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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Jul 25. 2022

[고흥] 여행하며 생각하며

고흥에서 만난 사람들

오타 치면 고흐Gogh 가 뜨는 고흥으로 여행을 떠났다.


가기 전에 광주 사는 군대 고참한테 얘기했더니 첫마디가 '먼 곳'이다. 전라남도에서도 한참 밑에 있다.


충남 탄천 휴게소 근처 오니 빗발이 굵어진다. 자동으로 세차되는 재미에 비를 기다리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그것도 여행 떠나면서.  커피 뽑으려고 휴게소 가게에 들어간 김에 도넛 두 개를 집어 들고 나왔다. 평소에 단 것을 자제하다가 여행 중엔 과감하게 저지른다. 여행 자체가 일탈이라 객지에서 사고 치나 보다.


고흥군은 전라남도 보성군 밑에 돌출한 반도로서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육지와 해양 양면의 특징을 골고루 갖춘 매력 있는 고장이다. 그러나 불리한 반도 지형 때문인지 1960년 대에 20만 명이 넘었다는 고흥군의 주민이 지금은 6만 명대로 줄어들었다.


고흥 반도 / 네이버 지도


지역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어 가는 도중에 고흥 군청에 전화를 걸었다. 남해 고속도로에서 고흥 IC로 빠지면 만남의 광장이 나오는데 거기 관광 안내소에 들러보라고 한다. 들어가서 설명도 좀 듣고 지도를 몇 장 챙겼는데 맛집 지도가 따로 있네. 식도락은 이미 여행의 주요 테마가 되었다. 블로그에서도 맛집이나 음식 주제의 글이 인기 있다. 식당에서 음식 나오면 수저 들기 전에 스마트폰부터 들이댄다.


고흥엔 소록도 병원과 나로도 우주 센터가 있다. 두 곳의 국립 기관이 고흥군에 있다고 하는 게 정확할 터이다. 결국 이번 여행 중엔 두 군데 다 가보지 못했다. 소록도는 코로나 때문에 못 들어가고 우주센터는 보안 시설이라 접근 금지.


예약한 민박집 주인이 언제 도착하냐면서, 5시 전에 오면 남편이 대신 안내해 줄 거라고 연락이 왔다. 대개 민박, 식당의 실세는 안 주인이다. 남편은 밖으로 도는데 안 주인 대타로 손님을 대할 때는 뜨악하고 과묵하다. 예외는 있다. 수년 전 경남 산청에서 만난 민박집 바깥 주인과 나는 막걸리라는 공동 관심사로 의기가 투합하는 바람에 주인 아줌마의 견제를 받은 적이 있다.


5시 지나 들어갈 테니 걱정 마시라 하고 밥도 먹을 겸 고흥 읍에 들어갔다. 오후 4시. 맛집 지도에서 본 생선 숯불구이 집을 찍어서 찾아갔는데 택배로만 보내주는 상점이다. 시간이 어중간해서 그런지, 반도 안에 고립되어서 그런지, 읍내가 졸립고 파리 날린다. 생선이 많은 동네라 그런가.


홀로 지방을 여행하면서 애로사항 중 하나가 밥 사 먹는 일이다. 강원도 영월에서는 아침에 식당에 들어갔다가 혼자라고 앉기도 전에 쫓겨난 적도 있다. 그 후로 트라우마가 있어 혼자 식당에 들어가면 좀 쭈뼛거리는데 뭐 팔러 왔냐고 물어보는 주인도 있다. 게다가 지금 시간이 브레이크 타임. 악재가 겹쳤다. 물회 간판을 보고 들어가니 주인이 고개를 저으며 '회만 됩니다.' 한다. 우려했던 대로다. 내가 회를 안 먹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다른 한 집은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고 하고.


어정거리다 들어간 식당이 고깃집이었다. 자리에 앉을 때까지는 저지당하지 않았는데, 종업원이 물을 갖다 주면서 '뭐를 드리나' 하며 고민한다. 혼자 먹을 메뉴가 한정적이라는 얘기다.


갈비탕을 시켜놓고 주위를 보니 50 대 남자 서너 명이 둘러앉아 고기를 굽고 있는데 얼굴들이 불콰하다. 테이블 위엔 각 일 병 꼴 이상의 초록색 빈 병이 보초 서고 있다. 종업원과 대거리하는 본새로 봐서 현지 단골들이다. 요즘 지방에 가면 어디서나 자주 보는 장면이다. 뭐 하는 사람들일까. 지역의 유지들인가? 아니면 동네가 개발되면서 땅값이 다섯 배로 뛰었나?


사실 우리나라는 술 먹기 대단히 편리한 나라다. 시골이나 도시나, 낮이나 밤이나 술타령 하는 광경이 낯설지 않다. 편의점 앞 탁자에서부터 호프집, 중식, 일식, 고깃집, 산에서, 해변에서, 야영장에서, 다리 밑에서, 스크린 골프장까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지방을 다니면서 대낮에 모여 앉아 술 마시는 것 보고 유난히 생소해한다.


시골 사람들은 새벽부터 해 질 때까지 부지런히 농사만 지며 새참으로 막걸리 잔에 풋고추나 씹는다는 오만한 쌍팔년도식 편견이 내 안에 박제되어 있다. 이렇게 공공연하지는 않지만 뇌와 지각의 차원에 내재하다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차별적인 생각이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미국에서 흑인이 좋은 차를 몰면 도난 차량일 거라고 상상하고 검문하는 경찰이 그렇다.


