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끝은 있기 마련이다. 그 끝이 오기를 기다리며 버티는 삶은 끝이 다가올수록 기쁘기도 하지만 그 끝 뒤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무서움을 느끼기도 한다. 어떨 때는 끝 뒤에 뭐가 남아있을지 너무 잘 알아서 무서울 때도 있다. 시간은 가기 마련이고 끝은 언젠가 오기 마련이고 나는 의연하게 끝을 기다리며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내면 그만이다.
헛소리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감정이 널뛰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그 끝 뒤에 엄청난 것이 기다리고 있다면 두려워할 것이고, 그 끝 뒤에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면 불안해할 것이다. 끝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터지도록 쿵쾅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일에 충실하고, 그리 아니할지라도 하루하루를 후회 없게 살아가며 끝을 기다린다.
"버지니아 말고?"
마지막 학기에는 학기를 잘 마무리하는 것만큼 학교 밖으로 나갈 나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도 중요했다. 버지니아에서 살면서 아는 사람도 많아졌고, 딱히 다른 미국 지역에 연고도 없어서 나는 당연히 버지니아 바 시험(변호사 시험)을 칠 거라고 이야기를 했고, 버지니아에서 일자리를 구해보려고 지원서를 많이 냈다. Attorney General’s office에서 환상적인 여름을 보냈지만, 그곳에서의 경험은 내가 앞으로의 진로를 형사 쪽으로 나갈지 민사 쪽으로 나갈지 더 갈팡질팡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했을 때 최선의 선택은 clerkship을 하면서 형사와 민사 둘 다 경험해보고 조금 더 뒤에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법원들에 지원서를 내고 내 어드바이저의 도움으로 버지니아에 있는 로펌 리스트를 받아서 그 로펌들에도 모두 지원했다.
지난여름 지나고부터 법원에도 로펌에도 지원을 했지만, 인턴십 구할 때와 마찬가지로 가을학기가 끝나도록 어느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이미 한번 기적을 경험해서 인턴십 때처럼 여유롭게 기다리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바 시험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보통 제일 이상적인 계획은 로스쿨 졸업 전에 입사 제안을 받은 회사가 있는 주의 바 시험을 준비하는 것인데,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미리 정해진 계획이 없었다. 하지만 졸업 후, 학교의 그늘 밖으로 나간다면 더 이상 신분을 보장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취직과 바 시험을 주제로 조금 더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교수님들을 찾아갔고, 내 어드바이저의 오피스에서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눴고, 같은 처지에 있는 외국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외국인 친구들의 계획들을 흘려듣던 나였지만, 불안한 상황에서 그 친구들이 예전처럼 내뱉은 말은 내 귀에 꽂혔다. 수업을 같이 들었던 대부분의 미국인 친구들은 버지니아 바를 준비했지만, 외국인 친구들은 J.D. 과정이든, L.L.M. 과정이든 상관없이 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모두들 한 명도 빠짐없이 뉴욕 바 시험을 칠 계획을 하고 있었다. 미래가 깜깜한 상황이었기에 나는 외국인 친구들, 바 시험 준비에 도움을 주시는 교수님, 내 어드바이저, 다른 career adviosr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점점 설득되어갔다.
우리가 있는 버지니아 남부 쪽에 있는 회사에서는 학생 신분으로 1년만 확실하게 일할 수 있는 외국인을 뽑기보다는 미국인을 뽑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사장이라도 그럴 것 같았다. 그리고 버지니아와 비교하면 뉴욕에는 훨씬 더 많은 인종이 살고 있고, 특히 뉴욕에 한국인 많아서 한국인 변호사를 찾는 로펌이 정말 많을 것이라는 말도 해주었다. 지금 당장 회사를 못 찾더라도 바 시험을 준비하면서 계속 지원서를 낼 때 조금이라도 더 가능성이 있는 곳을 선택하라는 말에, 내가 처음 둥지를 튼 버지니아 말고, 뉴욕에 대해 처음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 맞다. 나 바 시험 한번에 통과해야 되지?"
