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처럼 한 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

by 호이

오늘의 신청곡 : 꽃처럼 한 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


꽃처럼 한 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 그대여

새벽바람처럼 걸어, 거니는 그대여


곡 심규선, 에피톤 프로젝트/ 작곡 심규선/ 작사 심규선



기록에 대한 강박이 생긴 것 같다. 돌아서면 잊히고 스스로도 잊어버리는 나의 말들. 누구에게 가닿았는지, 어떻게 다가갔는지, 마이크를 타고 떠난 말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다. 말해야 하는 걸, 해야 하는 순간에, 적확한 표현으로, 제대로 전달할 줄 아는 게 말하는 사람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적확하지 않다고 틀린 건 아니지만. 또 때로는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이라도 잘 드러내야 할 때도 있다. 알지만 잘 안 되고 오래 생각할수록 더 입을 떼기가 어렵다. 마이크 앞에서 그렇다. 말하는 직업이 가진 딜레마일까? 그래서 노래를 들으며, 문자를 읽으면서, 원고를 보면서 드는 생각들을 기록해 두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랬는데, 시작이 또 한세월이다. 쓰려다 못쓰고, 썼다 지웠다 하다가 해를 넘겼다. 여기에 쓰려니까 이번엔 글로서도 타인에게 가닿아야 한다는 생각에. 혼자 오늘이나 어제를 반추하려고 쓰는 거라면 그냥 일기장에 쓰면 된다. 근데 일기장에 쓰라고 하면 깊게 생각하지도 숙고해서 표현하지도 않게 된다. 일기장의 독자는 나밖에 없으니 인심이 후해진다. 주로 이런 식이다. (오늘 뭘 먹었다, 으앙 맛없어서 남겼다, 그 메뉴는 이제 걸러야지, 피곤하다, 일찍 일어나기 싫다.) 이런 단순 현상 보고에 그친다. 나만이 독자가 아닌 글일 때 비로소 생각했던 걸 더 나은 표현으로 쓰게 된다. 결국 글을 잘 써내는 과정도 말을 잘하게 되는 과정의 일부인 것 같다. 아니면 반대일 수도.


말이든 글이든 나에게서 나온 어떤 조각이 누군가에게 가닿길 바라는 마음은 같다. 내가 나고 자란 배경 중 어떤 부분이, 이렇게 인정욕구가 강한 자아를 만들었을까? 끊임없이 증명해야 선택받는 프리랜서 일이 이런 마음을 만들었을까? 프리랜서 방송인에게 한 철만 사랑받는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한 철만 일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불안정함과 불안함이 지금의 나를 이루게 했을까. 그러나 한 철만큼의 시간은 분명 나를 기쁘게 한다. 대가 없이, 내 방송과 나를 가까이 두어 준 누군가의 한 철의 사랑이 나의 자양분이 되기에 기쁘다.


꽃으로 화사한 계절은 봄이 맞지만 사실 꽃은 모든 계절에 핀다. 꽃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철의 꽃만 사랑하지는 않을 것이다. 봄은 봄꽃대로, 여름꽃은 여름꽃 나름으로, 가을꽃은 가을꽃이라, 겨울꽃은 겨울꽃이니 사랑한다. 심지어 한 철에만 피는 꽃을 사랑했다고 한들, 그 꽃은 조금 기다리면 똑같은 자리에, 거의 약속했던 날에 해사하게 핀다. 그러니 한 철만 사랑한 건 꽃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그 사랑이, 그 마음이 한 철만큼이었던 것 아닐까. 그리하여 한 철의 시간은 나를 슬프게도 한다. 한 철에 마친 사랑을 탓할 수는 없고, 그저 더 긴 시간 사랑받으며 잘 해낼 수 없었던 나를 탓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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