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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Sep 06. 2021

최인훈의 광장

독서록





"고독해서 저러는 거야."
명준은 아찔하다. 권투선수와 고독을 한 줄에 얽는 태식의 그 말이 그대로 안겨온다.
광장 45 페이지


내가 속한 독서 동아리에서 최인훈의 광장을 읽고 함께 이야기한 내용을 요약한다.


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하고 개인의 다른 말은 혼자다. 남의 간섭 없이 혼자 있고 싶지만 무리로부터 멀어지면 불안하다. 사람의 이러한 속성을 굳이 무서운 얼굴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을 들먹이면서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강아지도 그렇고 많은 동물들이 그렇다. 다만 인간은 불안과 고독을 해소하기 위해 무리를 공동체로 조직화하면서 다른 동물들과 차별화했다. 유발 하라리는 그의 책 '호모 데우스'에서 이를 인간의 허구적 상상력으로 풀었다.


우리가 온전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적당하게' 공동체의 보호가 필요하다. 인간은 그 대가로 공동체에 각자가 가진 자유의 일부를 갹출한다. 거기엔 근로가 있고, 권한이 있고 폭력도 있다. 매년 몇 달씩 일한 대가를 나라에다 바치기도 하고, 나라가 원하는 때와 장소에서 몇 년씩 강제로 복무하기도 한다. 폭력마저 끌러서 나라에 맡겨놓았다. 경찰과 군은 개인으로부터 위임받은 폭력을 각각 치안과 국방에 합법적으로 사용한다.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공동체라는 (실체도 없는) 개념 따위가 법과 질서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를 유보시킨다. 개인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끔 공동체와 개인, 그리고 개인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는 행위를 정치라고 정의한다면, 이데올로기는 정치의 이상적인 원리가 된다. 이데올로기에 따라 개인과 공동체 사이에 자유를 '적당하게' 분할하는 철학이 달라지는데 근대사에서 국가 간의 긴장을 야기하는 단골 화근이 되었다. 지금도 그렇다. 이데올로기는 이상과 거리가 멀다.


그 '적당한' 선에 대한 정치적, 학문적 신념, 때로는 환상이 이념이라는 허울을 쓰고 끼어들었지만 개인과 공동체 사이에 힘의 평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혼자 있으면 같이 있고 싶고 같이 있으면 귀찮은 불편한 모순 덩어리 개인은 사회와의 거래에서 언제나 밑지게 되어있다.


동양에서는 과하거나 부족함이 없는 '적당한' 중용中庸의 도리를 인간 행동의 규범으로 삼았다. 동양 철학의 정수라고 하는 주역周易의 핵심 사상을 중中과 정正으로 꼽는데 그중에서도 중中이 정正보다 윗줄이다.




최인훈은 '광장'에서 명준을 내세워 6.25 동란 전후 정치 이념의 실험 무대가 된 남북한 사회를 철학적으로 묘사하며 시대의 아픔을 노출시켰다. 개인의 내밀한 공간인 밀실과 사회적 삶의 공간인 광장 사이의 부조화를, 이념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당시 남북한의 체제에 투사시켜 비교했다. 부패하고 타락한 밀실만 있고 광장이 없는 남한에서 윤리가 실종된 자본주의를 / 위선의 꼭두각시가 춤추는 광장만 남고 개인의 밀실은 폐쇄된 북한에서 자유가 징발된 공산주의를 그렸다.


밀실과 광장을 이분二分할수록 두 공간은 더욱 반목한다. 대립하는 양 극단은 하나이며 서로 순환한다는 이치를 이해하면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그래서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라고 한 최인훈의 요약은 매우 적절하다.


주인공 명준은 성애를 통해 이념에 대한 갈등과 고민으로부터 도망가려 한다. 

북한군 장교로 6.25 동란에 참전해서 남한의 포로가 되지만 북한으로의 송환을 거부하고 중립국행을 선택한다. 결국 명준은 개인과 집단이 조화로운 이상향을 찾아 바다에 뛰어든다. 

좌우 구분에서 하나를 강요하고 살육을 저지르던 시대에 그는 중립을 지키고 용기 있게 자신을 죽인다.


작가는 남북한 정치가 이념적으로 자리 잡는 초기에 양쪽의 모순을 기하학적으로 대비시켰다. 작품이 출간되었을 4.19 직후는 아직 6.25의 악몽이 생생할 때다. 민감한 소재의 대중성과 작가의 천재적인 문학성이 결합하여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소재로 가둬두기에 워낙 휘발성이 강한 정치라는 재료가 작품의 주제로 뚫고 나오는 건 어쩔 수 없고 작가의 의도와도 관계없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을 고려할때 흐름을 지배할 정치 담론으로서는 성급하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정치의 테두리에 가두어 놓고 논쟁거리로만 소비하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만큼이나 아름다운 이 소설의 첫 구절을 지나칠 수 있다.





독서 동아리 회원들이 제기한 화두와 물음의 일부를 소개한다.



광장에는 자유라는 키워드가 숨겨져 있음

명준의 자살은 자기의 자유로운 광장을 발견하는 과정


신분제가 붕괴되고 사회적 가치관이 흔들렸던 혼란스러웠던 시절에 문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용기 있게 사회에 던진 메시지

자기 눈앞에서 가족이 죽는 걸 본 세대만이 쓸 수 있는 작품

시대적, 사상적 배경에 대한 이해와 다양한 사고의 폭이 필요한 문제작


굉장한 가치의 리얼리즘 소설

사회의 문제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건 예술가의 사회적 기능의 일부

현실 비판이지 이데올로기 비판은 아님


양 체제를 기계적 등거리에서 양비론으로 다루고 있음. 지금 같으면 작가는 어떻게 비교했을지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어 민족의 시간을 너무 허비했다는 생각


작품이 출간된 1960년 초에 평화 개념을 얘기한 게 놀라움


명준은 시대의 특별한 상황으로 인식했으나 지금 살아있어도 물에 빠질 수밖에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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