학생들은 바 시험 준비를 위해 졸업 후 바 시험 강의를 해주는 패키지를 산다. 내가 첫 학기부터 학교 복도에서 1L 아웃라인 책을 받아오고, MPRE책을 받아오며 눈에 익힌 세 브랜드는 Barbri, Kaplan, Themis였다. 세 브랜드의 설명회에 모두 참석했고, 각각의 가격과 패키지의 내용을 비교해보았다. 내 판단으로만 결론을 내리기 어려워서 평소 하던 대로 교수님과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모두들 자신들이 좋다고 여기는 브랜드를 주관적으로 추천하는 바람에 나는 부모님과 상의했다.
“Kaplan에서 바 시험 통과 못 하면 돈을 돌려준다는 말에 혹한다는 건 통과 못 할 가능성도 열어 놓고 있는 거니? 돈을 조금 더 내더라도 제일 오래되고 다른 학생들이 많이 듣는 Barbri 듣고 열심히 공부해서 한 번에 통과하는 걸 목표로 해.”
‘아, 맞다. 나 바 시험 한 번에 통과해야 되지?’
부모님 말씀을 들으면서 간과하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만약 7월의 바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2월에 다시 바 시험을 쳐야 한다. 우리 가족의 상황을 생각하면, 한번에 바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그동안 한국에서 부모님이 사채 써가면서, 미국에서 내가 사채 써가면서 투자했던 내 미국 유학은 실패로 돌아가는 그림이 그려졌다. 상상만 해도 소름에 몸부림이 쳐졌다. 극단적으로 생각하게 되니 고민이 사라졌다. 제일 오래되고, 학생들이 제일 많이 고르는 Babri를 선택했고, 한국 로펌이 많아서 이곳보다 한국인 변호사를 찾을 가능성도 훨씬 높은 뉴욕 바를 선택했다.
"여름, 다시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졸업생들이 5월에 졸업해도 바 시험이 있는 7월 말까지는 학교의 배려로 학교 도서관에서 자신의 carrel을 계속 쓸 수 있었다. 그래서 여름에도 리치먼드에 남아서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기숙사는 5월 초 졸업식 날 바로 퇴거를 해야 해서 입학 관리하는 학장님께 캠퍼스에서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여쭤봤다. 다행히 학교에서 바 시험을 준비하고, MPRE를 준비할 수 있도록 여름 동안 외부 기숙사를 쓸 수 있게 해 주셨다.
졸업식이 끝나고 바로 바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석 달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정말 큰 압박과 스트레스 속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 나를 위해 캠퍼스 곳곳 아름다운 장소에서 공부했다. 고등학교 때 학교 건물 안에 갇혀서 공부하고, LSAT 공부할 때 집과 오석관에 갇혀서 공부했던 것이 이제는 너무 넌덜머리가 나서 바 시험도 몇 달 동안 갇혀서 공부할 걸 생각만 해도 몸서리치던 나를 위해 내가 만든 작은 이벤트였다.
실내에서 공부할 때는 로스쿨 건물 1층에 있는 벽난로도 있고, 편한 소파와 탁자들로 고풍스럽게 꾸며진 방에서 공부했다. 날씨가 좋은 날은 건물 안에 갇혀 책만 보는 게 너무 억울해서 바깥에 나갔다. 책가방에는 완전 충전한 노트북과 몇 시간 동안 공부할 책들을 넣고 책가방을 메고 다니면서 예쁜 곳을 발견하면 바로 그 자리에 앉아서 공부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선호했던 예쁜 곳은 우리 학교 가운데 있는 호수 주변이었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빌딩의 양옆에는 테라스가 꾸며져 있었다. 그 테이블에 앉아서 비장하게 노트북을 꺼내고 호수를 바라보며 앉아서 공부했다. 노트북과 책을 번갈아 보다가 힘들면 잠깐 고개를 들어서 예쁜 하늘과 호수와 나무들을 바라보며 경치를 감상하다가 다시 공부했다. 방학이라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집중도 잘됐고, 소음 대신 예쁘게 우는 새소리가 많이 들려서 공부를 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어느 때는 호수 옆 담에 앉아 공부했고, 호수 끝부분에 다리로 연결된 정자에 앉아서 호수 가운데 떠 있는 기분을 느끼면서 공부하기도 했다. 구름이 예뻤던 날은 체육관 건물 2층 테라스에 앉아서 넓은 시야로 하늘과 구름을 보면서 공부했다. 중세 시대 예쁜 건물에서 공부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은 날은 로스쿨 뒤편에 꽃과 테이블로 꾸며진 예쁜 정원에서 공부를 했다. 로스쿨에서 호수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학교 본관이 있었는데 그 본관 가운데는 여름마다 예쁜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예쁜 분수 소리를 듣고 싶을 때는 그 건물 양쪽 복도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서 공부했다.
