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혜 글 그림 / 흐름
https://brunch.co.kr/@julian0614/61
브런치 작가이기도 한 저자는 책에서 우리가 부딪히고 사는 아픔들을 통하여 삶이라는 질통의 치유를 시도하고 있다. 진통제를 주사하는 대증요법이 아닌 근원적 치료다.
나, 변화, 어울림, 그리고 사랑에서 경험하는 고통의 공통분모를 뽑아내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위로는 중국 후한시대 고사로부터 삼국사기, 조선왕조 실록, 문집까지 방대한 사례를 발굴하고 저자의 가족사도 소개하고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 일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수천 년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의 삶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역사에 자취를 남긴 그들에 비하면 나는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는 들판의 이름 모를 작은 풀에 불과하자. 하지만 나는 나이다.
책, 68 페이지
천년을 살아남은 ( survived) 사료에 의한 고증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갈 길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오후엔 갤 거야'라는 저자의 예보는 믿음이 간다.
저자가 발굴해서 독자 앞에 현재형으로 소환한 우리 조상들의 삶은 교육적이고 신기하기도 하다. 혹시 우리가 무시했거나 과소평가했던 조상들의 사회 운영 시스템에 감탄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40세에 미관 말직으로 시작해서 72세에 몰한 한명회와, 30대에 대사헌까지 초고속 승진했지만 이듬해 사약을 받은 조광조를 조명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형화된 비교에 울고 웃는 현대인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다.
조선시대, 서와 얼 출신을 차별한 관직 진출 제도를 비판하고 폐지를 건의한 당시 기득권 층을 소개했다. 그들이 추구한 용기 있는 변화를 조선말 단발령과 1970년대 장발 단속과 대조시켰다.
익명의 투서는 인정하지 않은 세종대왕부터, 백성들이 고생하며 잡은 전복을 차마 먹지 않았다는 제주 목사 기건까지 이 시대에도 귀감이 되는 군신들의 이야기도 감동을 준다.
책은 김유신과 천관녀, 여말 문신 조반 등 역사에서 발견되는 아프고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들을 소개하며 끝난다. 요즘 홍수처럼 범람하는 사랑 이야기들보다 진하고 아기자기하다. 저자는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에 대한 사랑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사랑의 외연을 확대하고 있다.
책의 이야기마다 저자가 직접 그려 넣은 그림들도 재미있다. 강한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는데 독화畵력 만큼 들린다. 감수성이 빈약한 나는 대신 한참을 보았더니 점점 이야기가 크게 들려왔다.
책을 읽고 나니 베토벤 전원 교향곡의 마지막 5악장처럼 폭풍이 지나간 후의 평화가 기대된다. 풀잎엔 아직 빗방울이 맺혀있지만 개운한 오후... '오후엔 갤 거야'라는 저자의 말이 믿고 싶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