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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an 30. 2024

덕질 권태기




나는 항상 “인생은 기세야”라는 말을 외치고 다니는 사람이긴 하지만, 가끔 삶에 권태기가 올 때가 있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는 게 지루해 죽겠고, 나 자신이 발전이 없다는 것 자체가 답답해서 숨이 막힐 것 같은 날에는 내 마음속에 잠재된 금쪽이가 튀어나오고는 한다. 온통 불만, 짜증이 가득한 금쪽이를 달래주는 건 혼자만의 편안한 공간에서 맛있는 디저트를 먹으며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 것이다. 


내 삶에도 권태기가 있는 것처럼 덕질을 할 때도 권태기가 존재한다. 보통 나는 1년 정도는 마치 절대 꺼지지 않을 것 같은 장작불처럼 불타오르고는 한다. 아이돌의 꾸준히 발매되는 앨범과 팬미팅, 콘서트에 참여할수록 내 덕질의 불씨는 점점 더 거세지게 된다. 그런데, 아이돌들의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 닥치게 되면 나 덕질 불씨는 순식간에 꺼져서 소생 불가능한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길거리에서라도 실제로 만나고 싶지 않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그 사람이라는 존재에 내 환상을 덧대서 상상의 나라를 펼치는 것이다. 아마 이건, 모든 사람들이 그런다는 게 아니라 파워 과몰입형 인프피인 나의 성향상 이럴 것이다. 그런데, 아이돌이 나와 같은 사람이고 가끔 나와 같이 금쪽이 짓을 한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환상은 깨지게 된다. 계속해서 환상을 지켜야 하는 아이돌도 하기 참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내가 워너원에 권태기를 맞게 된 건, 함께 일을 하던 덕질 메이트의 퇴사와 연관도 있지만, 사람에게 질린 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덕질을 하다 보면 내가 모르는 타인과 계속해서 엮이게 된다. 포카 교환을 하거나, 굿즈를 사려고 해도 나와 같은 나이대가 높은 사람들도 있지만 어린 친구들도 있다. 정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인다. 그러다 보니, 포카를 늦게 보내준다거나 받고 튄다거나 등등.. 정말 많은 경우의 사고들이 존재하게 된다. 이 부분은 내가 나중에 덕질하다 만난 빌런으로 따로 풀어줄 예정이다.. 워너원을 좋아했을 때 그런 빌런들을 워낙 많이 만나기도 했고, 콘서트 티켓팅에 매번 실패해서 한 번도 그들의 콘서트를 가지 못한 나는 덕질의 불씨가 꺼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워너원은 끝이 정해진 그룹이기이기에 처음부터 덕질의 끝이 정해져 있었다. 그렇다고 그때 워너원을 좋아한 걸 후회하느냐? 묻는다면 전혀 아니다.

탈덕이 아닌, 휴덕을 하게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의 노래를 좋아하고, 그들의 노래로 위로를 받고 있다. 


카페 일을 그만두고 몇 차례 이직을 했는데, 그때마다 신기하게도 워너원을 좋아했던 팬들을 만나게 되었다. 워너원을 좋아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우리는 추억을 공유하며 내적 친밀감이 어마어마하게 높아진다. 덕질이란.. 이래서 무서운 것이다. 나는 워너원을 끝으로 내 인생에 덕질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뒤에 더 엄청난 덕질을 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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