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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Dec 16. 2020

이께아를 조립하다 떠오른
실없는 생각




해외에서 몇 년 살다 귀국하는 주재원이나 유학생들은 현지에서 임시로 쓰다 버리고 올 요량으로 가구를 살 때 이께아에 간다. 그러다 나중에 가지고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 우리 집처럼.  짜장면 배달 일회용 용기를 안 버리고 집에서 계속 쓰는 것과 같다.


이께아는 스웨덴 사람이 창업한 세계 최대의 가구 회사다. 회사의 상표부터 파란 바탕에 노란 십자 스웨덴 국기와 많이 닮았을 뿐 아니라, 깔끔하고 밝은 스웨덴스러운 이미지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본사를 네덜란드로 옮겼다고 하는데 필시 세금을 덜 내거나 혜택이 매력적이라 그랬을 것 같다. 스웨덴을 팔아 장사하면서 염치없다고 비난할 수 있지만 당사자 말도 들어봐야 한다. 살인적인 세금 내가면서 도저히 업業을 유지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창업자인 캄프라드가 스위스에 이민 가서 수십 년을 산 것도 거기 경치가 좋아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보통 이케아라고 부르는데 미국 쪽에서는 아이케아라고도 부른다. 나는 이께아다.


이께아는 한국에도 진출해서 매장을 늘려가고 있는데 인구당 매장 수는 아직 유럽 나라들이 상위를 차지한다. 이께아의 제일 큰 장점은 싼 가격이고 제일 큰 (소비자에게) 단점은 소비자 조립 (소위 DIY)이다. 박리薄利와 다매多賣의 선순환으로 키운 회사다. 가구의 조립과 배송을 소비자에 맡기고 그만큼 가격을 내려주는 식이다.


소비자는 조립과 운송능력이 필요하다. 운송은 차가 있으면 되지만 조립이 관건이다. 누구나 특별한 공구 없이 조립할 수 있다고 하지만 소비자 나름이다. 이께아 조립에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고는 얘기 못하지만 소비자에 따라 조립의 난이도나 시간은 많이 차이 난다.


집안에서 조립은 대개 남편들 몫인데 두세 시간씩 소요된다. 제품마다 예상 소요시간이 표시되어 있지만 개인차가 크다. 매장이 한적한 곳에 멀리 떨어져 있는 이께아는 구매 및 조립에 하루가 꼬박 걸린다. 우리나라에서 토요일 쉬는 주 5일 근무제가 전면 시행된 2011년에 이께아 코리아가 설립된 게 우연은 아니라고 본다. 그 후 3년 있다 첫 번째 매장인 광명점이 문을 열었다.


나도 유럽 근무 시절부터 이께아 깨나 출입했으니 구력은 좀 있다 하겠으나, 조립 기술은 그대로이고 눈치만 늘었다. 여기 나름대로의 경험에 의한 요령을 아는 체해본다. 극히 주관적인 분석이다. 책임 안 진다.



#1. 이께아는 가격이 쌀 수록 조립이 복잡하다.


선반처럼 작은 크기의 부품( piece)들이 많고 재질이 일정한 가구 키트는 대체로 가격이 싼 반면 ( 유럽 기준) 조립 물량이 많고 까다롭다. 반면에 소파나 의자는 천과 가죽 시트 부분이 공장에서 이미 접합 처리돼서 나오므로 상대적으로 조립 물량이 적다. 그럴수록 가격은 비싸다.

피스의 법칙 : piece와 peace는 반비례한다.


#2. 부피가 크다고 겁먹을 것 없다.


이께아는 운송도 소비자가 떠맡는다. 대개 승용차로 운반하기 알맞게 납작하게 분해 포장해서 최대한 부피를 줄여준다. 그런데도 가끔 이께아답지 않게 덩치가 좀 나가는 조립 세트가 있다. 포장을 벗기니 이미 조립이 다 된 서랍장이 버티고 서있는 고마운 일도 있다. 손잡이 네 개만 살살 돌려서 끼우면 끝이다. 살다가 이런 일도 있나 싶다. 목제 서랍은 공장에서 조립되어 나오는 경우가 있다.



