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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철 Apr 10. 2023

땀 흘리는 것의 아름다움

특수학교에서 농장을 가꾸는 이유

우리 학교에는 작은 농장이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가꾸는 농장입니다. 작년에는 여기에 상추와 고추, 그리고 배추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옥수수도 조금 추가했습니다. 작은 농장임에도 불구하고 땅이 주는 풍요로움이란 얼마나 풍족한지! 놀라울 만큼 많은 먹을 거리를 공급해 주었습니다. 옥수수는 200명 가까운 전교생이 점심 급식으로 나누어 먹을 만큼 되었지요. 물론 파찌(비상품) 수준이었지만 말입니다. 


풍성한 열매를 나누었던 농장이 겨우내 묵혀있었다가, 다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4월이 되면서 다시 밭을 일구기 위해 아이들이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농장은 그대로인데, 아이들은 바뀌었습니다. 작년 농사를 짓던 아이들은 고3이 되었고, 새로 고2가 된 아이들이 올해는 농사를 짓습니다. 


농사라고 해봐야. 일주일에 7시간입니다. 물론 일주일에 7시간은 교육과정 상 꽤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국어도 4시간, 수학도 4시간 배우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농사는 7시간이나 배운다니 이건 학교로서도 꽤나 큰 모험입니다. 그러나 충분히 그만큼의 가치가 있습니다. 


사실 노작교육의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전부터입니다. 노작교육운동은 19세기말 독일의 개혁교육학으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교과학습만 강조하던 전통적인 교육을 비판하고 학생들이 직접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즉, 자율성과 활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도입되었습니다. 독일어로는 Arbeitsunterricht로 표현합니다. 맞습니다. 자세히 보면 흔히 알바라고 부르는 '아르바이트'라는 단어입니다. 


고사리 같은 손(?)이라는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저 손으로 언제 호미를 잡아봤을까요. 땅을 일궈봤을까요? 분명 난생처음일 것입니다. 이렇게 농사를 준비하는 것도 돌을 골라내는 것도, 호미를 잡고 땅을 파는 것도 말입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올 한 해가 지나면 제법 멋진 꼬마 농부가 될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노작교육이 그저 쉬운 것은 아닙니다. 아동중심교육이 비판받는 가장 큰 이유는 아동의 흥미만 강조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듀이는 결단코 아동의 흥미만 강조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아동의 흥미를 통제했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일지 모르겠습니다. 진정한 아동중심교육을 위해서는 교사중심의 수업보다 열 배는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저의 관심사는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작물은 실패해도 상관없습니다. 그저 아이들이 무엇엔가 흥미를 느끼고 관심을 가진다는 것 그 자체가 특수교육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리고 교사는 부단히 그 흥미와 관심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면 됩니다. 마치 우아한 백조의 수영처럼 말입니다. 물속의 발은 쉼 없이 헤엄을 쳐야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백조는 한없이 여유로울 뿐입니다.


아이들이 농장을 오가는 모습은 마치 장난 같은 모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교사의 손길은 훨씬 더 분주하고 바쁠 수밖에 없습니다. 사전에 준비된 농장에서 아이들은 그저 발견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발견은 흥미로 이어지고 그 흥미는 아이들로 하여금 땀을 흘리게 할 것입니다. 


눈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손에 흙이 묻는 것을 싫어하고 농사로서의 ‘일’ 이 힘들기는 하지만 분명 이 생명의 기적이 일어나는 공간을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이 공간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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