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방탄을 오랫동안 더 많이 좋아해 온 그 언니는 나와 같은 팀의 선배였다. 항상 숏컷을 하고 다니고, 사람들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기선제압하고, 일을 굉장히 똑 부러지게 잘했다. 반면에, 신입이었던 나는 그 언니 눈에 그저 한없이 쪼랩이었다... 회사 일의 강도가 워낙 세서 하루아침에 퇴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그 언니는 항상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않았고 사람들의 인사도 잘 받아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그 언니가 좋았다. 그 언니가 왜 좋았는지 생각해 보면, 나는 그 언니의 묵묵함을 좋아했다. 나도 평소에 아침 일찍 가는 편인데, 그 언니는 이미 미라클 모닝을 해서 9시 출근이면, 8시가 되기도 전에 회사에 나와 일을 하고 있었다. 확실히 업무량도 많고, 강도도 세기는 했지만, 그 언니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버티고 있었다. 워낙 머리도 짧고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가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엠마 느낌이 나는 그 언니를 이름보다는 블루언니라고 부르고는 했다. 그 언니를 좋아하는 팀원들도 워낙 많아서 친해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언니가 마음의 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주면서 우린 친해지게 되었다.
내적친밀감이 높아진 건, BTS 영향이 엄청나게 컸다. 그 언니가 BTS를 좋아하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 언니의 책상은 키보드, 피규어, 지민이 사진들로 항상 가득했다. 그 물건을 잘못 건드렸다가 죽음뿐이다. 처음에 노란색 강아지 같은 치미 캐릭터에 관심이 갔다가 BTS라는 그룹에 관심이 가게 되었다. 그 당시, 삶 자체가 침체기였던 나는 고정된 월급이 계속해서 들어와서 강아지를 병원에 계속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 고정된 휴무가 있다는 것만으로 침체기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내 삶에 조금 여유가 생기자, 나는 블루언니의 전파력으로 인해 새로운 덕질을 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아이돌이 된 BTS에 빠지게 되었다. 덕질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최애와 차애 또는 차차애까지 뽑게 된다. 블루언니는 내게 최애와 차애를 뽑으라고 했을 때, 주말 내내 나는 고민하다가 최애로 슈가를 뽑고, 차애로 정국이 혹은 지민이를 뽑았던 것 같다. 사실, 나는 그룹을 좋아하더라도 그 그룹 안에서 멤버 하나를 유독 좋아한다. 사람들은... 이런 내 모습을 보며 “악개”라고 불렀다. 악개는 악질 개인 팬을 뜻하는데, 오직 최애만을 응원하는 사람을 뜻한다. 나와 함께 BTS에 입덕한 상사분은 정국이를 좋아하면서 나에게 악개라고 말했을 때, 처음에는 상처를 받았지만 지금은 뭐.. 누구를 좋아하면 한 사람 밖에 안 보인다며 인정하고 있다.
내가 BTS를 좋아하는 건, 파워풀한 노래와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에 있었다. 그중에서 슈가는 메인 댄서, 메인 래퍼는 아니었지만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Agust D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믹스테이프를 듣는 순간.. 슈가에 빠져서 빠져나올 수가 없을 정도이다. BTS에 입덕을 하자, 덕질 선배인 블루언니는 내게 슈가 포카와 BTS 포토북을 주는 아량을 보이고는 했다. 그렇게 블루언니와 나를 악개로 호칭했던 상사와 나는 BTS로 똘똘 뭉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