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나는 꽤나 운이 좋은 사람이다. 3년전 쯤 우연히 좋은 사람들과 책 얘기를 나눌수있는 독서모임를 알게되어, 지금까지 1-2주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참여할수 되었다. 그러나 독서모임에 참여하기 전과 후의 나는 명백히 다르다고 느끼고 있음에도, 독서모임이 왜 필요하며 어떤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해서 각잡고 생각해본적은 없었다. "책, 이게뭐라고"에서 장강명 작가는 소설가이자 북 팟캐스트 진행자로서 겪었던 본인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그 에대한 답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얼마전 인터넷에서 "시절 친구"라는 단어를 보고 무릎을 탁 친 적이 있다. 수 많은 예술작품들과 역사적 사건들이 영원한 우정의 숭고함을 찬양하지만, 우리앞에 놓인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먹고 살기위해 생애주기별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그것이 새로 배우기 위해서든, 일하기 위해서든, 새로운 가족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든 끊임없이 이동하며,그 과정에서 어느새 과거의 친구는 자연스레 잊혀지고 현재의 친구가 나와 가장 친구가 된다. 물론 과거의 친구또한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공유하며 성장해온 소중한 사이이지만, 지금 상황에서 바쁜 현실속 고민과 관심사를 공유한 사람이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패턴이 무수히 반복되고 지속됨에 따라, 어느순간부터 우리는 새친구들와 눈앞에 있는 현실만 이야기하게 된다. 주로 미디어속의 연예인과 정치인, 요즘 노래와 게임, 상사와 육아 따위의 것들. 그럼에도 우리는 알고있다. 우리의 근간이 우리가 늘 말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 것이 현실속 문제들로 잠식되어선 안된다는 것을. 그렇기에 우리는 읽고, 쓰고, 나누고, 사유하는 연대를 찾게되고, 이를 통해 스스로를 이해하고 재해석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장강명 작가는 이를 자신이 꿈꾸는 "책이 중심에 있는" 사회라고 이야기 한다. 그의 표현을 인용해보면, 그 이상적인 연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상할수 있게 된다.
"요즘 나는 책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생각한다. 사람들 앞에 책이 있고, 그 책 역시 말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책은 고집스럽게 한가지 주제를 얘기한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책이 묻는 질문에 답변해야 한다. 그렇게 책은 우리의 대화가 뒷담화로 번지지 않게하는 무게 중심이 되어준다. (중략). 책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는 당연히 독서 토론도 많이 열려야 한다. '전문가'의 고전강독을 듣는 모임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을 다룬 책을 매개로 참가자들이 자신의 내면을 여는 자리여야 한다. 그런 모임이 지역 공동체 네트워크와 결합한다면 좋겠다. 아니, 그런 모임이 바로 지역 공동체 네트워크의 중심축이 되는 풍경을 상상한다. 나이나 재산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같은 동네 이웃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열흘이나 보름에 한 번씩 모여 책을 놓고 자기 생각과 경험을 자연스럽게 말하고 듣는 공간. 책을 읽고 의견을 차분히 말할수 있는 사람이라면 독거노인도, 미혼모도, 외국인도 모두 환영하느 자리. 그렇게 지역과 지식이 결합하는 세상" 물론 그 시작은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보리수아래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될수도, 퇴근후 피곤에 절은 모습으로 커피한잔 하며 토론하는 모임이 될 수도, 장강명 작가가 지인들과 한 것처럼 스프레드시트로 대화하는 기술적 아날로그 형태가 될수도 있을것이다. 형식은 어떻게 되든 좋다. 때로는 "좋은 사람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에 대한 대책없이 형이상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장강명 잘생겼다' 따위의 시시콜콜한 얘기도 하면서 (이 얘기를 쓰면서 다시 찾아본 그의 인터뷰영상속 얼굴은 역시나 빠질데 없이 잘생겼다) 현실에 매몰되어있지 않은 나를, 그리고 우리를 재해석하고 싶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 되면, 우리는 늘 성과가 분명히 계량될 수 있는 차년도 목표를 세우곤 한다.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인류 역사를 돌아보고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답을 얻을수 없는 질문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많은 순간에 우리는 답이 없기에, 성과가 없기에 어떠한 생각을 시작하는것 조차 망설이게 된다. 그리고는 현실적 고민의 단계에 그대로 머무르게 된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게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내년에는 그 형태가 어찌되었든 '답을 내릴수 없는 질문들'을 던져볼 수 있는, 그리하여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각자의 내면을 열어볼수 있는 연대에 머무를 수 있기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