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공동체
최명희의 장편소설 혼불에는 아비의 뼈를 몰래 투장 (남의 눈을 속여 타인의 묘지에 매장) 했다가 들킨 천민賤民 내외가 기채네 집 마당에서 덕석말이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서슬이 시퍼런 매안 마을 이 씨 문중의 종손 기채가 어머니 청암 부인의 묘소를 파헤친 무당 백단이네 와 남편 만동이를 멍석에 말아서 피 걸레가 되도록 뭇매질 시키고 있다. 이야기의 배경은 일제 시대다. 조선시대 반상 제도가 아직 남아있긴 해도 나라 빼앗긴 양반들은 이빨 빠진 호랑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덕석말이:
전통시대 촌락 사회의 규범을 위배한 자에게 멍석을 말아서 매를 때리는 촌락의 자치적 사회통제 방식. 부모에게 지나치게 불효한 사람이 생겼을 경우 항렬이 높은 이나 연장자가 동네 회의를 열어서 벌 줄 것을 결의하면, 죄지은 사람을 마을 사람들이 모인 앞에 끌어내다가 덕석에 말아서 노인들의 지시에 따라 동네 사람들이 몽둥이로 때리거나 발로 차기도 한다. 죄지은 사람이 자신의 죄과를 마을 사람들에게 사과한 다음에 풀려나올 수 있다. 이러한 관습은 일탈적(逸脫的) 행위를 제재하여 마을의 사회질서와 규범을 유지시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지주
소설 속의 기채는 많은 문중 전답을 가진 호남지역 양반의 종손으로서 지방의 세도가이다. 대부분의 동네 상민들은 기채 소유 땅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어먹고 살고 있다. 대가로 소작료를 바치거나 기채 문중의 대소사를 도왔다. 또한 기채네로부터 빚도 지고 있다.
이야기를 지금 시대로 바꿔서 각색을 해보자.
할아버지, 아버지가 평생 근무한 회사에서 삼촌, 사촌, 이웃들과 같이 일하고 있다. 작고한 현 사장의 어머니가 고문으로 있으면서 회사의 규모가 부쩍 커져서 직원들 자녀의 취업도 보장이 되어있다. 직원들은 현금이 부족하면 회사가 소유한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니 대부분이 채무자다. 그리고 회사 사장의 친척들은 판검사에 국회의원이 수두룩하다. 사장은 지역 지자체장, 경찰서장과 호형호제하는 각별한 사이다. 사장이 부당하게 갑질을 해도 저항할 수도, 가서 호소할 데도 없다.
향약
향약은 부모에게 불효한다든지 따위 행실이 부정한 자를 데려다 혼내줌으로써, 마을의 도덕적 질서를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정한 규약이다. 즉 동네 어른들이 돼먹지 못한 자들을 데려다가 군기를 잡기 위함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피해 당사자인 기채가 죄인을 직접 단죄하고 있다. 무당 백단네를 족치는 장면은 마을 질서의 유지보다는 아무래도 자기 집안의 권위를 훼손시킨 데 대한 보복으로 보인다.
공적인 규약을 구실 삼아 사적인 분통을 해소하는 건 위험하다. 감정이 개입되어 지나치게 징벌할 수 있다. 사람 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 오늘날 법관은 특수 관계가 있는 사건을 못 맡게 되어있는데 제척除斥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마을의 규범인 향약이 지방 호족들이 민중들에게 사법적 린치를 가하는 명분이 되었다. 향약을 집행하는 회원은 선비들만 될 수 있었다. 소설 속 매안 마을에도 향약이 있다. 향약은 결국 행세하는 양반들이 하층민들을 통제하는 수단이 되었다. 나라 법은 아니지만 엄중했다.
소설 속 매안 마을의 향약에 의하면 극상 벌에 해당하는 자는 마을에서 영구히 쫓아낸다고 되어있다. 마을이 주거지이자 직장이고 형제, 이웃은 직장의 동료다. 마을에서 쫓겨나는 건 지금으로 치면 평생 다니던 직장에서 잘리고 일가친척과 연을 끊고 타국 만 리(이민 비자도 없이 )로 대책 없이 이민 가는 것보다 더했다.
