행성에 혼자 남겨둔 그런 사랑이 여러분에게도 있나요?

그 미완성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건 어떨까요?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때의 나, 그리고 그때의 사랑했던 사람을 위해 위로는 건넬 수 있잖아요. 미완성한 사랑을 글로 나마 다시 완성할 수도 있잖아요? 여러분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 듣고 싶어요.

참고 문장)   

「그때 난 아무것도 알지 못한 거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 꽃을 판단했어야 했는데. 그 꽃은 나를 향기롭게 해주고 내 마음을 밝게 해주었어. 거기서 도망쳐 나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 어설픈 거짓말 뒤에 따뜻한 마음이 숨어 있는 걸 눈치챘어야 했는데. 꽃들은 정말 모순 덩어리야! 하지만 난 꽃을 사랑하기엔 너무 어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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