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신청곡 : 어디서부터
아무 문제없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다른 사람에게
왜 나는 이렇게 내 마음을 모르는지
어떤 게 아픈 건지 알고 싶어진 오늘
어디서부터
곡 이진아 / 작사 작곡 이진아
새해에 들어서면서 책을 여러 권 사뒀는데 제대로 읽지 못했다. 펴보지도 않고 한편에 쌓아두기만 했다. 영화도, 드라마도 거의 안 봤다. 인물 간의 관계를 파악하고 줄거리를 따라가는 것도 귀찮았다. 봤던 드라마나 예능을 켜두는 게 나았다. 아는 사람, 아는 얘기, 아는 사건, 아는 사랑.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다음 장면이 뭔지 알아서 편안하다면, 지금 나는 다음 장면을 모르는 게 불안한 걸까? 말장난 같다. 다음 장면을, 다가올 순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알고 있었던 적이 없는데 새삼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다는 건 좀 이상하지.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에 새롭게 등장하는 감정인 불안이는, 불안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한다. 잘해보려는 마음으로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보다 더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그럼에도 '잘해보려고 한' 그 동기를 인정받는다. 다른 감정들은 불안이를 포용하고 그를 폐기하거나 가둬놓지 않고 함께 잘 지내며 끝난다.
불안이의 폭주는 말 그대로 불안하면서 동시에 안쓰럽다. 누구나 살면서 극도로 불안한 감정을 느껴본 적 있으니까. 하다못해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세상 있는 신들을 전부 소환해 이 많은 사람이 타고 있는 버스 안에서 실수하는 일은 없게 해달라고 싹싹 빌어 봤다면. '내 방광은 참을 수 있다'고 되뇌지만 혹시 실수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거의 공포 수준이다. 그렇기에 바깥에서 영화를 본 나 자신은 영화 속 불안에 공감할 수 있다. 중요한 지점은 내 안의 다른 감정들도 불안을 미워하고 따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건강하게 모든 감정을 운영하며 살기 위해서는 '이래야 한다'는 걸 가르쳐 주는 것일까.
그렇다면 불안이의 '동기'를 들여다보고 싶다. 불안이 '잘해보려고' 한 행동은 결과를 제치고 최종적으로 인정받거나, 최소한 용인받을 수 있었다. 그가 느끼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불안이만의 단독적인 욕망으로 보이지만, 결국 불안이도 '나'라는 인물에 속한 하나의 감정이다. 불안이의 '잘 해내고 싶음'은 결국 나에게 도움이 되고 싶음이고 그것은 마음 속에 살고 있는 모든 감정들이 공유하고 있는 단 하나의 목표다. 불안의 동기 자체는 그 과정과 결과와 상관없이 다른 감정들에게 미움받을 수 없는 프리패스권이다.
불안해서 많은 것들을 해왔고 하고 있다. 지금은 필요도 없고 쓴 적도 없는 자격증을 따고, 내라고 하지도 않는 영어점수를 만들고, 구인 사이트를 습관처럼 들락거렸다. 아무것도 안 할 수 없어서 하기로 한 모든 것들이 재미없다. 사람도 안 만날 수 없으니 적당히 만나고, 빈 시간 가만히 있느니 뭐라도 보고, 뭐라도 배워야 하나 찾는다. 멀쩡하게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은 보이고 싶으니까 하긴 하는데 내 의지로 하는 게 아닌 것 같은 느낌이다. 다 그냥 내버려 두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만 하고 있자니 모든 게 열없게 느껴진다. 지금 나의 불안은 잠자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다른 형태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걸까?
무엇보다 불안한 건 나의 불안과, 다른 감정들이 나를 위해 '잘해보려는' 의지가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어디서부터 확인해야 할까. 가만히,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