원칙적으로 향약은 조선시대 양반들의 향촌 자치와 이를 통해 하층민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숭유 배불 정책에 의하여 유교적 예절과 풍속을 향촌사회에 보급하여 도덕적 질서를 확립하고 미풍양속을 진작시키며 각종 재난(災難)을 당했을 때 상부상조하기 위한 규약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두레
전통 촌락의 평민들에게 마을은 공동체적 성격이 강해 상부상조 경제 활동의 기본 단위가 되었다. 두레가 활동 중 하나였다.
두레는 일대일의 노동 교환이 아니고 마을 단위 노동 공동체의 성격이 강하다. 일시적으로 많은 품이 요구되는 모내기와 김매기에는 거의 두레가 동원되었다.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 움직이는 만큼 감독과 규율이 제법 엄했다고 한다. 새참을 몇 끼 어느 집에서 낼지까지 정했으니 말이다. 생산 활동은 공동이지만 수확을 공동으로 나누는 건 아니었다. 힘든 일을 서로 도와서 해결하는 일 중심의 공동체에 머물렀고 임시적으로 운영했다.
마을의 회복
지금은 개인의 행동반경이 넓어지고 경제활동을 하는 직장과 주거지가 분리되는 바람에 마을의 전통적 의미는 많이 퇴색했다. 바로 옆집 사람도 모르지만 내가 살고 있고 아이들 학교가 있는 마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도 무관심하다. 마을버스 다니는 시간만 알고 있다.
요즘 일부에서 마을 공동체를 다시 살리자는 운동이 일고 있다. 그렇다고 전통 촌락 공동체로 돌아가자는 얘기는 아니다. 전통 촌락의 상부상조적 관계망이 공동체의 핵심 조건을 충족하기는 한다. 그러나 소설에서 보듯이 평등하지 못하고 비민주적인 지배 구조 그리고 폐쇄적인 단점이 있었다. 상부상조도 좋지만 마을이 결정 공동체의 역할을 할 때 공동체가 완성된다.
우리나라 전 국민의 90%가 도시에 살고 있다. 인구는 줄고 노인은 늘고 주거환경은 노후화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지역의 자원을 활용하여 도시의 역량을 높이는 데 지자체 행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주민이 참여해서 실천적 사업을 결정하는 마을 공동체가 필요하다.
12월에 보도블록을 갈아엎는 건 약과다. 곳곳에 떡 벌어지게 지어놓고 파리 날리는 박물관, 기념관, 회관이 즐비하다. 여행을 할 때 미안한 할 정도로 한산한 자동차 도로 옆에 다시 닦고 있는 길은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 걸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도시 예산의 40%가 사회 복지에 쓰인다고 하는데 주민의 대부분은 결정에 참여는커녕 내용도 모르고 있다.
주민이 선거로 뽑은 지자체장들과 지방 의원들이 지역의 사업을 구상하고 집행하지만 주민은 선거날 하루만 결정하고 모든 지역 사업은 소수의 공무원들이 판단해서 결정한다. 그들의 결정이 주민들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얼마나 우선을 두고 있을까? 시민은 특정 시에 사는 사람을 이르지만 동시에 국정에 참여하는 사람이란 뜻도 된다. 주민이 원하는 일을 대신해줄 대리인을 선거로 뽑는 대의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시민은 주민일 뿐이고 주인의 권리는 빼앗겼다.
마을 공동체의 핵심은 주민이 중심이 돼서 지역의 사업을 구상하고 결정하는 의사결정 시스템이다. 대의 민주주의의 모순을 보완하여 시민의 권리를 회복하자는 지역 규모의 직접 민주주의 형태다. 지금 동 단위에서 시작하고 있는 주민자치회도 이에 속한다.
지역의 의료 협동조합은 마을 공동체 사업의 한 예다. 주민이 출자하여 운영하는 병원이다. 조합에서 고용한 의사가 지역 주민의 건강을 돌보는데 일반 병원과 달리 예방 활동도 하고 왕진도 가능하다. 이외에 주민 주도 마을 카페, 공동육아, 마을기업 등이 마을 공동체 사업의 사례인데 주민의 보편적인 참여가 관건이다.
무한 경쟁의 적자생존에서 상호부조로 사회 발전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주민자치회: 지역사회 주민대표 기구로써 자치 계획 수립 및 실행, 주민참여예산의 제안과 편성, 자치 회관 운영 등을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주민자치 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