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H Nov 14. 2019

떨어진 줄 알고 포기하고

아예 잊어버리고 있을 때쯤

"The International Business Practice Seminar"


다음 일어날 기적도 그즈음부터 시작되었다. 두 번째 해부터는 시간표를 스스로 정할 수 있어서 나도 Clinic에 지원할 수 있었다. 항상 정보에 느리고 뭘 잘 모르는 나조차도 Clinic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로스쿨에 지원하면서 지원서를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을 때 같은 시기에 지원했던 학교 선배가 각 로스쿨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Clinic 하나를 골라 그 Clinic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쓰라고 조언해준적이 있다. 그때 Clinic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Clinic은 보통 3L때 하는 활동으로 교실에 앉아서 수업만 듣지 않고, 학생 신분으로 학교 교수님 지도 아래 외부에서 법률 자문을 하거나 인턴처럼 일하는 실습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나도 로스쿨에 들어간다면 3L 때는 형법과 관련된 Clinic에서 실전 경험을 꼭 쌓아야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Clinic의 장점은 로스쿨 다니기 전에 법과 관련된 경력이 없는 학생들에게는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의 일이 정말 나랑 맞는지 직접 경험해볼 기회이고, Clinic에서의 활동이 이력서를 작성할 때 더 화려한 경력을 만들어 주어 나중에 취직할 때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학교 교직원들 모두 학생들에게 수업에만 집중하지 말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Clinic에 지원하라고 적극적으로 추천을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나도 Clinic에 꼭 들어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Clinic 모집이 시작될 때쯤 나는 노력한만큼 결실을 보지못하는 것에 이미 지쳐있었다. 인턴십이나 장학금이나 뭐든지 기회가 있다고만 하면 뭐라도 하고 싶어서 지원했지만 모두 다 실패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Clinic에 꼭 들어가고 싶더라도 이번에는 모든 Clinic에 지원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최대한 뽑힐 수 있는 곳에 전략적으로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총 8개의 Clinical Placement와 In-house Counsel의 목록을 보면서 내가 관심 없는 분야를 제하고, 비용이 많이 들어서 신청할 수 없는 프로그램을 제하고 나니 해볼 만한 Clinic이 두 개 남았다. The Wrongful Convictions Clinic과 The International Business Practice Seminar (IBP) 두 개였다.


The Wrongful Convictions Clinic은 부당하게 재판을 받은 사람들을 변호해주는 Clinic이다. 나는 검사가 되고 싶었고, 형법에 관심이 있어서 잘못된 법 집행으로 부당한 판결을 받은 사람들을 위해 일해 볼 수 있는 Clinic에 지원하고 싶었다. 검사의 반대쪽의 일들을 먼저 경험하고 나면 나중에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일을 할 수 있겠다 싶어서 내가 제일 들어가고 싶어 했던 Clinic이었다. 하지만 정원이 8명밖에 안돼서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다. 미국 친구들과의 경쟁에서는 무엇하나 자신 있는 부분이 없어서.


"이번에도 내 약점을 강점으로 포장해봤는데"


그렇게 고민하던 중에 마침 한국 올림픽 부정부패 조사팀 프로그램에 뽑히면서 이 백인 학생들과 교수님들로 구성된 학교에서 성적이 좋지 않고, 영어가 아직 유창하지 않은 내가 살아남는 방법은 아시안으로서의 희소성을 어필하는 것이라는걸 깨닫게 되었다. 눈여겨보던 IBP에 마감 날짜 하루 전에 지원했다. 이 Clinic은 버지니아에 있는 기업들, 우리 로스쿨, 우리 학교 혹은 다른 학교의 MBA 학생들이 연계하여서 해외로 진출하고 싶어 하는 기업들에 로스쿨 학생들은 법률 자문을, MBA 학생들은 비즈니스 자문을 주는 Clinic이다. 이 Clinic도 조금밖에 뽑지를 않아서 확률도 높지 않았고, 그즈음에는 비즈니스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뜬금없이 내가 이 Clinic에 지원하게 된 동기는 “International”이란 단어 때문이었다. 미국인 학생들로 가득한 이 로스쿨에서 international이라 단어는 학교에서 미국인이 아닌 아시아인이며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서 항상 미국 친구들보다 불리한 위치에 놓인 나를, 같은 이유로 미국 친구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포지션에 놓아주는 치트키였다. 그래서 이 Clinic에 지원했고, 인터뷰 볼 때 한국 프로그램에서 썼던 방식을 똑같이 써봤다. 교수님께서 질문하셨다.


