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신청곡 : 그때의 우리를 기억하나요
마지막 내가 다시 만날 거라고 약속했다면
모른 척 지나갔던 기억들도
다시 찾을 수 있을 텐데
곡 김수영 / 작곡 김수영, Chaz / 작사 김수영
잊어버렸고 다시 찾을 수 없다면 잃어버렸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영화를 보다가 여러 번 느꼈다. 지금 이 장면 분명 봤던 것 같은데 그래서 어떻게 끝났더라? 긴가민가하는 사이 처음 보는 인물이 등장한다. 안 본 영화인데 착각했나, 망설이다가 영화는 중반부를 넘어가고 끝날 때까지 결말은 정확하게 생각이 안 난다. 이런 식으로 두어 번 본 영화가 꽤 있다. 소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이런 재밌는 책을 사놓고 왜 안 읽었나, 생각하며 흥미진진하게 읽던 도중 책의 중간쯤에서 예전에 읽으며 그었던 밑줄과 메모를 발견한다. 글자로 읽은 내용은 기억 소실이 더 빠른지 '어디서 한 번쯤 스쳤던 문장 같은 걸'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고 감쪽같이 나를 속인(?)다. 바보, 저번에 본 책인데. 그런가 보다. 기억력이 안 좋다.
우리 예전에 거기 가서 뭐 먹었고 이랬고 저랬고 식의 이야기는 거의 대개 그랬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대체 내 머리에 남아 있는 게 있긴 한가? 몇 명이 모여 다 같이 '그래그래' 할 때도 조용히 혼자서 '그랬겠지' 한다. 그런 순간들에는 나를 지나쳐가 버린, 꺼내려고 샅샅이 뒤져도 낚아 올릴 수 없는 기억들이 그들에게라도 남아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없지만 그들에게서 보존될 우리의 시간과 모습들. 분명 나도 함께 한 과거의 어떤 순간을 구전동화처럼 들으며 주입해가다 보면 언뜻 기억의 흔적을 찾을 때도 있다. 오오, 기억나는 것도 같다. 정말 다시 찾아낸 건지, 찾아낸 것으로 착각하는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런 줄 몰랐지만 남들보다 빠르게, 복기할 수 없는 형태로 바뀌어버리는 과거가 내 머릿속에는 주로 이름으로 남는다. 기억 속에 이름으로만 남은 사람들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 가장 먼저 그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그다음 그가 했을 말들이, 그리곤 얼굴이 지워진다. 이름은 잘 잊히지 않아서 누군가가 아는 이름을 대며 그이의 근황을 전할 땐 피카소의 그림 속 얼굴처럼 추상적인 눈코입을 떠올린다. 그리곤 '잘 지낸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 사람의 기억 속에는 어떤 형태의 내가 남아있을까 상상해 본다. 함께 한 사건이나 상황이 남아있다면 좋겠다. 그러면 언젠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가 내 안에서 고고학자처럼 기억의 유골을 발굴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어디까지나 우리가 다시 마주치게 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갖게 되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망각이 신의 선물이라더니, 미워했던 마음들도 잊혀진다. 언젠가 나를 힘들게 했던 말들이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빨리 감기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어 하던 그때의 내 모습만 아직 생각나는 걸 보니 상처가 된 말들은 흉이 지나 보다. 시간이 더 흐르면 이 기억들도 흘러 사라질까? 때로는 일부러 그랬고 대부분 일부러 그랬던 건 아니었을 내가 줬던 상처들도 그이들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잊혀지면 좋겠다. 서로 이대로 지나쳐가서 다시 만나지도 않고, 다시 찾을 수도 없이 잃어버리도록.
잊어버린 줄도 모르고 살아갈 기억들이 그립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생각나지도 않으면서 그리울 수가 있겠냐만 어쩐지 잊어버린 게 너무 많은 것 같은 느낌이다. 어쩌면 내가 지나온 사람들은 나만큼 기억력이 나쁘지 않아서, 겨우 이름만으로 그를 남겨놓은 나를 마뜩잖게 여기면서도 우리의 시간을 한 편에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설령 내가 영영 찾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그때의 우리가 남아있다면 이미 우리는 한 번 알았던 것이니 잃어버렸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