#3. 설명서를 무시한 대가는 크다.


완제품 그림은 참고만 한다. 자존심 죽이고 세계 최대 가구 메이커가 시키는 대로 조립 설명서에 복종하는 게 후환이 없다. 나사나 볼트 같은 부속품도 순서에 따라 봉지를 개봉하는 게 안전하다. 첨부터 다 뜯어놓고 정신없이 시작하다 부품 찾는데 시간 낭비한다. 이께아 조립 좀 해봤다는 사람 중에 쓸데없이 창의력 발휘하다 아주 신세 망치는 일이 있다.


결합이 완성된 후 판자 하나의 안팎이 뒤 바뀐 것을 지적받고 첨부터 다시 시작하는 심정은 처절하다. 판자의 색깔과 표면의 질감이 (자세히 봐야) 약간 차이가 날 뿐인데도, 최종 결정권자인 집사람이 '기왕이면'이라는 부사구를 날리면 '기능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라는 나약한 어필은 공허한 메아리가 된다.


#4. 부품


부품이나 나사 같은 부속품이 모자라거나 빠져있는 경우는 드물다. 침착하게 잘 찾아봐라. 삼 년 동안 써온 노트북 피시 키보드에 갑자기 P 자 키 캡이 안 보이면 나를 의심해야 한다. 그래도 못 찾겠다면 뭔가 불행이 잉태되고 있는 전조일 수 있다. 엉뚱한 데다 박았다면 지금이라도 되돌아가는 게 현명하다. 매몰비용이 아깝다고 대충 뚜드려 맞추면 재앙이 되어 돌아온다. 반대로 조립이 다 끝났는데 제품에 나사 구멍이 하나 남아 있는 것도 참 기분 안 좋다.


#5. 관중


조립이 맘대로 안된다고 구경하는 아이들한테 화풀이를 하거나 내쫓지 마라. 미래의 조립 일꾼들이다. 게네들한테는 이께아나 레고나 별 차이 없이 재미있다. 재미로 하는 애들 못 당한다. 잘 가르치면 편한 노후가 보장된다.


知之者不如好之者,好之者不如樂之者.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거워하는 사람만 못하다.
논어 옹야장 16 / 낭송논어 ( 김수경외)





IKEA Korea Home page


우리는 어려운 일을 인생에 빗대어 비교하는 습관이 있다. 하지만 이께아 같은 삶을 살기는 싫다.


이께아 가구의 설명서처럼 남이 정해진 순서대로 학원 가고, 학교 가고 인기 직장에 취업하고 착착 끼워 맞추는 인생은 무미건조할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동질성의 사회는 면역력이 없다.






더욱이 값싼 가구를 조립하는 인생은 평생 남이 시키는 일만 하다 한번 만 삐끗해도 나락으로 떨어지고 방황한다. 직소jigsaw 퍼즐게임이나 이께아는 중간에 잘못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인생엔 다시도 없고 소급도 없다.


반면 비싼 가구 세트 인생은 남이 반 정도 만들어 놓은 중간 지점에서 출발해서 설렁설렁 여유 있게 산다. 남이 떠먹여 주는 인생 또한 재미없다.


언젠가 이층 침대를 조립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작업량이 많고 균형을 잡으면서 맞추어야 하므로 초보한테는 어려운 난이도 상上의 가구인데도 실수 없이 깔끔하게 끝냈다. 부품 하나 남은 것 없고 나사 구멍 하나 빈틈없이 완벽해서 뿌듯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불행은 도처에 지뢰처럼 깔려있다. 완성품을 본 집사람이 생각보다 튼튼해 보이지 않는다며 반품하자고 한다. 반품하려면 조립의 역순으로 전부 해체하고 부속품도 따로 분류해서 각 봉지에 담아야 한다. 그리고 해체한 부품들을 원래 박스에 밀어 넣는데 다 안 들어가고 삐져나온다. 이 사건은 나의 이께아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되었다.


근근이 노력해서 이룩한 평생의 성과가 이렇게 다른 사람에 의해 한순간에 무너지는 인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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