“이 Clinic에 너를 왜 뽑아야 하지?”


이번에도 아시안이라는 이유를 들어 자신 있게 어필했다.


“International이란 이 Clinic의 제목이 알려주듯이 해외로 진출하고 싶은 기업이 있다면, 해외에서 온 제가 미국 친구들보다 아는 게 더 많을 수도 있고, 특히 아시아 쪽으로 진출하려는 기업이 있다면 이 로스쿨에 몇 안 되는 아시안 학생으로서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8명밖에 뽑지 않는 한국 프로그램에 뽑히고 나니까 괜히 희망이 생겨서 이번에도 기적처럼 Clinic에 뽑히기를 내심 기대했다.


"이변은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변은 없었다. 일주일 뒤, 내가 지원했던 두 Clinic의 교수님들로부터 모두 거절의 이메일을 받았다. 워낙 어떤 것을 지원하든지 매번 거절을 받아서 거절에는 익숙했지만 이대로 Clinic을 한 번도 못 해보고 졸업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슬퍼졌다. 나는 내년이 마지막이기 때문에 이번 도전에 Clinic에 뽑히지 않는다면 로스쿨 오기 전부터 해보고 싶다고 꿈꿔왔고, 모두들 3L 때는 꼭 해야 한다고 말하는 Clinic을 영영 할 수 없게 된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IBP 담당 교수님께서 지금은 탈락했지만 2017년 봄학기에 Clinic이 시작되기 전까지 이 Clinic에 참가할 기업과 MBA 학생들이 더 모집된다면 인원을 충원할 수도 있다면서 대기명단에 있고 싶냐고 물어봐 주셨다.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대기명단에 있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교수님께 대기명단에 넣어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렇게 두 번째 봄학기는 끝났고, 여름 인턴십도 잘 마치고, 세 번째 학기인 가을학기를 시작했다. 로스쿨에서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해가 시작되었다. 나는 큰 고비였던 여름 인턴십을 끝냈지만 여전히 고학점을 들으며 공부하느라 바빴고, 이번에는 취직을 위해 학기 내내 다시 일 년 전처럼 지원서를 내기 시작했고, 학기 중간에는 매 학기 그랬듯이 모의재판에 참여했다. 그렇게 바쁜 학기가 거의 끝나가고 기말고사를 며칠 앞두고 교수님께 이메일을 받았다.


교수님께서 저번에 뽑히지 않아서 대기명단에 있던 학생들이 나까지 포함해서 5명이었는데, 이번에 참가하는 기업이랑 MBA 학생들이 충원되어서 대기 명단에 있던 학생 중에서 1명이나 2명을 더 뽑고 싶으신데, 아직도 할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이 이메일도 확실히 뽑아준다는 말은 쓰여있지 않았지만 잘하면 내가 로스쿨 졸업하기 전에 Clinic 한번 해보고 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겨서 적극적인 대답을 써서 답장을 드렸다.


“Yes. I would love to be in the list of potential students for that class. I'm also willing to take out other classes if I'm in.”                   


그리고서 Clinic을 직접 담당하실 교수님과 다시 인터뷰를 했고, 뒤늦게 수업에 합류하게 되어서 다소 복잡한 학교 행정절차를 거치며 어렵게 Clinic에 합류하게 되었다. 참가자들이 충원되어서 포기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던 Clinic에 합류하게 된 것도 기적처럼 느껴졌다.

