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현철 Mar 13. 2023

자폐아의 시선 엿보기

사자의 꼬리를 단 하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우리는 자폐에 대해 조금 친숙해지게 되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우영우는 고래를 좋아하는데 다른 자폐아이들도 특정한 영역 또는 사물에 애착을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지도하는 학생 가운데도 자폐 학생이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K는 동물을 아주 좋아합니다. 드라마에서 우영우가 고래에 대해서는 모든 정보를 술술 외듯, 우리 반의 K도 동물의 이름을 제법 잘 외웁니다. K가 알려주는 동물의 이름 중 내가 모르는 동물도 있을 정도랍니다.


그런 K가 가장 좋아하는 활동 가운데 하나는 동물 만들기 키트를 조립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교육용 조립 키트가 꽤 디테일하게 잘 제작되어 나온답니다. 종이로 만들었지만 물에도 강하고 입이나 관절이 움직이기도 합니다. 비록 작은 크기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동물 한 마리당 부품은 십 수가지가 되기에 미술 시간에 한 마리 만들기도 아이들은 힘들어하는데 K는 마치 기계처럼 동물들을 뚝딱 만들어냅니다. 마치 머릿속에 모든 부품의 조립 지침서가 있는 것처럼, 심지어 다른 학생이 하다가 포기한 것도 K는 보기만 하면 완벽한 한 마리를 탄생시킵니다.

오늘도 수업시간에 K에 의해서 여덟 마리의 동물이 탄생했습니다. 각기 특색이 있는 동물들입니다. 펭귄으로 시작해서 얼룩말, 코뿔소, 하마, 북극곰, 호랑이 등이죠. 모든 동물들을 만들고 나면 그때부터 K의 동물 감상이 시작됩니다. K의 동물 감상시간은 꽤 독특한데 동물들을 차례로 세워놓고 오른쪽 귀를 바닥에 대고 동물의 옆모습을 한참 바라보는 방법입니다. 동물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듯하기도 하고 때로는 동물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싶은 것처럼 말입니다. 분명 K의 상상 속에서는 이 동물들이 힘차게 뛰어다닐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쉬는 시간을 지나고 나서 특이한 동물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꼬리가 달린 하마였습니다. 하마에게 꼬리가 있기는 하지만 아주 작은 꼬리일 텐데 내 눈앞에 있는 하마는 엉덩이에 사자의 꼬리 같은 것이 달려있었습니다.


'오잉?'

조금 디테일하게 살펴봅니다. 우선 꼬리에 사용된 종이는 A4 사무용 용지입니다. (제 책상 위에 있는 용지를 가져간 게 분명합니다. - 제 책상 위에 있는 종이를 잘 가져가는 K에게 중요한 문서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종이 가져가기를 금지해 두었는데 말입니다.) 그림은 사인펜으로 그렸습니다. 꼬리의 색을 제법 잘 표현했군요. 꼬리 끝은 더 진한 색으로 잘 살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완만한 곡선을 띤 꼬리를 가위로 잘 잘라 주었네요. 이런 곡선 가위질은 상당한 눈-손 협응력이 필요한 법입니다. 생각보다 K가 정성을 들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룡점정인 것은 하마와 꼬리를 서로 붙이는 방식에 있습니다. 종이와 종이를 붙이기 위해 목공풀을 이용했습니다. 목공풀은 처음에는 하얀색으로 보이지만 완전히 굳으면 투명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종이에 종이를 붙일 때는 목공풀이 딱 맞춤입니다.


분명 K의 솜씨가 분명했지만 그래도 모른 척 물어봅니다. “누가 하마한테 꼬리 달았어?” K가 일어나며 대답합니다. “제가 달았어요” (역시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것도 K의 특징입니다)  저는 웃으며 이야기했습니다. “꼬리 왜 달았어?”, “꼬리 달았어요. 내가 달았어요” 이유를 묻는 물음이 우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다니요. 그건 그냥 K이 하고 싶어서였을 것입니다. 아니면 사자의 꼬리를 단 하마가 멋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지요.

그냥 그러고 싶었을 뿐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이렇게 멋진 작품을 완성해 놓은 K가 대견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사자의 꼬리를 단 하마라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독창적이고 멋진 동물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저는 다음에 K에게 이름을 붙여볼 생각입니다. 뭐라고 부를지 궁금해 죽겠습니다.

지금도 사자의 꼬리를 단 하마는 당당하게 교실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던 눈치 보지 않고 나는 나의 길로 간다.' 멋진 k의 도전과 시도에 응원을 보냅니다. 오늘도 특수교육의 현장에서는 하마에게 사자 꼬리 달기 같은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혹자는 세상에 그런 건 없어! 하면서 무시당하고 수정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당연한 것을 찾았으면 애초에 꼬리 달린 하마 같은 것은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당연한 것을 고집하던 나를 반성합니다. K의 눈을 빌려 새로운 세상을 살짝 엿봅니다. 이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내가 바라보는 세상보다 더 아름다울지 모르겠습니다. 사자의 꼬리를 단 하마처럼 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특수교사가 학생과 어울리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