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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Jul 07. 2021

사람을 보는 눈

視其所以  觀其所由  察其所安

© geralt, 출처 Pixabay



내가 기억하는 네댓 살 무렵의 인간관계는 공항의 엑스레이 검색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안전하다고 검증된 가족이 아닌 이발소 아저씨 같은 이웃이 접근해오면, 일단 저 인간이 내게 우호적인지 여부를 스캔해서 판별하고 나서야 입장을 정했다. 상대에 대한 참고 자료가 없는 마당에 즉석에서 피아彼我를 식별해야 했으므로 감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순발력도 필요했다. 심사 항목에 상대방의 눈이 포함되었던 걸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기준은 물론 생각이 안 나는데 어릴수록 까다로웠을 것임에 틀림없다.


아기는 엄마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을 잠재적 위험으로 평가하고 이들의 품에 안기는 순간 경계 신호를 발령한다. 엄마에게 적의 수중에 떨어진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구조를 요청하는 데 우는 게 유일한 신호다. 울음의 강도와 음 높이를 변수로 상황의 심각성을 전파한다. 기함을 하며 새파랗게 자지러지는 자기희생적 절규를 통해서만, 이빨을 드러내고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을 민망하게 만들어서 내칠 수가 있다. 드물게 아기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저항 없이 조용히 안기기도 한다. 아기의 파격적으로 호의적인 채점표의 구조를 모르는 어른들은 그저 아기가 누구누구 닮아서 순하다는 결론을 내면서 문제의 원인을 아기의 성격으로 귀착시킨다.


타인에 대한 경계는 타고 나는 선천적 자기 보호 본능에 속한다. 외부 공격을 방어할 능력이나 수단이 전혀 없는 갓난쟁이일수록 그 심사 기준이 매우 보수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기들은 가용할 수 있는 수단을 동원하여 상대의 정체를 파악하는데 이때 표정이나 냄새, 말소리, 안아주는 자세 같은 말초적인 정보가 입력된다. 자신의 안위가 달린 사안인 바 여러 감각 기관을 동원해서 읽은 직관적 데이터를 일정한 방식으로 종합해서 판단할 것이다. 산출 공식은 아기들만 알고 있지만 최종적으로 구하는 답은 결국 상대의 진정성임에 틀림없다.


성장기 청소년 시절에 낯선 어른을 대할 때 반응은 혼란스럽다. 감각적 식별 능력이 소멸하고 있고 분석력은 아직 약하다 보니 자기 또래가 아닌 타인에 대해 반응이 소극적이며 관심 또한 적다. 뜨악한 무표정의 과묵한 상태로 땅바닥을 관찰한다든지 하며 어색한 상황을 모면한다. 그걸 가지고 부모는 우리 애가 워낙 숫기가 없어서 수줍어한다고 변명하는 데 듣는 애는 속으로 어이없다


연약한 천사들에게만 임시 허용했던 감각적 인간 식별 비방은 어른이 되면서 신이 거두어가고 껍데기만 남는다. 사전 정보나 대화를 통한 분석 수단이 추가되면서 사람 판단하는 일이 복잡하고 어려워진다. 그런데도 이미 퇴화된 감각적 방식을 고집하면서 첫인상으로 사람을 즉석 평가했다가 낭패보는 사람들이 꽤 있다. 앞날을 예측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해서 한 치 사람 속을 모른다고 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사랑한다고 맹세하는 파트너의 진심을 알 수 없어 속 태우고,

회사에서 사람을 뽑을 때는 이력서로 제대로 파악이 안 되는 자질과 인성을 알아보느라 지원자를 둘러싸고 앉아 취조하듯 캐묻는다. 심지어는 평판이라는 미명 하에 뒷조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골프를 같이 쳐보면 인간성이 나온다고도 하고, 여행을 같이 가면 사람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고 한다. 신혼여행 가서 싸우고 헤어졌다는 소리가 모두 꾸며낸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상태 좋을 때 잠깐씩 만나 보는 거로는 상대방의 이기적이고 무례한 성격, 고집과 오기, 분노 조절 장애 같은 결함을 발견하는데 한계가 있다.


골프나 여행의 공통점은 평소에 비해 압축적으로 변화가 많은 상황 속에서 장시간 붙어 있는 것이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압박을 주고받는 상황에 맞닥뜨리며 인성이 노출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 문제 해결과 이견 조정의 역량을 생생하게 확인하는 계기도 된다.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은 사회생활에 필수적인 덕목이어서 전통시대에도 이에 대한 여러 기술이 언급되었다. 신언서판身言書判 (용모, 언변, 필적, 판단력)이나 관상처럼 직관적 요령도 있었지만 좀 더 설득력 있는 분석 방식도 눈에 띈다. 성급한 선입견과 편견을 경계하면서 말보다는 행동을, 행동보다는 행동의 원천이 되는 근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람을 판단할 때 그의 행동거지行動擧止를 보라고 한다. 말보다 실천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행동의 이유를 따져보라고 했다. 과거의 행적을 살펴보라는 말이다.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일관된 행동이 아닌, 삿된 목적이 있는 일회성의 보여주기라면 사람을 평가하는데 가치 있는 재료가 안된다. 마지막으로 그 행동을 편안해하는 지를 관찰하라고 한다. 그 사람의 행동이 근성과 맞아서 편안해야지 미래의 연속성이 보장된다. 현재와 과거 행동을 점검하고 미래의 지속 가능성까지 예견할 수 있어야지 사람을 옳게 알아볼 수 있다는 공자의 인간 통찰론이다. 논어 위정 편에 나온다


자왈 시기소인 관기소유 찰기소안 인언수재 인언수재 子曰: "視其所以, 觀其所由, 察其所安, 人焉廋哉, 人焉廋哉!"    논어 위정 편




고대 중국의 군주 생존 실용서인 제왕학에는 인재가 없다고 탓하지 말고 그 인재를 알아보는 명군名君이 되라는 말이 있다.


나라를 다스리든 기업을 경영하든 사람을 보는 눈은 리더가 갖추어야 할 핵심 자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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