 


"하던 대로"


드디어 마지막 학기, 그렇게도 하고 싶던 Clinic이 시작되었다. Clinic에 참여한 기업들의 성향과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교수님이 학생들을 분배하셔서 한 회사를 배정받았고 기숙사에 같이 살았던 친구와 한 팀이 되었다. 그 친구와 한 팀이 된 것은 여러 가지 점들 덕분에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2년 동안 같은 건물에 살았고, 첫해부터 같은 반이어서 모르는 것도 많이 물어보고 같이 과제도 했던 사이여서 편했다. 수업 준비할 때도 따로 연락할 필요 없이 기숙사에서 같이 준비하면 되는 편리성과 학교에서 친했던 친구였다는 점 때문에 같은 팀으로 일을 하게 될 마지막 학기가 기대되었다. 우리와 같이 자문을 해줄 MBA 학생들과도 한 팀으로서 미팅을 시작해나갔다. 교수님과 만나고, 고객과 만나며, MBA 학생들과 만나며 서서히 고객이 원하는 대로 법률 자문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조사를 시작해 나갔다.


학교에서 수업만 듣던 친구와 나는 Clinic 초반에는 모두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서 모든 게 낯설었다. 다행히 우리끼리 부족한 부분에 대해 동의를 하고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서로 열심히 이야기하고 합의를 봐서 교수님께 많이 찾아가고, 교수님께 부탁도 많이 드렸다.


“교수님, 우리가 어떤 식으로 해나가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작년에 했던 팀들의 보고서를 참고할 수 있도록 보여주세요.”


사실 교수님께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했던 부탁이었는데, 흔쾌히 보여준다고 하셔서 작년, 재작년에 했던 팀들의 보고서를 한번 쭉 훑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또 중간중간 리서치하고 MBA 학생들과 조율하는데도 어려움을 겪을 때 항상 교수님께 여쭤보고 도움을 구했다. 모든 수업에서 해왔던 대로 이번에도 최선을 다해서 좋은 결과를 내서 고객도 만족시키고 좋은 점수를 받고 싶었지만 수업 시간에 다른 친구들 하는것을 보면서 역시 그 친구들에 비해 내가 한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와 같이 경쟁하는 에는 2L뿐 아니라 3L들도 있었고, 다른조들이 수업 시간에 의견을 내는 것을 보면 정말 다들 방향성을 잘 잡고 가는 것처럼 보여서 부러웠다.


초반에는 잘 몰랐는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가 팀에 속했다는 것이었다. 총 다섯 조 중에 두 조만 팀으로 구성되고 나머지 세 조는 혼자 일했는데, 교수님의 배려로 나는 혼자가 아니라 친구랑 같이 팀이 되었다. 학기 내내 친구랑 밤늦게까지 기숙사 라운지에서 소리 죽여서 회의를 하기도 했고, 친구 방이나 내 방에 들어가서 회의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정말 내가 생각하는 대로 친구도 동의해서 죽이 맞아 재미있게 보고서를 써나갈 때도 있었고, 어느 날은 서로 이야기하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서 싸늘한 분위기 속에서 보고서를 채워나갈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기댈 사람은 서로밖에 없으니 서로에게 기대면서 하나씩 하나씩 완성해 나갔다.


"추가합격으로 가까스로 합류했던 우리는 에이스가 되어버렸다"


처음에는 다른 학생들은 수업 끝나고 적당히 질문하고 나가는데, 우리만 남아서 교수님께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질문을 하고 수업 끝나고도 교수님께 이메일 보내고 귀찮게 해 드려서 교수님이 우리 팀을 탐탁지 않게 여길 거라고 생각했다. 수업 때도 각자 진행 상황을 발표할 때 아직 초반에 기초를 다지면서 속도가 느린 우리가 왠지 뒤쳐져 보였다. 이 수업에서 낮은 점수는 우리 팀이 맡아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학기 중간을 지나면서 수업에서 진행 상황 발표할 때 우리 보고서 내용을 듣는 교수님의 리액션이 달라졌다. 우리는 처음부터 방향을 잘 잡고 싶어서 최대한 교수님께 여쭤보면서, 작년에 했던 팀이 하는 방식대로 조금씩 내용을 늘려나갔을 뿐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팀과 비교되는 성과들이 교수님 눈에 뜨인 것이다. 중간 이후부터는 아예 수업 시간에 우리 팀을 대놓고 칭찬할 정도로 우리가 이번 학기 에이스였다.