하루종일 공부만 할 예정이지만, 매일 아침 오늘은 어느 예쁜 곳에서 공부할 지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교수님 찬스"
여름 동안 바 시험공부에 큰 힘이 되어 준 분이 계셨다. 바로 Barbri에서 강의를 하시고, 내가 마지막 학기 수업을 들었던 교수님이셨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교수님 오피스에 거의 매일 찾아가서 되지도 않는 가상 케이스를 만들어 이상한 질문만을 해대던 나한테 항상 인내를 갖고 유머러스하지만 이해가 쏙쏙 되는 대답을 잘해주셨던 교수님이셨다. 첫 학기 때 Civil Procedure 가르쳐주셨던 교수님 오피스에 매주마다 찾아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기말고사 준비할 때부터 바 시험 칠 때까지 그분의 오피스에 문지방이 닳도록 찾아갔다. 교수님은 여름방학 때도 며칠 빼고는 계속 오피스에 계셨고, 오피스에 계실 때는 다른 학생이 와서 교수님께 모르는 것을 여쭤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아무나 들어올 수 있도록 항상 문을 열어 놓으셔서 따로 약속을 하지 않고 불쑥불쑥 가더라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다른 과목들은 Barbri에서 교수님들의 강의를 들으면서 이해안가는 부분도 혼자서 계속 강의를 돌려보거나 문제를 풀며 공부하면서 알게 되는데, 이 교수님이 가르치는 과목은 그렇게 하기가 싫었다. 교수님이 가르치는 과목 공부를 하거나 문제를 풀다가 모르는 문제가 생기면 바로 오피스로 달려갔다.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교수님 오피스에 찾아오는 학생들은 나 말고도 몇 명 있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Barbri에서 강의하시는 유일한 교수님이라 인기가 많았다. 교수님께 여쭤보고 잠깐 이야기를 하면 혼자서 끙끙거릴 문제도 바로 이해를 했고 교수님께 금방 또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다시 돌아가서 공부를 이어 나갔다.
"친구 찬스"
학교에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날 때면 바 시험 준비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친구가 바 시험 문제랑 진짜 비슷한 문제로 준비하려면 Barbri나 Kaplan문제는 연습용으로 풀고 NCBE에서 파는 문제를 풀어보라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Barbri문제만 계속 푸는 연습을 했지 NCBE 문제를 사서 푸는 생각은 못 했다. 친구 이야기를 듣고 보니 바 시험을 주관하는 기관에서 파는 연습용 문제가 훨씬 될 것 같았다. 한 세트당 $50였는데, 많이는 못 사고 한 세트만 사서 시험 보기 5일 전에 한 번 풀어봤다.
문제를 풀면서 정말 Barbri로 공부했던 연습문제랑은 약간 결이 다른 문제들이어서 신선하다고 느꼈다. 그 문제들을 복습하며 마지막 시험대비를 했다.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나중에 바 시험을 보면서 문제들이 내가 마지막에 풀었던 NCBE의 문제들과 느낌이랑 결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한테는 마지막에 그 문제를 풀었던 것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