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나는 날에는

by 호이

오늘의 신청곡 : 눈물 나는 날에는


우리들 마음 아픔에 어둔밤 지새우지만

찾아든 아침 느끼면 다시 세상 속에 있고

눈물이 나는 날에는 창밖을 바라보지만


곡 푸른 하늘(유영석) / 작사, 작곡 유영석



안구건조증으로 병원을 다닌 지 석 달이 넘었다. 콘택트렌즈를 낀 지 14년째, 바쁜 날엔 열 시간씩도 렌즈를 낀 채 돌아다니곤 했으니 뻑뻑한 느낌은 익숙하다. 그치만 요즘엔 눈이 많이 건조한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꽤 자주, 예전엔 그렇지 않았던 순간들에도 눈물이 금방 고이는 것 같은데. 눈 안이 자주 촉촉하게 젖는다면 안구건조증 증상은 좀 나아져야 하는 게 아닐까? 두 시간마다 인공눈물을 꼭 넣으라고 말하는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니, 내 눈은 눈물이 충분히 머물지 못하는 눈이란다. 금세 흐르거나, 공기 중으로 날아가버려서 울고 나면 오히려 더 메마른 듯 느껴질지도 모른다고. 눈물을 품지 못하는 눈이라니, 너무 이상하다. 왜 그런 거냐고 물으니 원인은 워낙 다양해서 정확히는 알 수 없다고 하셨다.


눈물이 오래 머물지 못하는 눈일지라도, 확실히 예전보다 눈물을 생성해 내는 기능은 활성화된 것 같다. 슬플 수밖에 없는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도 예전의 나는 좀처럼 잘 울지 않았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야 하는 시한부의 이야기라던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여 죽어가는 인물의 마지막 모습이라던지.. 그런 장면을 보며 나는 '이게 영화여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이 영화의 슬픔은 슬픔을 위해 만들어진 거니까, 울지 않아도 괜찮다고. 근데 요즘엔 그 '어쩔 수 없음'이 화가 나서 눈물이 고인다. (예시: '왜.. 왜 헤어져야 해 저 둘이 저렇게나 사랑하는데 대체 왜!! 그렇게 꼭 갈라놔야 속이 시원했냐!!')

살면서 내 힘으로, 내 의지로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무력해지는 경험을 누적하다 보니 이리됐나. 요즘엔 슬플 것 같은 느낌이 풍기는 드라마나 영화는 피하게 된다. 잠깐 고였다 날라가는 눈물이라 해도 그 안타까움을 느끼고 싶지 않다.


막상 울어야 되지 않을까 싶은 상황에서는 눈물이 충분히 모이지 않을 때도 있다. 어떤 사람과 헤어지던 날, 상대는 나를 '너'라고 불렀다. 앞에 있는 사람을 칭하는 이인칭 대명사일 뿐인데 한 번도 '너'라고 불렸던 적이 없어서 그랬을까? 그 정도의 거리감도 낯설어서 약간 눈물이 났다. 그 한 글자를 들었을 때 이 대화의 종착지가 어디인지 확실하게 예감할 수 있었다. 이미 '너'가 된 나는 다시 더 가까운 존재가 될 수 없음이 자명했다. 그럴 자신도 없었다.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는 다시는 울지 않았다. 어찌 됐든 계속 살아가야 하는데 울면 뭐 하겠어 힘만 빠지겠지,라고 그때는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때의 감정은 가슴속 깊은 곳 폐기용 저장소에서 어떤 식의 처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지난해 어떤 날에 점심을 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함께 일하게 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때에 맞게 쉬지 않고 하다 보니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고. 그러면서 '못할 것 같을 때는 도와달라고도 하고, 진짜 못할 것 같을 때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서 살아도 된다고'도 하였다. 애쓰면서 살아온 인생 선배가 기를 쓰며 살고 있는 후배한테 이런 식으로도 마음을 건넬 수 있구나, 느꼈다. 그 말은 나를 툭 울려서 흘러넘치게 하지도, 메마른 채 도록 냥 두지도 않았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뜨겁지도, 불편할 정도로 냉랭하지도 않은 적당한 온기. 그 정도로 타인의 마음에 다가가면 안구건조증 환자의 눈에도 적당량의 눈물이 꽤 오래 머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럼 전 어떡해요? 눈물이 이렇게 많아졌는데도 눈이 건조한 건 너무 억울해요. 정말 계속 건조하게 살아야 하나요? 읍소했을 때, 안과 의사 선생님은 천천히 치료하며 눈물의 양도, 머무는 시간도 늘려보자고 하셨다. 천천히 말고 빠르게는 안되냐고 여쭸더니, 지금 바로 울라고 하면 울고, 혹은 절대 울지 말라고 한다고 안 우는 게 되나요?라고 반문하셨다. 그게 무슨 말이지, 약국에서 약을 타면서 생각해 봤다. 눈물 컨트롤이 그렇게 쉬운 줄 아냐는 말씀인 거겠지. 정성껏 치료해서 적당량의 눈물이 적당시간 머무는 눈으로 만들고 싶다. 울지 않을 때도 지나치게 건조하지 않게, 너무 슬플 때는 와앙 터트려도 너무 빨리 휘발되지 않게. 그리고 메마른 누군가의 눈가를 마주하게 된다면 적정온도의 마음을 건넬 줄 아는 사람이 돼서 그이의 눈가가 적당히 촉촉해지게 하고 싶다.

keyword
이전 01화꽃처럼 한 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