“이번 학기 수업을 진행하면서 이 팀만큼 열정 있는 팀을 보지 못했어. 다른 팀들은 보고서 어떻게 작성하는지에 관해 물어보지도 않은 팀도 있었던 반면, 작년에 했던 팀 보고서들을 참고하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질문했던 팀은 이 팀밖에 없었다.”


우리 보고서를 그렇게 좋아하시는 교수님을 보면서도 우리는 우리가 계속 만들어왔던 보고서여서 그런지 뭐를 특별히 잘 만들었다고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면서 과분한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이게 그렇게 잘 만든 건가? 나는 교수님이 왜 우리 거를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


“나도 모르겠어. 아마 교수님 원하시는 방향대로 잡고 조사 시작해서 그렇겠지.”


“우리 이대로 가다가 잘하면 A 맞을 수도 있겠다.”


“그러면 진짜 좋겠다. 열심히 하자.”


교수님께서 수업 시간마다 칭찬을 해주셔서 진짜 우리가 잘 쓰고 있는 거냐고 몇 번이나 되물었다. 얼떨떨했지만 모양을 잡아가는 보고서를 보며 보람을 느끼며 에이스로서 수업에서 점점 자신감을 얻어갔다. 마지막 기말고사로 고객 앞에서 우리가 조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한 것을 토대로 발표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한 학기 동안 부었던 노력의 마지막 순간인 만큼 친구와 열심히 발표 준비를 하면서 서로 조언을 해주었다. 발표날은 학기 마지막 주인 동시에 졸업식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내 노력을 눈으로 확인하는 시간"


나는 졸업식에 부모님이 오실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부모님께서 바다 건너 로스쿨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드디어 졸업하게 되는데 무리를 해서라도 졸업식에는 오셔야겠다고 했다. 그래도 두 분이 같이 오시기엔 아무래도 경비가 많이 들어서 아버지 혼자 비행기 티켓을 끊고 학기 마지막 주에 도착하셨는데, Clinic에서 발표하는 날이랑 리치먼드에 머무시는 날이랑 겹쳤다. 학기 말에 발표를 앞두고 교수님과 이야기 나누던 중 졸업식 날 부모님의 방문에 대해 여쭤보셨다. 마지막 주중에 아버지가 오신다고 했더니, 교수님께서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해주셨다.


“고객과 MBA 담당 교수님도 괜찮으시다면, 발표날 아버님을 초대해서 자식이 한 학기 동안 열심히 준비한 걸 보시게 하는 건 어떨까? 로스쿨에서 어떻게 공부해왔는지 직접 눈으로 보실 기회가 될 거야.”


나는 발표도 학교 수업이라고 생각을 해서 수업에 부모님을 초대한다는 것은 차마 생각도 못 했었다. 교수님께서 바다 건너 졸업식을 보러 오시는 우리 아버지까지 생각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듣자마자 아버지는 정말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바로 우리 아버지는 꼭 참석하고 싶다고 하실 테니 한번 다른 분들은 괜찮으신지 여쭤봐달라고 했다.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역시나 그렇게 생각해주신 교수님이 정말 감사하다며 당연히 보고 싶다고 하셨다.


발표날 정장을 입고 발표하기 위해 준비해 놓은 말들을 연습하며 강의실에 들어섰다. 그 자리에 있는 분들께 처음 보는 얼굴인 아버지를 한 명씩 다 소개해드렸고, 아버지는 맨 끝에 앉으셨다. 관객이 한 명 더 늘었지만 준비한 대로 신나게 발표를 했다. 교수님도, 고객도, 모두 극찬을 하시면서 마무리가 되었다. 이변은 없었고, 감격스럽게도 로스쿨 다니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최고 점수인 A를 맞았다. 추가합격자들의 화려한 반전이었다.




이전 10화 가끔은 갑자기 툭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