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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진양 Oct 29. 2020

1학년 받아쓰기 4점, 5점 그리고 10점

엄마가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

둘째 아이가 올해 1학년이 되어 학교에 갔다.

하지만 정말 누구도 겪어보지 않은 상황으로 첫째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던 1학년의 학교생활.


큰 아이는 글자에 관심이 많아서 한글을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금방 익히게 되었다.

하지만 둘째는 한글에 크게 관심이 없었고 나도 조급해하지 않고 한글 공부를 억지로 시키거나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에 처음 갔을 때 드문드문 책을 읽는 정도였다. 학교 국어시간에 ㄱ,ㄴ,ㄷ 부터  알려주기 때문에 서로 스트레스받으며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코로나로 학교 가는 횟수가 적었고, 온라인으로 공부를 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학교에서 선생님과 직접 소통하며 공부하는 것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어서 확실히 한글을 익히는 속도가 늦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읽는 것 까지 익숙해져 2학기 때는 제법 글씨를 다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한 고비 넘겼다고 생각했을 무렵

받아쓰기를 실시한다고 알림장이 왔다. 이제 겨우 읽는 것이 가능해졌는데 받아쓰기라니.......

큰 아이는 1학년 때 받아쓰기를 할 때. 전날 공부하면 그래도 금방 익혀서 거의 10점을 맞아왔다.

그래서 받아쓰기에 아이도 나도 크게 힘들었던 기억이 없다.

 

그런데 이제 읽기가 겨우 가능해진 아이에게 받아쓰기를 본다고 하니 아이는 읽는 것은 할 수 있는데 쓰는 건 너무 힘들다며

자기는 못하겠다고 해보지도 않고 미리 포기해버렸다.

그래서 처음 시험 볼 때는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고 그럼 5개만 외워가자고 했다.

5개를 외워고 간 첫 번째 받아쓰기 시험.

결과는 4점. 받아쓰기를 볼 때 맞춤법은 당연히 맞아야 하고 띄어쓰기와 마침표 느낌표 등등 부호도 다 외워야 하니 쉽지가 않다.

학교에 다니는 것도 힘든데 시험까지 보니 얼마나 떨렸을지 대충 짐작이 갔다. 혹 주눅이 들지 않을까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고 다음엔 하나만 더 맞아보자고 격려해 주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또 받아쓰기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늘 공부를 하기 전부터 하기 싫다고 자기는 못한다고 짜증과 함께 힘들어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5개만 외워서 가자고 다독이고 공부를 시켰다. 공부를 시키는 것이 나에게도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하기 전부터 짜증 내는 것을 달래고 회유하며 이렇게까지 시켜야 하나 싶었다. 큰아이는 스스로 잘 보고 싶었기 때문에 열심히 했지만 둘째 아이는 성격이 정말 달랐기 때문에

큰 욕심이 없었다.



그런데 엄마로서 가장 속상했던 것은 해보지도 않고 미리  “ 난 할 수 없어 “ “못해”라고 자신의 한계를 정해 놓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기도 내심 학교에서 친구들보다는 못하는 것 같아 속상해하는 눈치였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두 번째 시험은 5점을 맞아왔다. 다른 것들은 아예 외울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서 다음  시험에 ( 일주일에 한 번씩 받아쓰기를 봅니다. ) 아이에게 틀리더라도 10개는 다 공부해서 가자고 했다.

그리고 충분히 할 수 있으니 천천히 해보자고 격려했다. 엄마로서 아이 받아쓰기 점수가 1점이든 3점이든 솔직히 난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과는 별개로 아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한글을 미리 익히지 않고 들어가 국어에 대해 안 그래도 자신감이 없는데 받아쓰기에서 적나라하게 너의 실력은 이거야 라고 말해주는 듯한

점수가 싫었다. 받아쓰기를 하면서 아이들이 맞춤법을 확실히 더 정확하게 익힐 수 있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 암기보다 많은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분명 아이마다 학습 발달 영역과 속도가 다르다.  언어 쪽이 빨리 발달하는 아이가 있고 수리 영역이 더 빠른 아이가 있다. 그것을 존중해주며 아이에게 맞게 기다려주는 것이 좋지만 일단은 학교에서 점수로 친구들과 딱 비교가 되기 때문에 천천히 기다려주는 것이 쉽지가 않다.


3번째 받아쓰기. 이번엔 무조건 10개를 외워가도록 평소보다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해 공부를 시켰다. 그리고 대망의 시험날.

학교가 끝나고 아이가 전화가 왔다.

“ 엄마 나 받아쓰기 다 맞았어. 그리고 오늘 친구랑 조금 놀아도 되지?”

전화기 너머로 받아쓰기 백점을 엄마에게 빨리 자랑하고 싶었던 설레고 신나는 목소리가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받아쓰기 10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엄마는 네가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확실히 그 후로 아이는 자신감이 붙었다.

물론 아직도 국어공부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미리 “ 난 못해” “난 할 수 없어”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으니 그만하면 충분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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