음식이 나오자 종업원이 후추 병을 갖고 와서 손수 뿌려주다가 뚜껑이 열려 후춧가루가 뭉텅이로 갈비탕에 들어갔다. 친절이 재앙이 되는 순간. 표면장력으로 잠시 버티고 있는 후춧가루의 띠를 내가 숟갈로 대충 떠내니 얼얼하긴 하지만 먹을 만하다. 종업원은 당황하면서도 빈말이래도 다시 갖다 주겠다거나 사과는 안 한다. 초장에 고춧가루 뿌린다는 말은 들었어도 후춧가루 뿌리는 건 처음 본다. 여행 첫날 불길한 전조인가 아니면 액땜인가?


민박집 아줌마가 혼자 다녀서 좋겠다고 한다. 남자들은 이런 소리 잘 안 한다. 여자는 남편 떼어 놓고 홀로 다니고 싶고, 남자는 어떻게든지 마누라 붙어 다니려 하고.


여자만汝自灣 바닷가 조용한 마을의 독채다. 남의 집에 가면 두 가지가 우리 집 보다 크다. 신발( 우리 아들 꺼 빼고)과 티비. 이 집 티비도 시원하게 크다. 반도체와 함께 세계의 디스플레이 산업을 한국이 선도하고 있다. 방 한가운데 커다란 테이블에 노트북을 펴는데 와이파이 신호가 약하다. 그래도 이런 시골 마을까지 인터넷이 아무렇지 않게 들어오는 나라가 세계에 몇이나 될까. 아직도 해외여행할 때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와이파이 돼?' 다


다음 날 아침, 차를 세워놓은 경로당 앞에서 만난 여자 노인이 '누구시오' 한다. 고흥 구경하러 왔고 조오 밑에 집에서 며칠 묵을 거라고 하니, '여그 뭐 볼 게 있다고...' 하며 잘 있다 가라고 한다. 지방에 여행 가면 현지 사람들 반응이 대개 두 가진데, '뭐 볼 게 있다고'와 다른 하나는 '참 좋은 데 왔어'이다. 사실 둘 다 같은 얘기, 어서 오시라는 따뜻한 환영의 인사다.


고흥 월정리 방풍림


고흥군 남양면은 포도송이 같은 고흥반도의 꼭지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지도에서 재보면 제일 좁은 데는 폭이 4킬로 미터밖에 안되는데 간척되기 전엔 더 좁았다고. 남양면의 동쪽 해안 월정리에는 방풍림防風林이 있다. 1500년 경에 형성된 마을과 농경지를 해풍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약 400 미터에 달하는 숲을 조성했다. 큰 느티나무 앞에 별신 제단이 놓여있다. 해안 마을은 어업에만 종사할 것 같은데 대개 농업을 겸하고 있다. 어차피 어민도 땅에 산다. 방풍림은 지방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민박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네 경로당에 디밀려고 시장(마트)에 들러 수박을 한 통 샀다. 카드 영수증을 보니 두 통으로 계산되어 있어서 계산대 점원에게 물으니까 그러냐면서 영수증을 정정해서 다시 끊어 준다. 내가 이럴 때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그제야 마지못해 작게 뭐라 하는데 잘 들리지도 않는다.




갈비탕 집이나 시장의 종업원이 사과하지 않은 이유가 자기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사과하면 법적으로 자기 실책을 인정하는 게 될까 봐 영악하게 가만히 있었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 미안한 마음은 있는데 습관이 안되어서 말로 표현할 순간을 놓쳤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 관습이 그렇다.


우리나라 사람이 고맙다, 미안하닷 소리 잘 안 한다고들 하는데 염치가 없거나 뻔뻔해서 그런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체면을 중시하는 민족이다. 마스크를 빠짐없이 쓰고 다니는 이유도 준법정신이나 위생의식이 철저해서라기보다 남을 의식해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게 다른 말로 체면이다.


하나도 미안하지 않으면서 걸핏하면 미안하다고 (스미마셍) 하는 일본 사람이나, 미안한데도 입 다물고 있는 한국 사람이나 결국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평생 사랑한다 소리 한 번 안 하고 사는 부부와, 알러뷰와 하니를 입에 달고 사는 부부 사이에 애정의 차이가 얼마나 있을까. 언어에 우열이 없듯이 예절에도 우열은 없다. 


잘하면 칭찬받고 잘못하면 혼나던 우리 조상의 수직적 질서 중심 화법에 의하면 싹싹한 감사와 사과의 표현이 오히려 방정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동체의 관습도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존중과 배려를 말로 표현하는 방식이 예절이고, 예절은 사회 관습의 일부이다.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오해와 갈등이 생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선수끼리 꼭 말로 해야 하나' 하는 배짱이 소통에 도움이 되지 못할 만큼 사회가 복잡해졌다.


집단의 관습은 개인의 습관이 모여 변화하고, 개인의 습관은 훈련이 바꾼다. 반복된 연습으로 몸이 먼저 반응하는 운동선수처럼, 어릴 때부터 교육받으면 순발력 있는 표현 습관을 들일 수 있다. 아이들이 영어만으로는 글로벌 시민이 될 수 없다. 외국어를 잘 못하면 불편할 뿐이지만 예절을 모르면 무례한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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