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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길 Feb 28. 2023

서울 1989년

쉿, 허리 굽혀


지하도에서, 빌딩 꼭대기에서 살점 지지는

이십세기 한반도식 전류가 흘러나오고 있어


우리라고 불리는, 정말 우, 우습게도

우리 같지 않은 우리들이

벌건 대낮에도 야맹증에 시달리는


쉿, 숨죽인 채 엎드려 있어


최루탄 가스와 소독 전혀 하지 않은 압박붕대

환타, 코카콜라, 소주병이 타락했어, 타락

돌았어, 완전히 홰액 돌았어

똑같은 복장을 하고 화염병으로 둔갑했어


쉿, 움직이지 마


죽은 채 엎드려 있다가, 보도블록 전쟁이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될 때

잽쌉게 골목길로 뛰어

뛰다가 숨이 차면 하늘을 처음인 양 올려다봐


노랑내 나는 선진국민이 이야기하는

원더풀 코리아 가을 하늘을


이윽고 막이 걷히고

쓸쓸한 무대

적막한 광장

부리 색깔 변한 비둘기 두어 마리

열심히 시멘트바닥 쪼아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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