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

나의 일상도 퍼펙트 데이즈로 채워갈 것

by 한원재

참으로 재미있게도, 인생에 많은 의문점과 질문들이 솟구칠 때, 우연히 마주치는 것들이 해답을 내놓고 가는듯 하는 느낌이 들고는 합니다. 어찌보면 내면의 진짜 욕망이 저를 끌어당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본 <퍼펙트 데이즈>는 저에게 그런 해답지를 보여주고 간 영화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요즘에는 삶에 대한 많은 고민이 드는 시기입니다. 워낙 생각이 많은 성격을 가진 터라 한번 꼬리를 문 생각은 멈추지 않고 불안함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좋지 않은 습관이 있습니다. 지금 현 시점에서 걱정해봐야 소용 없는 먼 미래에 대한 생각들을 지우지 못하고 계속해서 반추하게 됩니다.


때론 제 처지에 자기연민을 느낍니다. 대학에 가기 위해 재수까지 했고, 대학에 들어가서 장학금도 받아보고 열심히 공부하고 졸업했는데 제가 가진 지식은 취업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곤 '내 인생은 왜 스탯을 잘못 찍은 망캐가 되어있는가'를 한탄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후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걸 알면서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극복 방법이 보이지 않으면 끝없이 후회와 절망 따위로 감정을 낭비하게 되죠.


그러던 중 <퍼펙트 데이즈>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일본 생활이 꽤나 적응된 상태에서 다시 본 영화는, 꽤나 익숙한 장소와 거리들이 지나가고 저 스스로가 삶을 영위하고 있는 바로 그 장소에서 주인공 '히라야마'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처럼 느껴졌습니다.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살아가는 히라야마의 삶은 언제나 같은 구조가 반복됩니다. 이른 새벽, 그보다 조금더 빨리 하루를 시작한 할머니의 빗질 소리를 알람삼아 일어나고 이부자리를 개고 세수를 하고 수염을 다듬은 뒤 환복하고, 반듯하게 놓인 자동차 키와 동전을 챙깁니다. 문 밖으로 나와 아직 새벽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하늘을 바라보며 평온한 미소를 보인 뒤 자판기에서 커피를 챙겨 차에 타고 한 모금 마시면서 일터로 향합니다. 그의 곡은 The Animals의 "House of The Rising sun"


청소 일을 하는 그는 참으로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보입니다. 절도있는 동작과 화장실의 청소 동선은 정말이지 경쾌하기까지 합니다. 그의 하루하루의 일상 자체가 정해진 루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움직임에는 군더더기가 없이 쭉쭉 이어져 나갑니다. 그의 일상은 습관 속에서 매끄럽게 이어지면서 동시에 풍족한 것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비쳐 내려오는 따스한 햇살을 바라보며 먹는 점심. 나무 아래 싹을 틔운 작은 식물. 퇴근 후 향하는 센토(銭湯: 대중목욕탕). 오시아게역의 작은 선술집. 잠들기 전 읽는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그의 삶은 작은 환희와 기쁨들로 가득 채워져있습니다. 히라야마의 미소는 그러한 삶을 충실히 누리는 삶의 태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영화를 보며 그의 전사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는 분명히 과거에는 다른 삶을 살았던 인물로 보여집니다. 그가 듣는 음악도, 소설도, 그리고 여동생이 타고 온 고급 승용차. 무언가 사연이 있어서 과거의 삶으로부터 빠져나와 현재의 외로운 삶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히라야마가 아침을 출근하며 보이는 미소와, 눈물을 머금은 듯한 눈. 그 복합적인 표정 속에서 우리는 많은 감정을 느낍니다. 그의 삶은 보는 관객에 따라선 눈물짓는 후회가 커보일 수도, 그 미소짓는 환희가 커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저도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분명 다르게 살 수 있었던 수많은 선택들 속에서 현재에 이르는 선택을 한 것도 나 자신이고 때론 후회와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며 많이 울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누리는 기쁨도 만만치 않습니다. 현재의 삶이 사실 그렇게까지 재밌고 엄청난 것은 아니어도, 그리고 과거의 삶이 어찌보면 조금 그립고 그 때의 삶이 더 편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즐거움과 후회와 찬란함과 쓸쓸함이 뒤엉켜 만들어내는 하루하루의 삶은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이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현재의 삶이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풍족하고 넉넉한 삶을 즐기기에는 턱없이 낮은 급여. 나보다 이미 한 발은 앞서 나가있는 듯한 친구들. 별로 재밌지도 않고 흥미도 생기지 않는, 그리고 집중도 잘 안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지옥철에 몸을 맡겨야 하는 일상. 그럼에도, 스스로 동경해왔던 외국에서의 삶과 내 몸을 뉘여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함께 미래를 그려나갈 반려자가 생겼다는 것. 그토록 바랐던 것들을 부분적으로 이루었다는 성취감과 기쁨 역시 있습니다.


제 일상은 달리기로도 채워져있고, 영화를 보고 즐깁니다. 소중하고 작은 기쁨들과 습관처럼 지속했던 일본어 공부가 운좋게도 저를 도쿄의 삶으로 이끌어왔습니다. 이제 하나 더, 글을 쓰는 것을 습관화 하며 저의 퍼펙트 데이즈를 채워나가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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