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신청곡: Dance with me baby
나를 들뜨게 하는 것들을
하나둘씩 떠올려 (하나 둘)
예를 들면 하얀 티셔츠를 입은 너
집에 오면 반갑다고 꼬릴 흔드는 dog
먼지 없는 맑은 하늘
늦은 밤 너와 함께 한 drive
이런 게 나를 춤추게 해
곡 최정윤 / 작사 작곡 최정윤
하나하나 손으로 꼽다 보면 의외로 많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친한 친구와 알고 지낸 햇수, 독립하고 이사 다녔던 집의 개수, 사놓고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차지하는 자리. 다가올 날들을 걱정하느라 일상에서 작고 소소한 기쁨을 찾아 누릴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래서 하나하나 나열하며 떠올려보는 나를 들뜨게 하는 것들.
역에서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작은 미용실이 있다. 오며 가며 그 미용실 앞에 자주 서 있곤 한다. 유리로 된 가게문 바로 뒤에 고양이들이 있다! 만져본 적이 없으니 털이 찐 건지 살인지는 모르지만 한 덩치 하시는 분들이다. 한 마리는 치즈색과 흰색이 섞인 멋진 털을, 다른 한 마리는 회색 빛 얼룩무늬를 가졌다. 주로 조금 떨어져서 바라만 보다 지나치는데, 엎드려 있거나 꼿꼿하게 서서 바깥 어느 한 지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인간인 내가 보기에 엎드려 있을 때는 세상만사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이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는 절대 놓쳐선 안 될 무언가를 시선으로 붙잡아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극단적인(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가끔 창에 조금 가까이 다가가면 내쪽을 잠깐 바라보다가 다시 원래 보고 있던 창 밖 어딘가를 열심히 쳐다본다. 고양이들은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을까? 궁금하고 귀여워.
편의점이든, 마트든, 드럭스토어든 그 어디에서든 맛있는 간식을 발견하면 신나서 알려주는 디저트 메이트가 있다. 이거 먹어봤어?? 꼭 직접 찍은 사진도 첨부해 준다. 그리고는 그 과자(혹은 초콜릿 혹은 빵 등)의 식감과 풍미, 달콤한 정도, 첫맛과 끝 맛, 함께 먹으면 어울릴 법한 음료 페어링까지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비슷한 류의 다른 과자들과 비교 분석도 해준다. 그런 내용을 주고받는 동안 정말 너무나 들뜬다. 그 과자를 당장 입에 넣어보고 싶어서 하루 일과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린 적도 있다. 물론 추천해 줬다고 다 입맛에 맞는 것은 아니라, 먹어보고 별로면 솔직하게 시식평을 보낸다. 대단한 미식가인 양 아주 냉정하게 평하는데, 기준은 오로지 '내 취향이었냐' 뿐이다. 추천에 실패하면 아쉬워하고 다음 과자 헌팅을 기약한다. 둘 다 멋진 과자를 발견했다는데 동의하면 말 못 할 뿌듯함이 밀려온다. 과자를 못 구한 경우 다음번 만날 때 사서 들고 가기도 한다. 먹어보고 맛있었는지 꼭 알려줘야 돼!
일 년에 몇 번 불쑥 책이나 영화를 추천해 주는 친구도 있다. 그 사람을 좋아하니까 그 사람이 좋다는 책이나 영화는 정말 갑작스럽게, 엄청 읽고 싶어진다. 생각해 보니 지금껏 그 친구가 책의 줄거리나 영화가 좋았던 구체적인 이유를 말하며 추천해 줬던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늘 그가 골라준 책에서는 마음에 드는 구석을 발견하곤 했다. 자주 만날 수 있다면 때때로 만나서 골라준 책 중 어디가 마음에 들었는지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치만 나 혼자서 그가 마음에 들어 할 부분이 여기일까, 상상해 보며 읽는 것도 좋다. 어떤 글이나 영상을 보고 나서 나를 떠올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다.
긴 연휴 중 하루 집에서 김을 구웠다. 김을 굽기 전에 한 장 한 장, 붓으로 참기름과 들기름을 섞어서 바르고 약간의 소금을 쳤다. 그 과정이 아주 지루해서 해도 해도 수북하게 쌓인 김이 줄어드는 것 같질 않았다. 괜히 엄마한테 이거 한 톳이냐고 100장을 다 굽는 게 맞냐고 여러 번 물었다. 나는 소금을 발라 굽지 않은 생 김을 싫어한다. 입에 넣었을 때 입천장에 마구 달라붙는 느낌이 이상하고, 젖은 김에서 나는 풍미를 즐기지 않는다. 반면 아주 바삭하게 구워서 입안에서 바로 바스러지는 김은 소금의 짭짤하고 기름의 고소한 맛을 좋아한다. 너는 구운 김을 좋아하니 너 가져가려면 다 구워야지! 엄마가 말했다. 부엌에서 설렁대며 일 좀 거든다더니, 결국 하는 일이란 게 내가 먹을 김에 기름 바르는 일이다. 그마저도 하면서 이걸 언제 다 바르냐고 비죽댔다. 조용히 입을 닫고 꼼꼼하게 발라서 엄마에게 가져갔더니 금세 바삭한 김이 됐다. 먹어보니 맛있다. 흰쌀밥에 바로 싸 먹으면 정말 맛있겠다. 그거 조금 하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온갖 반찬을 다 싸왔다. 해 먹고 남은 반찬이 아니고 가져가서 먹으라고 일부러 한 반찬이다. 당연히 김도 지퍼팩에 야무지게 담아왔다. 역시 사 먹는 반찬이랑은 급이 다르다.
하나하나 손으로 꼽다 보면 의외로 많다고 생각하게 된다. 나를 기쁘게, 들뜨게 하는 것들. 그런데 또 막상 꼽다 보면 은근히 부족한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시간. 쓰다 보니 시계가 일을 많이 했다. 이쯤에서 줄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