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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초이 Aug 21. 2019

초록색 물감-번외

'95년도 동북국민학교 입학생 추첨'


 일곱살 아이를 가진 도봉구의 엄마들이 모두 모였다. 단상 왼쪽에는 태극기가, 오른쪽에는 교기가, 가운데에는 커다란 상자가 올라와 있었다. 상단이 자주색 벨벳 천으로 덮힌 그 상자 안에는 수천개의 공들이 들어있었다. 모두 흰색 공이었다.


"혜윤 엄마, 잘 뽑아봐. 오백 명에 한명은 된다니까, 우리 혜민이랑 혜윤이랑 뽑히면 너무 좋겠다."


 만약에 떨어지더라도 잘 보이면 붙여줄지 몰라. 엄마는 구두를 신은 다리를 단정하게 모으고, 끝까지 채운 단추를 손 끝으로 한번 더 확인했다. 


 "지금부터 95년도 신입생 추첨을 시작하겠습니다. 받으신 번호표 숫자를 부르면 단상으로 올라오셔서 공을 뽑으시면 됩니다. 공에는 합격과 불합격이 한자로 쓰여 있으니, 합격을 뽑으신 어머님들만 남아계시면 됩니다."


 혜민이 아줌마는 부른 배를 안고 단상에 오르는 엄마의 사진을 다섯 장이나 찍어주었다. 엄마는 '合格'이 쓰여진 공을 들고 활짝 웃고 있었다. 

 



 교복으로 나온 겨울 코트를 사 입히니 팔이 한 뼘이나 길었다. 한 번, 두 번 접으니 작고 하얀 손이 겨우 밖으로 보였다. 코트 속으로 꿰메어 놓은 장갑을 끼워주었다. 


 '괜히 그랬나? 혼자서 장갑도 못끼는 애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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