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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Feb 02. 2024

잣 같은 상사



워너원의 덕질이 끝날 때쯤 나는 오랫동안 일하던 카페일을 영영 접었다. 계획 없이 퇴사를 한 건 아니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에 집중하고 싶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을 하는 것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돈과 성취감, 경력을 얻고 싶었다. 물론, 그 선택의 결과는 최악이었다. 좋지 않은 상사를 만나서 24시간 전화 대기조가 되었고, 그 상사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었다. 카페 일을 할 때보다 월급은 반이나 줄었고, 내 마음대로 휴무일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일주일에 한 번 쉬는 게 당연하지 않았고, 어떤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쉬라는 말을 했다. 무엇보다 나이 많은 상사는 계속해서 전화로 업무를 지시하며 제대로 된 피드백 또한 주지 않았다. 정말.. 한 달 해보고 때려쳤어야 되는데, 그 일 또한 꽤 오랫동안 버텼다. 왜냐면, 내 꿈이었으니깐. 

상사가 싫기는 했지만, 그 사람은 내가 일을 하고 싶은 바닥에서 오래된 사람이기에 배울 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하는 일의 속도가 빨라졌다는 점을 빼고는 없다. 그때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어쩌다 한 번 일을 다 끝내고 영화를 보러 갔을 때, 상사의 전화가 오면 영화 도중에 받으러 뛰쳐나가고는 했다. 수신음이 한 번 갔을 때 안 받는다고 상사는 나에게 왜 이렇게 늦게 받냐고 꼽을 주고, 영화관이어서 시끄러운 걸 알고 어디냐며 어떤 영화를 보는지 꼬치꼬치 묻더니, 마치 자신이 영화 보는 걸 허락해 준 것처럼 이상한 태도를 보이고는 했다. 거기에 자신의 무지함으로 인해 단어를 모르는 걸 내 탓으로 돌렸다. 정말 세상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참 많다. 


내가 그 일을 그만둔 건, 내 인생의 침체기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내가 사랑했던 강아지가 아프다는 걸 알게 되었다. 꽤 오랫동안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걸 보자 이상하다는 걸 알고 병원에 데려갔을 때 만성 신부전증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내 강아지는 항상 나를 기다렸지만, 나는 항상 그 아이에게 늦었다. 일을 한다고 집에 늦게 도착하고, 산책도 늦게 하고, 병까지 늦게 알아버렸다.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건 후회와 함께 병원 치료를 받으러 간 아이가 남긴 옷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것뿐이었다. 그 당시, 나는 적은 월급으로 생활하면서 생활비는 계속해서 마이너스가 되었는데 강아지 병원비까지 들면서 내가 모아 온 돈과 퇴직금을 까먹다가 바닥에 도달했다. 그런 상황에서 상사의 횡포와 폭언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결국 나는 퇴사를 결정했다. 나는 상사에게 말했다. 당신 때문에 내가 아프다고. 그제야 상사는 자신을 돌아보며 미안한 감정을 표현했지만, 나는 그 사람 곁에 남을 이유가 없었다. 어느 누구도 누군가의 자존감을 밟을 수 있는 권리는 없다. 나는 나를 지켜야 됐고, 강아지를 지켜야 됐기에 일을 그만두었다. 그다음부터 그 상사는 몇 년에 걸쳐서 몇 차례 나에게 연락을 하며 다시 자기 밑에서 일하기를 요청했지만, 나는 그 상사의 전화를 받지 않고 오로지 메시지로만 거절했다. 


그 당시, 나는 돈을 벌어야 했다. 다시 카페일을 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그대로 놓아버릴까 봐 두려움에 나는 구인공고에서 워라밸이 좋다고 한 거짓부렁의 회사에 들어갔다. 처음으로 회사생활을 해본 나는 마음이 맞는 동기들을 만나고, 다양한 상사들을 보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한 언니를 만나게 되었다. 방탄소년단의 지민이를 좋아했던 그 언니의 책상은 온통 지민이 사진과 지민의 캐릭터인 치미로 가득했다. 처음에는 유독 사무실에서 튀는 그 언니 책상과 물건에 관심이 갔다가 그 뒤로 일 잘하는 언니와 친해지고 싶었고 마지막은 방탄에 빠지게 되었다. 그게 나의 아미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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