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감 Apr 11. 2021

바보야, 바람 속에 답이 있다니까...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https://youtu.be/G58XWF6B3AA



청량리 역전 대왕 코너 다방에서 밥 딜런의 '블러위닌더윈드Blowing in the wind'가 매가리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듣기는 편하지만 가사까지 편하지는 않다. 후렴구 '바보야 바람 속에 답이 있어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g in the wind'는 빵꾸난 교양 필수 철학개론 대신 철학적 사유를 격려해 줬다. 


가볍고 부드럽지만 미치지 않는 데가 없는 바람을 동양에서는 하늘의 섭리에 비유했다. 바람을 피우다, 바람을 잡다 따위 사람들의 경박한 처신을 빗대고 있는 요즘의 관용구를 바람이 들으면 섭섭할 노릇이다. 


유교 경전 중에서 주역周易은 자연계의 여덟 가지 사물/현상을 가지고 우주 만상의 변화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그중에 바람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지만 다른 사물을 움직여서 하늘의 뜻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한다.


주역 64괘 중의 57번째 괘는 바람이 두 번 들어간다고 해서 중풍손重風巽 괘다. 전체적인 괘의 멧시지는  하늘의 뜻에 따르는 겸손함인데 남에게 자신을 낮추는 겸손과는 구별된다. 


하늘의 뜻을 따르려면 우선 그 뜻을 알아야 하는데 그냥은 안된다.  나이 오십 지천명知天命은 공자님 당신의 경험이지 누구나 쉰 살이 되면 하늘의 명을 자동으로 깨닫게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아무리 천지인天地人 삼재才 중에 한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이래도 머리에 이고 있는 하늘의 명命과 리理를 감각하는 데는 내공이 필요하다. 자기 자신을 겸손하게 내려놓고 간절하게 구해야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부드러운 바람결에 실려오는 그 뜻을 '알아 모시는 것'은 맹목적인 ‘따름’이 아닌 ‘앎’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다.  밥 딜런이 바람 속에 흘러가고 있다고 한 답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군주는 공손하게 하늘의 섭리에 따라 정사를 펼쳐야 한다고 했다. 동시에 군주가 스스로 만물 속에 스며드는 부드러운 바람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면 백성들이 따라온다.


노나라의 실력자 계강자季康子가 공자에게 물었다. 

'무도無道한 자를 죽여서 올바른 도리로 나아가게 하면 어떨까요?' 


그러자 공자가 대답한다. 

'어떻게 죽이는 방법으로 정치를 하려고 합니까?  위정자가 선해지고자 하면 백성도 선해집니다. 군자의 덕德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입니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게 마련입니다. '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대화다.


이 대목이 지금 시대에 와서는 약간 비틀려서 인용되고 있다. 바람이 권력으로, 은 권력 앞에 납작 엎드리는 민초로 비유된다. 바람이 덕은 없고 힘만 남은 위정자로 변질되었다. 


바람도 불기 전에 아예 풀이 알아서 눕는다면서, 권력자에게 알아서 처신하는 세태를 자조적으로 풍자하기도 한다. 김수영 시인의  '풀이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시 '풀'을 떠오르게 한다. 




옛날 옛적에 신이 행복을 사람의 마음속에 감추어 놓았는데 그때 하늘의 뜻도 거기 함께 묻었다고 한다.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때 마음의 소리를 따르라는 말은 바로 우리 마음속에 하늘의 뜻이 있다는 얘기다.


바람은 연약한 갈대를 춤추게도 하고 눕히기도 한다.

갈대보다 못한 인간에게 겸손은 생존의 필수 과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우주의 질서에 굴복할 때만 지속 가능하다. 

깊은 겸손만이 높은 자존을 보장한다.


孔子對曰 子爲政 焉用殺 子欲善而民善矣 
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尙之風必偃

논어 안연편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김수영  시 '풀' 의 중간 부분



매거진의 이전글 인류가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